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광고를 하기 전에 사전심의를 받도록 한 의료법이 사전검열에 해당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의료계 안팎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3일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의료광고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의료법 제56조 제2항 제9호 등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재판관 8대 1로 위헌 결정했다.
그동안 의료법인·의료기관·의료인이 의료법에 규정된 매체를 이용해 의료광고를 하려는 경우 미리 광고의 내용과 방법 등에 관해 보건복지부 장관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이는 신문·잡지·인터넷매체뿐만 아니라 현수막, 벽보, 전단, 교통시설·교통수단 표시 광고 등도 모두 해당된다. 사전심의는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복지부 장관이 직접 실시하지 않고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이 위탁받아 심의해왔다.
안모 씨 등 청구인은 ‘최신 요실금 수술법, IOT, 간편시술, 비용저렴, 부작용無’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설치하는 방법으로 복지부장관의 심의를 받지 않고 의료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약식명령을 받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 표현에 대해서는 사전검열이 예외 없이 금지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 표현 중에서 사전검열금지원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영역을 따로 설정할 경우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는 “의료광고가 상업광고 성격을 띠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보호 대상이 된다”며 “민간 심의기구인 의사협회가 복지부 장관의 위탁을 받아 심의하는데,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헌법이 금지하는 행정기관에 의한 사전검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위헌 판결이 내려지자 복지부와 심의업무를 수행해왔던 의협, 한의협, 치의협은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각 의사 단체 산하의 의료광고심의위원회에서 진행되던 의료광고 사전심의 업무를 그대로 진행하되 강제성이 아닌 자율적으로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전심의가 자율로 전환됨에 따라 우려되는 허위·불법 의료광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사전심의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내용은 사후 단속·규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자율성을 높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위헌 판결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며 “하지만 국민의 의료권과 건강권을 위해 사전심의제도는 유지돼야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한의협 측은 “의료윤리를 벗어나는 광고가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올 수 있다”며 “협회 내부 윤리위원회의 자정 노력과 함께 복지부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무분별한 불법광고가 남용돼 의료현장에도 적잖은 혼란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 위헌 판결은 막대한 사전심의 수수료를 챙겨왔던 의료단체들에게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5년간 각 의료단체별 의료광고 심의 건수는 의협은 2011년 5000건에서 2012년 1만2177건, 2013년 1만5827건, 2014년 1만5553건, 2015년 6월말 현재 8014건 등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한의협은 2000건 안팎을 기록했다.
사전심의 한 건당 의료기관이 심의위원회에 납부해야 하는 금액이 최소 5만원~최대 20만원이고 연간 1만5000건의 심의가 이뤄졌다고 가정하면 의협으로서는 심의가 폐지될 경우 1년에 최소 7억~8억원의 수입이 감소하게 된다. 학회의 자문이 필요한 전문심의(20만원)가 많다면 손실 비용은 배로 뛴다.
최근 회원들의 불신과 내부 불협화음으로 회비마저 제대로 걷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막대한 사전심의 수수료까지 사라지게 되자 의료단체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게다가 일부 개원가에서는 이전에 지출했던 심의 수수료까지 소급적용해 환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현재 접수된 의료심의 광고 건 중 심의가 진행되지 않은 건에 한해 심의료 환불이 가능하지만 위헌 결정 이전에 심의절차가 완료됐거나 절차가 이미 진행된 건은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일부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중심으로 눈살이 찌푸러질 정도의 의료광고가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사전심의 제도는 필요한 게 맞다”며 “다만 같은 종류나 형식의 의료광고인데도 어떤 광고는 허가되고, 어떤 광고는 거부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심사기준의 공정성이나 일관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왔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관절 전문병원 관계자는 “크게 보면 맥락이 같은데 문구 몇자 수정하고, 도안하나 바꾸는 데에도 심사절차를 밟아야 해서 돈도 들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허비돼 병원으로서는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며 “심사가 폐지된다니 속이 시원할 일”이라고 환영했다.
모 한의원 관계자는 “그동안 매스미디어 의료광고나 옥외광고가 아닌 자신의 저서 광고를 통해 내용에 제약을 받지 않고 홍보하는 꼼수를 부리는 대형 의료기관이 많았다”며 “결국 실탄(돈) 있는 의료기관만 광고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따름”이라고 냉소했다.
한 척추 전문병원 관계자는 “심의가 폐지됐다고 해도 복지부나 관할 보건소에서 이런저런 기준을 제시해 간섭한다면 예전보다 더 불편하고 짜증나는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며 “개원가의 불만과 관(官) 간섭을 최소화하려면 최소한의 불가역적 기준을 제시해 의료계가 칼 같이 지켜나가야 잡음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