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만명당 성형수술 건수는 131건 세계 1위 … 미적 주관 확실치 않은 환자, ‘텍스트대로’ 수술하는 페이닥터의 콜라보레이션
예쁘긴 정말 예쁜데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페이스북 등 SNS 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저마다 세련된 장소에서 미모를 뽐내지만 ‘아까 본 사람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아웃라인의 짙은 쌍꺼풀, 일자로 짙게 그린(문신한) 눈썹, 눈밑의 통통한 애굣살, 날렵한 코, 터질듯한 가슴에 만화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V라인 턱까지 한결같이 비슷하다. 드레스코드는 ‘무심한 듯 하지만 섹시하게’를 선호한다.
‘강남도플갱어’란 신조어가 있다. 이처럼 언급된 미인의 모든 조건을 거의 다 갖춘 여성이 서울 강남에선 한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너무나 비슷한 외양에 ‘강남미인도’라 비꼬는 말도 생겼다. 실제로 타인이지만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여성들끼리 클럽에서 찍은 사진이 나돌기도 했다. 혹자는 이들을 ‘의란성(醫卵性) 쌍둥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이란성 쌍둥이에 ‘의사가 만들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오죽하면 ‘의버지’(의사 아버지)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그들을 조롱할 필요는 없다.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고, 미모가 권력이 되면서 성형수술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적극 고려하는 아이템이 됐다. 여성의 경우 코나 눈을 조금 고친 정도로는 ‘성형미인’ 축에 끼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국내서 쓰이는 각종 성형 기술은 940가지라는 보건당국의 조사결과가 있다.
인구 1만명당 성형수술 건수는 131건, 이밖에 보톡스 시술 등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미용시술 건수는 79건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보톡스와 필러 원료 판매액만 한 해 1500억원이다. 기분 전환을 위해 메디컬 스킨케어나 보톡스·필러 시술을 받아 얼굴 분위기를 바꾸는 여성도 적잖다. 우울할 때 으레 신상백이나 구두를 지르듯 ‘닥터쇼핑’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강남언니들이 정말 다 같은 외모가 되길 바랬는지 궁금해진다. 나만의 개성을 찾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강남미인도’에 나올법한 여자가 됐다. 물론 자신 스스로 이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한 것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성형수술을 받고난 뒤 주변 지인과 비슷한 이미지가 형성돼 속상해하는 사람이 적잖다.
대학생 이 모(24·여)씨는 몇 년 전 수능을 마친 뒤 엄마손에 이끌려 쌍꺼풀수술을 받게 됐다. 문제는 ‘여럿이 가면 싸다’는 말에 반친구 4명과 같은 병원에서 같은 날 수술받았다. 졸업식 즈음 네 사람은 비슷한 이미지로 ‘성형자매’라는 놀림을 받게 됐다. 그는 “그나마 대학은 제각각 떨어져 있어 다행”이라고 토로했다.
성형수술을 고려하는 여성은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만큼 심리적으로 위축돼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다보니 의사나 상담실장의 말에 ‘귀가 얇아지기’ 마련이다. 기자는 무거운 귀고리에 귓불이 늘어져 자칫 이수열(耳垂裂, cleft ear lobe)이 생기기 직전 이를 교정하기 위해 서울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를 찾았다. 안내데스크에서는 ‘우선 원장님을 만나기 전에 상담실장님부터 봬야 한다’고 말했다. 어딜 가도 의사 진료에 앞서 상담실장 상담이 기본과정이니 그러려니 했다.
분명히 상담 목적엔 ‘이수열’이라고 적었지만 상담실장은 다짜고짜 ‘페이스라인을 날렵하게 만드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귀를 교정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니 더 볼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왕 수술받는 김에 이런저런 시술을 고려해볼 것을 권유했다. 갑자기 앞머리를 젖혀 얼굴 전반을 보더니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300만원 정도면 날렵한 V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뜻밖의 외모저격’에 당황했고, 2차적으로 300만원이라는 가격을 ‘부담없다’고 말하는 데 놀랐다. 마치 의사라도 된 것처럼 단점을 꼬집어내고 이를 고치지 않으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것처럼 겁을 준다. 상담실장들은 내원하는 환자의 스타일보다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미적 기준’을 강요하고 있었다.
또 공장처럼 돌아가는 병원 시스템도 강남미인 양산에 기여하는 바 크다. 실제로 수술 후 개성이 사라진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을 갖는 여성도 적잖다. 간혹 ‘내가 원한 건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고 뇌까리게 되는 것이다.
대형 성형외과가 등장하면서 병원도 기업화된 상황도 ‘복제품’을 만드는 데 한몫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형외과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가격덤핑이 이뤄지고 몰개성한 얼굴들이 복제되는 양상이다. 보통 ‘큰 병원에 가야 성형이 잘 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옥주 더새로이성형외과 원장은 “병원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예전보다 성형외과 경영이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몇몇 기업형 성형외과가 가격 덤핑을 주도한 게 경영난을 촉발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정도 가격수준으로 과연 성형수술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덤핑이 과도한 경우를 종종 본다”며 “장기적으로 성형외과가 나가서는 안되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1차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미적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형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만족스러운 성형수술 결과는 의사나 상담실장의 취향이 아닌 ‘환자의 요구가 어느 정도 반영됐는가’의 여부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의사의 노하우가 성공적인 수술 결과에 반영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옥주 원장은 “성형수술은 각자의 개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주관적 미적 기준 뿐만 아니라 환자가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등을 충분히 상담한 뒤 이들 요소를 잘 배합해서 개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업형 성형외과나, 가격덤핑을 주도하는 병원에서는 아무리 상담을 오래받더라도 상담내용이 수술에 반영되는 비중이 미미하다. 가격이 저렴해지는 것은 이제 갓 성형외과 기술을 배우려는 ‘저렴한 인건비의’ 페이닥터들을 고용하기 때문이다. 나 원장은 “가격이 지나치게 저렴한 경우엔 상담한 원장이 수술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일부 대형 성형외과에서는 임금과 경험이 적은 페이닥터를 고용해 이들을 트레이닝시키는 방식으로 회전율을 높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즉 자신과 상담했던 의사가 수술하는 게 아니라 수술실에서 처음 본 의사가 차트에 있는 내용만 보고 수술을 집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환자는 마취돼 있어 상담해준 원장이 자신을 수술하는 줄로 아는 게 다반사다. 환자가 의사와 상담하며 전달한 희망사항(수요자의 미적 취향)은 차트에 적힌 환자의 요구사항(의사 일방의 공급자적 시각)과 완연히 큰 차이를 보인다. 결국 집도한 의사의 개인적 미적 취향과 실력이 수술결과에 획일적으로 반영되면서 ‘또 하나의 강남언니’가 양산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술 후 불만사항이 생겼다면 다시 개선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페이닥터가 수련을 끝낸 뒤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자기 얼굴을 성형해준 의사를 만나기조차 어렵다. 심지어 병원 측은 수술해준 의사가 누구인지조차 알려주지 않고 회피하기 일쑤다.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고 나설 의사나 병원이 없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나옥주 원장은 “최근 성형수술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잖다”며 “하지만 얼굴은 자신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만큼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성형하면 당연히 예뻐지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은 성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또 자신이 확실한 주관을 갖고 ‘어떤 이미지로 개선하고 싶은지’ 차분히 생각해봐야 한다. 병원 직원들의 취향에 흔들리지 않고, 의사와 잘 상담해 자신의 개성을 살리되 얼굴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강남언니화(化)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실제로 쌍꺼풀수술을 받으려 병원을 찾았지만 상담실장에게 낚여 엉뚱하게 이마수술을 받은 뒤 후회하는 여성도 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게 결국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나 원장은 “암에 걸렸다면 지방에서도 명의를 찾아 멀리멀리 서울로 오는 경우가 많듯, 얼굴도 자신의 소중한 몸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너무 저렴한 가격만 찾지 말고 제 가격에 제대로 된 시술을 받는 게 정말 자신을 위하는 길일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