최근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 환자의 증가로 심장이 갑자기 멈추는 급성 심정지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심정지가 병원이 아닌 길거리나 가정에서 많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일반인의 심폐소생술 시행 가능 여부가 생존율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CPR)은 심장의 활동이 갑자기 멈춰 호흡이 정지됐을 때 실시하는 응급처치다. 심장정지 환자는 정지 이후 골든타임(약 5분 이내) 내 신속한 응급처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환자를 처음 목격한 사람의 올바르고 빠른 심폐소생술 시행이 필요하다.
기존 심폐소생술은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함께하도록 권장됐다. 하지만 가슴압박만 실시한 환자와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같이 실시한 환자의 생존 퇴원율에 차이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여러번 보고되면서 기존 방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또 심정지환자에게 인공호흡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 중요한 가슴압박이 지연되고 이로 인해 생존율까지 떨어지는 실정이었다.
이에 새 가이드라인은 일반인에 대해선 인공호흡 없이 가슴압박 소생술만 실시하도록 바뀌었다. 가슴압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침으로 풀이된다. 노태호 대한심폐소생협회 홍보위원장(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은 “인공호흡을 하려면 구강에 입을 대고 호흡을 불어 넣어야 해 여러 이유로 꺼리게 된다”면서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이 소생 효과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만큼 신속히 가슴압박 소생술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장박동이 돌아온 경우에도 24시간 내에 병원을 찾아 치료받아야 한다. 반면 영유아의 심장박동이 정지된 경우에는 인공호흡을 함께 실시해야 한다.
또 기존 가이드라인은 성인의 경우 가슴압박 깊이는 5㎝ 이상, 속도는 분당 100회 이상으로 권고했다. 새 가이드라인에선 내용상 큰 변화는 없지만 상한 수치를 5~6㎝로 명확히 표현했다. 가슴압박 깊이는 생존율과 관련성이 크며, 깊이가 5㎝ 이상일 때 다른 깊이보다 생존 퇴원율이 높다. 하지만 6㎝를 초과하면 손상 발생률이 증가한다.
가슴압박 속도도 중요하다. 분당 100~120회 속도에서 생존율이 높다. 반면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면 가슴압박의 깊이가 줄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도 속도를 100~120회로 명확히 표현했다.
심폐소생술 도중 맥박을 확인하거나 자동심장충격기를 준비하기 위해 가슴압박을 잠시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같은 가슴압박 중단 시간을 최소화하면 할수록 예후는 좋아진다. 새 가이드라인은 가슴압박 중단 시간을 10초 이내로 최소할 것을 권고한다.
가이드라인은 또 심정지 후 자발순환이 돌아왔지만 반응이 없어 뇌손상이 의심될 때에는 저체온요법(32~36도 최소 24시간)이 신경학적 예후를 좋게 한다는 연구결과도 이번 가이드라인에 적용됐다. 이전 가이드라인에서는 32~34도로 권고됐다.
저체온요법은 체온을 인위적으로 내려 생체대사 및 산소소비량을 감소시켜 장기가 저산소상태나 혈류차단에 견딜 수 있는 시간을 연장시킨다. 심장마비 환자의 뇌세포 파괴 등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심정지 후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생존 퇴원율이 3배 이상 증가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심폐소생술 시행률이 낮아 급성 심장정지로 구급차를 이용해 병원에 이송된 환자의 생존율이 5.1%에 불과하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급성 심정지는 2014년 기준 9년전보다 1.5배 증가했으며 지역별로는 제주, 강원, 충북지역에서 발생률이 높았다. 생존 퇴원율은 서울의 경우 8.6%로 비교적 높았지만 전남과 경북, 충남 등은 1%대에 머물러 차이가 컸다.
미국은 생존 퇴원율이 10.8%로 한국보다 2배 이상 높다. 호주, 일본, 덴마크도 각각 8.8%, 9.7%, 10.8%로 한국과 최대 2배 정도 차이난다.
국내의 경우 심정지 환자가 퇴원 후 뇌기능 손상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가늠하는 뇌기능 회복률도 0.6%에서 2.8%로 오르는 데 그쳤다. 미국의 뇌기능회복률 8.5%와 비교하면 여전히 크게 낮은 수준이다.
급성 심장정지 환자 발생 후 신속한 신고와 대응은 생존율 향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2012년 시행된 심폐소생술의 퇴원 시 생존 여부 분석 결과 전체 1만2222건 중 119가 도착할 때까지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생존사슬이 끊어지지 않았던 환자의 생존율은 21.8%였다. 하지만 구급대가 도착한 이후 심폐소생술을 적용받은 환자의 생존율은 12.9%로 9%p 가량 낮았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2011년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서비스 인지도 조사 결과 심폐소생술 인지율(92.5%)에 비해 실제 시행 가능 비율은 18.4%로 매우 낮았다”며 “일반인의 심폐소생술 시행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상도 교수는 “국내 급성 심장정지는 전체 사망률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유병률이 높고 생존하더라도 뇌기능이 살아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늘려야 하며, 이를 위한 국가적인 마스터플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