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을 때부터 심장이 좋지 못해 심장이식을 기다리며 한순간도 병상을 떠날 수 없었던 아기가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를 통해 건강을 되찾고 생후 544일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이 소식은 이식이 필요하지만 적절한 기증심장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심장병 환아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규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팀은 체외형 심실보조장치 삽입술을 받은 환아가 국내 최장기간(400일) 장치를 유지한 끝에 심장이식 없이도 심장 기능을 회복해 건강하게 퇴원을 앞뒀다고 27일 밝혔다.
산전검사에서 심근증·심부전을 진단받은 순후는 38주, 3.5kg의 체중으로 태어났으나 심장 기능이 17%에 불과했다. 약물치료를 받고 나서도 심부전 증상이 지속됐다. 이 경우 ‘심장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체중이 작은 아기를 위한 적절한 기증심장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희망 없는 기다림 속에서 순후의 심부전 증상 등이 심해져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의료진은 순후가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더 큰 심장을 받을 수 있도록 생후 4개월이 되는 시점에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를 삽입하기로 결정했다.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는 튜브를 통해 펌프와 좌심실을 연결하고, 펌프운동을 통해 혈액 공급 기능을 돕는 의료기기다. 적절한 기증심장을 구하지 못해 이식을 기다리는 환아에게 체외형 심실보조장치 삽입술을 실시한다.
다행히 순후는 합병증도 없고, 수술 1개월째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겨질 만큼 상태가 안정됐다. 수술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의료진은 심실보조장치 제거를 시도했지만, 순후의 심장 기능이 나빠져 제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하염없이 심장이식을 대기하던 중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순후의 심장 기능이 정상 수준으로 개선되고 발달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의료진이 장치 제거를 재시도한 결과, 수술 400일째 되는 지난달 28일 순후의 몸에서 장치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순후의 작은 심장은 400일을 함께한 보조장치나 새로운 기증심장 없이도 지금까지 힘차게 뛰고 있다.
국내 최장기간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를 유지한 순후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일하다. 나아가 이식 대기 중 장치를 삽입해 심장 기능까지 회복했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체외형 심실보조장치 삽입술 28례가 실시됐으나, 심장 기능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 경우는 순후를 포함한 3건뿐이었다.
이를 가능케 했던 데에는 소아중환자진료실 권혜원 교수(소아흉부외과), 입원의학센터 민준철 교수(소아흉부외과), 심장수술 환아 전문 간호사를 비롯한 서울대어린이병원만의 의료인력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의 세심한 치료와 정확한 판단이 있었기에 합병증 없이 장치를 유지한 끝에 제거할 수 있었다.
또한, 유일한 치료방법으로 알려진 심장이식도 감염, 거부반응 등 합병증을 유발하는 만큼, 순후의 사례는 자기 심장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조성규 흉부외과 교수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심장 기능을 회복해 이식 없이도 아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기적”이라며, “이 소식이 현재 심장이식을 대기하며 힘들어하는 환자 및 보호자에게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들 모두 고생이 많았지만, 특히 500일이 넘게 집에도 가지 못한 채 아이를 돌본 어머니께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