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감량 효과로 입소문을 타던 인크레틴(글루카곤양 펩티드-1(GLP-1), Glucose-dependent insulinotropic polypeptide(GIP)) 기반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지난 15일 국내에 출시되면서 오남용 우려가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당뇨병학회는 31일 '인크레틴 기반 당뇨병 치료제 및 비만병 치료제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위고비가 미용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학회는 “비만은 만성질환으로, 치료는 단순한 미용 목적의 체중 감소가 아닌 동반된 대사질환과 합병증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라며 “최근 비만하지 않은 이들이 미용 목적으로 비만 치료제로 사용되는 인크레틴 기반의 약제(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티르제파타이드)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위고비 등 인크레틴 기반의 약제는 명확한 의학적 필요가 있을 때만 처방돼야 하며, 약물 오남용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단순 체중 감량을 위한 정상 체중군의 무분별한 약물 사용은 개인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비만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의 약물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회는 비만 치료제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의료 전문가의 역할 강화를 주문하고, 인크레틴 기반의 2형 당뇨병 및 비만 치료제들은 반드시 관련 전문가의 진단과 평가를 거친 후 처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환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와 대사질환 상태를 면밀히 고려한 후, 환자에게 약물의 부작용과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생활습관 개선과 병행한 종합적 치료 계획을 수립한 다음 개별 환자에 맞는 적절한 용량과 스케줄을 정해 약제를 처방해야 한다”며 “철저하게 모니터링으로 부작용 발생 빈도를 줄이고 최대의 효과를 얻으며 치료 중단 시의 문제도 예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회는 “인크레틴 기반 약제는 반드시 의학적 필요에 따라 사용돼야 하며, 비만과 대사질환을 동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처방돼서는 안 된다”며 “환자를 직접 보지 않는 비대면 진료, 정확한 환자의 질환이나 문진 또는 대사 지표 측정도 없이 약물 처방이 이루어지는 행위,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처럼 약물 구매를 홍보하는 사례, 비만하지 않은 의사 본인의 체험기를 SNS 등에 올려 미용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일반인을 오도하는 행위 등은 절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비만 치료의 올바른 접근법과 약제의 적절한 사용법에 대한 대중 인식 교육이 필요하다”며 비만 치료제의 안전한 유통과 처방을 위해, 관련 당국에 적절한 모니터링 및 관리를 주문했다. 불법적인 판매나 사용, 무분별한 홍보에 엄격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비대면 진료나 비대면 약물 배송, 해외 직구를 통한 약물 구입, 의약품 도매상을 통한 다량의 약물 불법 구입 등을 철저히 관리해달라고 제언했다.
끝으로 “모든 약제에는 효능과 부작용이 있음을 기억하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반드시 당뇨병·비만 전문가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녹십자 계열의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기업 유비케어는 자사의 병의원 의료용품·의약품 온라인 쇼핑몰인 미소몰닷컴이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물량을 다른 경쟁사 대비 2배 확보해 11월 4일부터 3차 대규모 판매에 들어간다고 홍보했다.
위고비 오남용이 뭐가 문제인가?
위고비는 일론 머스크, 킴 카다시안 등 유명 인사들이 체중 감량을 위해 사용했다고 알려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위고비는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성인 고도비만 환자 △BMI 27 이상 비만이면서 고혈압, 당뇨병 등 한 개 이상의 동반질환이 있는 성인들이 치료 목적으로 처방받게 돼있다. 하지만 치료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미용을 목적으로 한 오남용이 문제다.
오남용 과열 양상 속 해외 직구나 온라인 거래 등 국내 불법 판매 사례도 이미 적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하면, 위고비 출시일인 15일부터 22일까지 위고비 온라인 불법 판매 및 광고 등 위법 게시물 12건이 적발 및 조치됐다.
현재 다이어트 카페나 SNS 등에 위고비 해외 직구 사이트나 위고비 처방이 가능한 ‘성지’ 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한다. 온라인을 통해 불법 유통되는 약물은 위조 의약품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변질되거나 오염될 우려가 있다.
위장관계 부작용 위험… ‘급성 췌장염’ 사망 사례도
여느 약물과 마찬가지로 인크레틴 기반 약물도 부작용이 존재한다. 위고비와 젭바운드는 복용 환자의 5% 이상에서 오심, 설사, 구토, 변비, 복통, 소화불량, 주사부위반응, 졸림증, 알레르기과민반응, 트림, 탈모, 위식도역류질환 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악성종양을 유발할 잠재적 위험도 있다. 젭바운드 제품 겉면에는 ‘갑상선C세포종양’(thyroid C-cell tumors)에 관한 박스 경고문이 기재된다. 젭바운드는 갑상선수질암(medullary thyroid carcinoma) 병력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환자, 다발성 내분비신생물 증후군 2형(Multiple Endocrine Neoplasia syndrome type 2) 환자, 티어제파타이드 또는 젭바운드의 부형제에 심각한 과민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사용이 금지된다.
위고비는 설치류 동물실험에서 비치명적 갑상선C세포종양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의약품 설명서에 적시돼 있다. 또 탈수와 급성 췌장염 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사용을 중단하면 다시 살이 찌는 요요현상도 중요한 부작용이다. 국제 학술지 ‘Diabetes’에 게재된 연구에 의하면, 위고비 주사·식이요법·운동을 병행한 약 800명의 환자가 체중을 평균 10.6% 감량했으나 위고비 중단 후 체중이 다시 7% 증가했다.
체중이 빠질 때 지방과 근육이 함께 빠지는데, 요요현상이 나타나면 근육이 줄어든 상태에서 지방만 늘어나는 게 문제다. 드물게 저혈당증, 갑상선 종양, 알레르기 반응, 췌장염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70대 남성이 위고비 용량을 늘렸다가 급성 췌장염으로 사망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췌장염 발생률은 빅데이터 기반 연구에서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의 0.5%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