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6명 모집에 삼성서울병원 외과만 한 명 지원 … 수가 보전,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필요
10~15년 이후엔 중증질환에도 걸려 병원에 가도 수술을 해줄 의사가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예상대로 올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비인기 진료과인 외과·비뇨기과·흉부외과는 지방병원은 물론 ‘빅5’를 포함한 주요 대학병원에서조차 정원 미달 사태가 속출했다. 특히 올해엔 이들 진료과에 비해 상황이 좋은 것으로 여겨졌던 내과마저 저조한 지원율을 기록했다.
병원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마감된 2015년도 하반기 레지던트 모집 결과 대부분 병원들이 비인기 진료과의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외과의 경우 서울성모병원에서 11명,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10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밖에 이대목동병원은 4명, 건국대병원 3명,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3명, 고려대 구로병원 2명, 고려대 안암병원 2명, 중앙대병원 2명, 한양대병원은 1명의 외과 전공의를 모집하려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을 제외한 18개 지역병원들도 33명의 외과 전공의를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0명이었다.
4명을 모집 정원으로 정한 삼성서울병원에서만 유일하게 한 명이 지원했다.
흉부외과와 비뇨기과의 상황도 열악하다. 흉부외과의 경우 건국대병원은 2명, 고려대 안암병원 2명, 경북대병원 2명, 건양대병원 1명, 전북대병원 1명, 경상대병원 1명, 길병원 1명, 한림대 성심병원 1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비뇨기과는 세브란스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 강북삼성병원, 건국대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서울내 대형병원은 물론 국립암센터, 동국대 일산병원, 명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지원율 0%를 기록했다. 충북대병원, 건양대병원, 경상대병원, 고신대복음병원, 조선대병원 등 지방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병원들은 올 하반기 66명의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전공의를 모집하려 했지만 지원자는 삼성서울병원 외과 전공의 지원자 한 명뿐이었다.
비인기 진료 분야의 인력수급 문제는 이미 몇년 전부터 지속됐다. 최근 5년 간 이들 3개과 레지던트 확보율은 70%를 밑돌았다. 지난해 외과의 레지던트 확보율은 69.3%, 흉부외과는 60.8%를 기록했다. 비뇨기과의 경우 2010년 82.6%에 달했다가 지난해 26.1%로 급락했다.
올 상반기의 경우 외과는 209명 정원에 123명이 지원해 58.9%의 지원율을 기록했다. 비뇨기과와 흉부외과는 각각 34.1%와 39.5%의 지원율을 보였다. 대한외과학회 관계자는 “외과와 흉부외과는 집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수술이 많아 업무강도가 진료과 중 가장 높고, 애써 치료한 환자가 사망해 심리적 충격을 받을 위험도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장래마저 불투명하고 보수도 많지 않아 젊은 전공의들이 기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가 10년간 계속되면 의료 현장에 외과 관련 의사가 없어 정상적인 진료 및 치료가 불가능해진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가 발간한 ‘2015 흉부외과 백서’에 따르면 퇴직 예정인 흉부외과 전문의는 올해 9명을 시작으로 매년 증가해 2025년 한 해에만 55명에 이른다. 시간이 갈수록 젊은 의사는 적고 퇴직자는 늘면 수술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전공의 숫자가 줄다보니 기존 전공의들이 업무강도가 점차 강해졌고, 이로 인해 수련을 포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비뇨기과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 앞에 둔 한국에서 비뇨기질환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의사 수는 반대로 감소하는 추세다. 비뇨기과 의사 부족에 따른 환자들의 불편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부족한 비뇨기과 인력이 그나마도 서울·경기 지역에 편중돼 지방의 비뇨기과 환자들은 병이 커지고,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 서울로 가야 한다. 서울·경기 지역도 이미 몇 개 대형 병원을 제외하고는 전공의 부족으로 인해 교수가 당직을 서고 비뇨기과 응급환자를 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비뇨기과 개원가의 줄도산은 이미 현실이 됐다. 비뇨기과 폐업률(신규 개원 대비 폐업 병원 비율)은 2009년 51%에서 2012년 127.6%로 약 2.5배 높아졌다.
이영구 대한비뇨기과학회 보험이사(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는 “비뇨기과수술은 외과수술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편이지만 정작 수술료는 낮은 편”이라며 “비뇨기과도 수가 조정, 가산금 지원, 전립선암 국가암검진 지정, 요양병원 전문의 가산과 지정, 비뇨기과 전문약물의 처방 우선권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뇨기과 개원가의 줄도산이 의사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는 일반 비뇨기과질환인 전립선비대증·요실금·요로결석·방광염·신장질환 등을 소홀히하고 수익성 좋은 피부미용·성형수술·하지정맥류수술·남성수술 등에 집중하면서 이들 질환이 관련성이 있는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들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원 비뇨기과 전문의들의 약 절반이 피부·성형 쪽으로, 5분의 1 가량이 남성수술(왜소음경·발기부전·조루증 등)을 전업 또는 겸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올해 전공의 모집에선 내과의 부진이 이슈로 떠올랐다. 내과는 다른 비인기 진료과에 비해 봉직의와 개원의 중 어느 것을 택해도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돼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분과가 세분화되면서 수련기간이 늘고 정부 정책이 외과의 중증수술에 편중되면서 인기가 조금씩 시들해졌다.
내과 전공의 모집 경쟁률은 △2010년 1.42대 1 △2011년 1.39대 1 △2012년 1.34대 1 △2013년 1.29대 1로 점점 떨어졌으며 올해 상반기 0.92대 1로 첫 미달을 기록했다.
이번 하반기 모집에선 대형병원은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지역 병원들은 지원율 0% 사태가 속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2명 모집에 2명, 서울대병원 2명 모집에 4명, 삼성서울 1명 모집에 2명, 고려대안암병원은 2명 중 2명, 경희대병원이 1명 중 1명이 지원해 체면 치레를 했다.
반면 부산대병원, 경북대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제주대병원, 전북대병원, 순천향대 부천병원, 제주대병원, 강릉아산병원, 경상대병원, 인하대병원, 원광대병원, 충북대병원, 건양대병원, 조선대병원, 대동병원, 메리놀병원, 부천세종병원 등은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과 길병원은 각각 4명, 5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한 명씩에 불과했다.
내과학회 관계자는 “편향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내과의 미래를 어둡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내과는 대학병원 병상의 40%를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달과 수련 포기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으로서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시급한 대안이지만 메르스 사태 등으로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며 “하루 빨리 논의를 진행해 당장 내년이라도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스피탈리스트는 입원환자를 전담 관리하는 전문의로 전공의 감소·수련시간 단축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