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의 세포밖 소포체에서 분비되는 DNA가 암 전이와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한상 연세대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와 데이비드 라이든(David Lyden) 미국 코넬대 의대 교수 및 인발 워첼(Inbal Wortzel) 연구원(제1저자) 팀은 종양 환자의 세포밖 소포체(extracellular vesicles, EVs)에 DNA가 담기는 원리를 규명하고, 이 DNA가 인체 조직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켜 암 재발과 전이를 예방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캔서(Nature Cancer, IF 23.5)’ 12월 3일자에 'Unique structural configuration of EV-DNA primes Kupffer cell-mediated antitumor immunity to prevent metastatic progression'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됐다.
세포는 기능 유지와 세포 간 신호전달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작은 막성 소포체 또는 입자를 분비하는데, 이를 세포밖 소포체라 한다. 세포막 소포체와 입자에는 DNA, miRNA, mRNA, 단백질을 포함한 다양한 생분자물질이 포함되며, 이들이 표적세포에 도달해 물질교환을 함으로써 세포 간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어떻게 세포밖 소포체에 담기는지,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암 전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세포밖 소포체에 DNA가 담기는 원리를 규명하고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전장 유전체 분석을 진행했다.
분석 결과, 세포밖 소포체에 담겨있는 DNA는 세포밖 소포체의 막성 구조를 중심으로 70%는 외부(표면)에 붙어 존재하고 30%는 내부에 존재했다. DNA는 유전자 발현조절의 핵심 요소인 히스톤으로 포장돼(packaging) 있었으며, 이를 통해 연구팀은 세포밖 소포체에 담겨있는 DNA가 인체에서 면역반응을 유도할 것이라 추정했다. 또 세포밖 소포체에 DNA를 담는 과정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유전자는 인체 내에서 면역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로 알려진 APAF1, NCF1로 확인됐다. 이들 유전자가 없으면 EV-DNA의 양이 급격히 감소하고 암 전이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세포밖 소포체에 담긴 DNA가 면역반응을 유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제 대장암 2~3기 환자의 조직에서 암 재발 여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세포밖 소포체에 담긴 DNA가 많은 그룹은 전이에 의한 암 재발이 4%(52명 중 2명)로 유의하게 적었고, DNA 양이 적은 그룹에서는 25%(53명 중 13명)로 암 재발 비율이 유의하게 높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당초 암세포는 EV로 포장된 단백질과 지방산을 분비하여 간을 전이성 종양 발달에 더 적합하게 만들 것으로 예측했다. 즉 종양에서 분비된 EV-DNA도 전이를 촉진할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췌장암과 대장암 동물모델에서 종양 EV-DNA 수치를 높이면 간으로전이되는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APAF1의 유전자 삭제를 통해 종양 EV-DNA 수치를 낮추면 전이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김한상 교수는 대장암 환자 중 진단 당시 종양 내 EV-DNA 수치가 낮은 환자는 EV-DNA 수치가 높은 환자에 비해 나중에 간 전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간에 암이 전이된 마우스 모델에서 종양에서 분비되는 세포밖 소포체의 DNA는 간에서 대식세포(간에 상주하는 면역세포)인 쿠퍼세포(Kupffer cells)에 섭취됐다. 쿠퍼세포는 세포밖 소포체 DNA 손상에 의해 자극을 받아 면역반응을 조절(상향)하는 시이토카인을 분비하며 3차 림프 구조를 간에 형성함으로써 암 전이를 예방하는 것을 확인했다. 즉 쿠퍼세포는 EV-DNA의 손상 흔적에 의해 자극을 받아 간 전이에 저항하는 면역 세포 클러스터를 구성했다.
워첼 연구원은 “이번 발견은 이전에 설명되지 않았던 종양 억제 메커니즘”이라며 “(암의 전이를 막을 수 있는, 많은 양이 아닌) 훨씬 적은 양의 EV-DNA가 분비될 경우 암이 전이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한상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종양에서 분비되는 EV-DNA가 암이 전이될 조직이나 장기에 면역반응을 일으켜 암 전이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세포밖 소포체를 활용한 후속 연구를 통해 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현재 암 전이 위험에 대한 EV-DNA 기반 예후 검사와 종양 EV-DNA 신호전달을 향상시키고 초기 암 환자의 전이를 억제하는 백신 유사 치료법(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김 교수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계 신진 후속 연구 및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K-MEDI 융합인재 양성지원사업 현장 수요 연계형 글로벌 인재육성 및 신진 의사과학자 양성지원연구의 지원을 받아 이번 연구를 수행했다. 라이든 교수팀은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