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마취는 전신마취보다 안전할까. 최근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수면마취로 인한 의료사고가 시도때도 없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안전성에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특히 수면마취제로 쓰이는 프로포폴(propofol)은 단기간에 지속적으로 과량 투여시 의존성이 강해져 중독되거나, 호흡이 멈추거나,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병·의원에서 프로포폴을 오남용하거나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엔 한 성형외과 의사가 쓰레기통에 버린 프로포폴을 재사용해 안면윤곽수술을 하다가 환자가 패혈성 쇼크에 의한 장기부전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등도 진정 또는 의식하 진정요법’, 즉 수면마취는 진단 및 치료를 목적으로 시술을 받기 전 통증이나 불안감을 없애준다. 전신마취의 경우 아무리 자극을 줘도 깨지 않고 호흡도 없는 상태이지만 수면마취는 말을 걸거나 살짝 건드리면 깨는 게 특징이다. 환자 입장에선 통증이나 불안감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의료진은 시술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다. 최근엔 환자가 먼저 수면마취를 해 줄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는 수면마취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덕경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이 2009년 7월~2014년 6월 국내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마취 관련 의료분쟁 중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자문한 105건을 분석한 결과 수면마취로 인한 사망률은 전신마취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마취 관련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 105명 중 82명(78.1%)이 숨졌으며, 나머지 환자들도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주목할 점은 일반인들에게 전신마취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수면마취(진정)로 인한 사고가 105건 중 39건(37.1%)으로 적지 않았다.
수면마취 사고로는 수면마취제의 과용량 주사로 인한 기도폐쇄 및 호흡부전이 24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수면마취 사고 39건 중 30건(76.9%)에서 환자가 사망했는데, 이는 전신마취사고의 사망률 82%(50건 중 41건)와 비교해도 비슷한 정도의 위험도로 평가된다.
이처럼 사고로 이어진 수면마취에 사용된 약물은 대부분 프로포폴이다. 김 교수의 연구에서도 프로포폴로 인해 발생한 수면마취 사고가 39건 중 35건(89.7%)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미다졸람과 같은 전통적인 수면마취제에 비해 프로포폴이 호흡억제를 더 심하게 유발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과다. 김덕경 교수는 “프로포폴을 적정량 이상 투여하면 호흡 억제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수면마취를 실시하는 게 안전하다”며 “이번 조사결과는 비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프로포폴 사용을 반대하는 미국·유럽 마취과학회의 입장과 미국 식품의약품국(FDA) 규정을 환기시킨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만 수면마취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최근 프로포폴 중독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꾸준히 발생하자 의료계에선 마취통증의학과만 수면마취를 실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다른 진료과 의사들이 ‘직능이기주의’라고 반대 입장을 전개하면서 찬반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 개인 내과 원장은 “수십년간 내시경이나 건강검진 시 수면마취를 아무 문제없이 사용해왔는데 의사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몇몇 사건·사고를 이유로 다른 과 의사의 수면마취를 아예 금지시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우유주사’로도 불리는 프로포폴은 1986년 마취과 영역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992년 첫 중독 사례가 보고됐다. 이후 몇 차례 해외에서 프로포폴 중독 사례들이 보고됐지만 대부분 이 약물을 가까이 접하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이 중독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2009년 6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프로포폴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이 시기부터 일반인들의 프로포폴 중독 및 오남용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국내에서는 2003년에 프로포폴 중독으로 인한 사망사례가 처음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일부 수면마취제는 근육 같은 곳으로 흘러가거나 체내에 쌓일 수가 있어 마취에서 깨어나는 게 더디거나 개운한 느낌이 덜하다. 하지만 이 약은 마취시 마취 유지시간이 짧고 각성이 빨라 마취에서 깬 후 골치가 아프지 않고 2~8분이면 거의 완전히 회복된다. 신체에 쌓이지 않고 간에서 대사돼 소변으로 모두 빠져 나와 몸에 남지 않는다. 아울러 다른 마취제를 사용할 때같이 구역질을 일으키지 않아 각광받고 있다.
유용한 만큼 문제점도 많다. 프로포폴은 단기적인 기억상실증상 등 부작용을 보여 ‘건망증 우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약을 투여하면 수면신호를 주는 물질인 감마아미노부틸산(GABA) 수치가 높아져 뇌내 ‘가바 수용체’가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음이온이 뇌세포 안으로 쭉 들어가면 흥분상태였던 뇌 세포가 잠잠해지며 잠이 들고 의식이 사라진다.
이 때 기존 수면마취제에서 발생하지 않던 뇌에서 행복감을 올려주는 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되는데 이 과정이 프로포폴 중독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페타민(amphetamine)이나 헤로인(heroin) 등 환각성 마약에 중독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프로포폴 투여시 나오는 도파민 양은 다른 향정신성 의약품인 미다졸람 주사를 맞았을 때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프로포폴을 오·남용할 경우 수면 도중 무호흡 상태에 빠져 자칫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시술 중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면 의료진은 프로포폴 용량을 늘려 깊은 진정상태를 유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도폐쇄나 호흡억제 등 의료사고가 발생한다.
수면마취 목적으로 사용되는 의약품이지만 불안감을 해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환각을 일으킬 수 있어 2011년부터 의료용 마약으로 분류돼 관리되고 있다.
기존 수면마취제인 치오펜탈(thiopental)이나 미다졸람도 프로포폴처럼 무호흡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무호흡이 지속되는 시간이 프로포폴보다 짧고 빈도도 낮은 편이다.
최근엔 수면내시경 등을 할 때 프로포폴을 사용하지 않아도 수면효과를 2배 정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이상협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수면진정제인 덱스메데토미딘과 미다졸람을 병용투여하면 수면효과가 개선되는 것을 발견했다. 수면마취시 사용하는 미다졸람은 프로포폴에 비해 부작용 위험이 적지만 수면진정 효과가 떨어지는 게 흠이었다. 이상협 교수는 “프로포폴은 수면 진정 효과가 뛰어나지만 치료 범위가 좁아 조금만 지나치게 사용해도 치명적일 수 있다”며 “미다졸람·덱스메데토미딘 병합요법은 최소의 부작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