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금기시하면 숨어서 교제할 우려 … 부모가 자녀 연애 대하는 태도 다르면 아이는 ‘제멋대로’
생각보다 조숙한 초등학생에게 깜짝 놀라는 어른이 적잖다. ‘나 때는 순진무구, 천진난만 그 자체였는데’라고 생각하며 부쩍 어른스러워진 요즘 아이들을 보고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 ‘초딩’은 성인을 미니어처로 만들어놓은 듯 조숙하다. 남녀가 유별해 괜히 편가르기에 바빴던 부모세대와 달리 아이들은 연애나 이성교제에 적극적이다. 초등학교에서 한 반에 여러 커플이 있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초등학교 4∼6학년생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23%가 이성교제를 해봤다고 답했다.
초등학생의 이성교제는 자칫 ‘나쁜 길’로 빠질까봐 우려하는 부모의 걱정과 달리 심플한 이유로 이뤄진다. 우선 이성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개 ‘빼배로데이니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이 다가와서’, ‘잘나가 보여서’, ‘그냥 좋으니까’처럼 큰 의미 없이 사귀는 게 대부분이다. 이렇다보니 이성친구가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비교적 당당하게 자랑하는 편이며, 부모에게도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이들은 연애 과정 자체보다 드라마에서 보는 ‘낭만적인 어른들의 사랑’을 흉내내고 싶어 한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하고, 커플링을 맞추고, 손을 잡고 다니며 데이트를 즐긴다. 부모는 아이의 이성교제를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크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일단 지켜보는 게 정답이다. 달라진 사회문화적 배경을 인정하고 좀더 멀리서 지켜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 중 이성교제 경험이 있는 아이가 30%로 세 명 중 한 명꼴”이라며 “아이와 터놓고 대화하는 분위기를 이끌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이성교제를 일종의 놀이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에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이가 자라면서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사귀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므로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잔소리해 봐야 듣지 않는다. 직접 간섭할 게 아니라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게 현명하다. 관계를 인정해주고 집으로 데려오게 하거나, 함께 놀러가는 등 열린 공간에서 사귀게 해야 성적 호기심으로 인한 문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부모끼리 알고 지내며 학원이나 도서관을 같이 보내는 등 건전하고 도움이 되는 교제를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막무가내로 이성교제를 금지하면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게 되고, 숨어서 교제하며, 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 원장은 “아이가 이성친구를 만나고 있다면 이성과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필요하다”며 “가령 상대를 칭찬해주는 법, 사소한 관심 표현하기, 상처주지 않고 헤어지는 법 등을 조언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남자 아이의 경우 엄마의 세밀한 관심못잖게 아빠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아빠가 사춘기 시절 비슷한 연애 경험에 대한 사례를 들려주고 실연을 극복했던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누면 신뢰감을 느끼는 관계 속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들이 또래에 비해 조숙하게 이성교제를 하고 있거나 성 접촉이 걱정되면 구체적인 성교육에 나서야 할 때다. 요즘 아이들은 이성교제를 가볍게 생각하며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즐기는 분위기다. 각종 TV프로그램, 드라마, 인터넷소설 등의 영향이 큰 게 사실이다.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 씨도 “최근 몇 년 사이 사회 전반의 성 문화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우려한 바 있다. 이성교제 경험이 있는 초등학생 중 성경험을 가진 아이가 무려 3%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성친구가 ‘싫은 느낌’을 주거나, 원하지 않는 행위를 할 때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상대가 ‘싫다’고 할 때에는 정말 싫은 것임을 알아야 하고, 서로 존중해야 하는 것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섣불리 자녀에게 ‘스킨십은 어디까지 해봤느냐’는 등 꼬치꼬치 캐물었다가는 자녀가 아예 말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고 자연스럽게 아이의 생각을 물어본 뒤 왜곡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성교육을 하는 게 포인트다.
요즘 신세대 부모들은 ‘학교 성교육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소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는 교육부가 초·중·고에서 시행 중인 ‘학교 성교육표준안’에서 비롯됐다.
교육부는 보건교사들이 성교육할 때 ‘자위행위’ ‘다양한 가족관계’ ‘야동’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초등학교 보건교사 김모 씨(29)는 “성교육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만 표준안이 강조하는 내용은 기존 학교에서 해온 성교육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며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부모가 친한 아이들을 모아 사설 성교육 업체의 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교육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일관된 양육 태도’라고 강조했다. 가령 엄마는 과도한 스킨십이 우려돼 성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아빠는 ‘애들이 호기심에 그런것이니 내버려두라’고 의견이 갈리면 아이는 이를 눈치채고 마음대로 행동하기 쉽다. 부모는 서로 의견을 조율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방향으로 마음을 모아 지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의 건강한 이성교제를 위한 첫 번째 덕목은 ‘내 아이도 이성교제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마음이다. 평소 아이와 많은 대화를 통해 자녀의 이성관을 파악하고 왜곡된 부분을 자연스레 교정해주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