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하위 변이 ‘BA.5’ 확산이 가속화되면서 6차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존 감염자들과 백신 접종자들의 면역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휴가 등으로 인구 이동이 많아지는 7~8월 이후 확진자 규모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전환으로 정부와 민간의 대응 역량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어서 지금부터 재유행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주말임에도 이틀 연속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2만명을 넘어서자 전문가들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6차 유행 초입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확산 속도를 봤을 때 이르면 다음 달 중순 하루 확진자 수가 20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10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9일과 10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각각 2만286명과 2만410명을 기록했다. 1주일 전인 3일 신규 확진자가 1만48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주일마다 두 배가 되는 ‘더블링’ 패턴이 뚜렷이 나타났다. 10일 기준 위중증 환자는 67명, 사망자는 19명이다.
BA.5 변이가 무서운 이유는 한동안 우세종이었던 BA.2(스텔스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은 더 센데다 기존 면역이 잘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BA.1(오미크론 변이)는 인도 유래 델타 변이보다 전파력은 2~3배 강하지만 중증화율은 낮다. BA.2 변이는 BA.1 변이보다 전파력이 30% 정도 강하다. BA.4 및 BA.5 변이는 BA.2 변이보다 전파력이 강하고 면역회피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유려된다.
국내 코로나19 유행 규모가 한 주 만에 더블링을 보이는 것은 BA.5라는 새 변이가 확산하는 데다 휴가철을 맞아 이동량이 늘어난 여파다. 오미크론 변이의 세부 계통인 ‘BA.5’의 국내 검출률이 6월 둘째 주 0.9%에서 마지막 주 24.1%로 크게 늘었다. 이르면 이번 주 중 50%를 넘어서는 국내 우세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BA.5의 경우 기존 코로나19 백신으로 중증화율(위중증이나 사망에 이르는 비율)은 낮출 수 있지만 전파 자체는 막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화이자사가 개발 중인 개량 백신(2가)의 국내 도입 시점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방역당국은 현재 60세 이상과 면역저하자로 한정된 백신 4차 접종(2차 부스터샷) 대상자를 늘릴지 고심하고 있다.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는 7일 첫 회의를 열고 개량 백신 도입, 4차 백신 확대 접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윤석열 정부가 내세웠던 이른바 ‘과학 방역’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우려되는 이유는 기존 백신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는 데다 올 초 대유행 당시 얻었던 자연면역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오미크론’ 변이에 대항할 개량 백신을 빨리 확보하지 않으면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BA.5가 돌파감염, 재감염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오미크론 변이 감염에 대응하는 방어력(중화능)은 초기 비(非)변이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단 21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 해외 연구에 따르면 BA.5는 오미크론 변이와 비교해 봐도 중화능을 3분의 1 수준으로 추가 감소시킨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두 연구를 종합하면 BA.5는 백신 접종 후 돌파감염 위험이 비변이 바이러스보다 60배 이상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내에 확보된 백신이 모두 비변이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개발된 것이란 점이다. 오미크론 변이나 BA.5에 대해서는 감염 예방 효과가 미미하고, 확진 후 위중증이나 사망으로 악화할 위험을 낮추는 효과만 있다. BA.5의 전파를 억제하려면 화이자와 모더나가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오미크론 변이용 개량백신(2가)을 도입해 올가을 접종부터 활용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물량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개량백신 물량이 또 미국 등에 집중될 경우 국내에선 지난해 초 ‘백신 대란’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2∼4월 5차 대유행 당시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됐던 국민들의 자연면역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우려할 점이다. 확진을 통해 형성된 항체가 재감염을 막아주는 기간은 통상 3~4개월이다.
7월 6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843만명. 이 중 최근 3개월 내에 확진된 사람은 388만명이다. 나머지 1455만명은 자연면역을 통한 항체를 잃었거나 그 위력이 약해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미크론 유행이 마무리된 시점이 4월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감염자들의 면역이 곧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7말 8초’(7월 말∼8월 초) 여름휴가 성수기를 맞아 이동량 증가로 전파 위험이 더 커졌다.
올해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 실내 취식 허용,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등이 시행됐고 나들이객이 늘어났다. 여기에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실내 활동과 에어컨 사용이 증가한 것도 확산 속도를 높였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 질병관리청은 “늦가을 혹은 겨울철에 (하루 확진자가) 최대 약 15만 명 규모에 이르는 재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BA.5의 전파력을 감안하면 그 시기가 8월로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 국민 3차 백신 접종 예약이 시작된 시기가 지난해 12월이고 오미크론은 올 3월이 정점이었다. 확진으로 생긴 자연면역은 3~6개월간 지속되는데 오미크론 유행기에 확진됐던 사람들의 면역력 하락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 장시간 부유해 10m 이상까지 퍼질 수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부분의 예측 모델링이 빠르면 8월 중순이나 8월 말, 또는 늦으면 9월 달이나 10월쯤 코로나19 확진자 규모가 10만명에서 20만명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5차 대유행이 진정된 이후 거리두기가 대폭 완화됐고 진료와 검사를 위한 의료자원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유행이 정점을 찍은 뒤 코로나19 병상을 단계적으로 감축해 나가면서 현재 코로나19 전담병상은 5833개 정도 남아 있다. 오미크론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3월(3만3000여 개)의 6분의 1 수준이다. 또 확진자 감소에 따라 6월 이후 임시선별검사소와 생활치료센터의 운영도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