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기능개선제로 알려진 ‘아세틸엘카르니틴’ 성분 제제가 오는 9월이면 회수 및 판매 정지 처분을 당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5일 ‘아세틸-엘-카르니틴’ 제제에 대한 처방·조제를 중지하고 대체의약품 사용을 권고하는 내용의 의약품 정보 서한을 배포했다.
앞서 식약처는 2013년 아세틸엘카르니틴 성분에 관해 진행한 문헌 재평가에서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재평가를 실시하라고 제약사에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아세틸엘카르니틴 성분이 가지고 있던 ‘일차적 퇴행성질환’과 ‘뇌혈관질환에 의한 이차적 퇴행성질환’ 등 2개의 적응증 가운데 ‘일차적 퇴행성질환’은 2019년 유효성 입증에 실패해 관련 적응증이 삭제됐다.
이후 남아 있던 ‘뇌혈관질환에 의한 이차적 퇴행성질환’에 대한 임상재평가 결과가 지난 7월 마감됐는데, 이번에도 효능 입증에 실패했다. 이로써 아세틸엘카르니틴이 가지고 있던 2개의 적응증이 모두 삭제되면서 실질적으로 국내 시장에서의 퇴출이 확정됐었다.
이에 대해 신경승 식약처 의약품안전평가과장은 “아세틸엘카르니틴 제제 임상 재평가 결과는 이미 도출이 완료된 상태로, 최근 결과를 공시했다”며 “공시 기간은 최소 20일로, 업체 이의신청을 받는데 10일 정도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이의 신청 여부와 내용에 따라 절차가 최종 마무리에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업체가 이의신청을 식약처에 내지 않거나, 접수된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아세틸엘카르니틴제제가 가지고 있는 ‘뇌혈관 질환에 의한 이차적 퇴행성 질환’은 최종 삭제된다. 사실상 아세틸엘카르니틴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적응증이 삭제돼 최종적으로 허가취소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르면 오는 9월 안에 모든 절차가 끝난다.
아세틸엘카르니틴 단일 성분을 포함한 ‘뇌혈관질환에 의한 이차적 퇴행성질환’적응증을 가진 전문의약품은 35개사의 39품목이다. 지난 3년간 연평균 청구금액은 581억원 규모다.
이번 아세틸엘카르니틴 퇴출 예고로 오는 9월부터 급여가 축소되는(환자 본인부담금 비율을 기존 30%에서 80%로 상향) 콜린알포세레이트 구입도 녹록지 않아 치매 또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해 마땅한 약이 없는 환자들이 애를 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6월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등의 개선을 목적으로 처방받는 경우에만 당시 현행 급여기준(본인부담률 30%)을 유지하고 뇌대사관련 질환, 감정 및 행동변화, 노인성 가성 우울증 등 일부 적응증에는 본인부담률 80% 선별급여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
현재 남아 있는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적응증은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기억력저하와 착란, 의욕 및 자발성 저하로 인한 방향감각장애, 의욕 및 자발성 저하, 집중력 감소) 하나뿐이며 다른 적응증은 모두 삭제됐다. 제약사들은 콜린알포의 급여 범위 축소(본인부담률 상향)과 관련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7월말 서울행정법원은 제약사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들 두 제제 대신에 쓸 수 있는 옥시라세탐 제제도 치매 개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혈관성 인지장애 증상 개선이란 적응증을 갖고 있으나 임상 재평가를 앞두고 과연 적응증 존속 관문을 통과할지 의문이 들고 있다.
따라서 이들 약이 건강기능식품이나 비급여 일반약 또는 전문약으로 풀릴 경우 소비자 부담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카르니틴은 이미 건강기능식품이나 일반약에서 자양강장제, 지방대사 촉진(지방산 산화), 혈중 지질 감소, 식욕부진 개선, 복부팽만 및 오심 호전 등의 효과를 내세우며 다양한 제품에 들어가고 있다.
의약품 조시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콜린알포 성분 대표 품목인 글리아타민(대웅바이오)과 종근당 글리아티린(종근당)은 올해 상반기 각각 538억원과 473억원을 기록해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0.4%, 8.3%씩 처방액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7월초 콜린알포 제제에 이어 올해 셀트리온제약의 지방간 및 간염 치료제인 ‘고덱스캡슐’에 대해서도 ‘급여적정성이 없다’고 판단, 제약사 의견을 수렴해가나며 급여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이데 셀트리온 측은 지방간이나 간염에 쓸 마땅한 약(간영양제)이 없는 상황에서 고덱스는 ‘쓸모 있는’ 약으로 통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392억원 매출을 기록해 전년 동기(355억원) 대비 10.6% 성장한데다 임상현장에서 의사들이 ‘진료 보고 약도 안 주냐’는 핀잔이 듣기 싫어서라도 처방하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존속될 이유가 있다고 셀트리온은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평행이론’처럼 ‘고덱스’가 콜린알포나 카르니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결코 적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