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20~30대 미혼 남녀들은 '혼밥'에 익숙해지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회사원 김모(30)씨는 보통 아침·저녁 두 끼를 집에서 해결한다. 점심은 직장 동료들과 먹지만 그 외엔 혼자서 먹는 편이다. 아침은 보통 김밥이나 빵으로 때우고, 저녁은 대형마트에서 사 온 냉동 볶음밥 등을 조리해서 해결한다.라면도 생각날 때마다 종종 끓여 먹는다.
주말에는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세 끼를 다 혼자서 먹곤 한다. 이런 식습관은 그에게 익숙하다. 대학 입학과 함께 자취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편의점에서 사 먹는 거보단 나은 거 같지만 그리 건강에 좋아 보이진 않는다. 다른 부위는 살이 안 찌는데 배만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도 "일부러 식사 약속을 잡기보단 혼자 빨리 먹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혼자서 밥을 먹는 '혼밥'현상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식당에는 혼자 오는 손님을 위한 공간이 늘어나고 있고, 간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 편의점 식품의 인기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직장인 중 35.3%가 점심시간에 ‘혼밥’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특히 혼밥을 한다는 2030 직장인의 응답률이 높게 나타났다. 20대는 40.8%, 30대는 38.4%가 점심을 주로 혼자 먹는다고 밝혀 40대(33.2%)와 50대(28.8%)의 응답률보다 높았다.
직장인 10명 중 약 8명(78.3%)은 점심시간의 의미를 ‘휴식 시간’으로 꼽았다. 이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시간’(38.5%), ‘회사 내 감정노동을 잠시라도 피하는 시간’(34.5%) 순이었다.식사 패턴 또한 ‘배달음식 주문’과 ‘도시락 지참’ ‘편의점 구입’ 등의 응답이 지난해 대비 증가했다.
많이 먹는 점심 메뉴는 ‘짜장면’이 44.5%로 가장 많았다. 찌개 등 다 함께 떠먹는 메뉴는 비교적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혼밥을 먹는 이유로는 ‘여행이나 출장 등 혼자 다른 지역에 갈 일이 생겨서’가 36.8%(중복응답)로 가장 많았고 △‘바쁜 일정으로 인해 사람들과 식사시간을 맞추지 못해서’(35.6%) △‘별 이유 없음·그냥 배고파서’(24.1%) △‘혼자 먹는 게 더 편해서’(23.8%)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함께 식사할 사람이 없어서’(21.3%) △‘다른 사람과 약속 잡고 하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아서’(15.3%) △‘함께 먹으면 내가 먹고 싶은걸 먹지 못해서’(7.3%) △‘함께 먹으면 식사시간이 너무 길어져서’(5.7%) 등이 뒤를 이었다.혼자 밥을 먹는 이유는 세대별로 달랐다.
20대는 ‘여유롭게 먹음’(24.2%), 30대는 ‘같이 먹을 사람을 찾기 어려워서’(38.7%), 40대는 ‘시간이 없어서’(29.2%) 등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이대가 어릴수록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삶의 편의성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자리잡으면서 자발적으로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직장인 권모 씨는 “학창시절 즐거웠던 식사시간이 사회에 나온 뒤 업무와 스트레스의 연장선이 됐다”며 “아무래도 직장 상사와 밥을 먹을 땐 사소한 예의범절에도 신경써야 하고, 항상 상사의 말에 집중해야 하다보니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상대적으로 젊고 유연한 대학생 조직에서조차 함께 식사하는 데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2019년 일본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90% 이상이 ‘다른 사람의 식사가 끝나기 전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답했고, 절반가량은 ‘모두 모일 때까지 식사 시작을 못한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든 하려고 한다’(30%),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한다’(20%), ‘어디 앉을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18%), ‘같은 메뉴를 먹는다’(3%)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혼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견이 있지만 식사의 질이나 충분한 식사 시간을 담보하기 어려워 비만이나 위장관질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연구에 따르면 청년층이 혼자서 밥을 먹는 등 고립된 생활을 지속하면 염증이나 조직손상 여부를 가늠하는 C-반응성 단백질(CRP) 수치가 높아졌고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비만 등 각종 질환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와 세인즈버리 국립사회연구센터가 영국 성인남녀를 8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혼밥은 정신질환을 제외한 다른 어떤 요인보다 개인의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혼밥이 건강에 좋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빠른 식사시간이다. 음식을 섭취하고 포만감을 느끼려면 20분 정도 소모된다. 즉 의학적으로 한 끼 식사에 최소 15~20분은 투자해야 소화나 영양면에서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혼밥의 식사시간은 상당히 짧은 편이다. 이영미 가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서울경인 지역 대학생 89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혼밥족의 70%가 15분 이내, 8%는 5분 이내에 식사를 마치는 것으로 조사됐다.혼밥은 대화 없이 음식을 먹기만 하므로 식사가 빨리 끝난다. 불규칙한 식사와 짧은 식사시간은 비궤양성 소화불량증과 연관된다. 빨리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 채 많은 양을 먹게 되므로 비만이 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혼밥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등 다른 행위를 하면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포만감이 느껴지는지 인식하지 못해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게 될 수 있다.실제로 장성인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예방의학과 교수팀의 연구결과 저녁식사 때 혼밥하는 사람은 가족이나 지인과 밥을 먹는 사람보다 체질량지수(BMI)가 평균 0.39가량 높았다. 특히 혼자 밥 먹는 20대는 BMI가 1.15나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최근엔 20~30대 젊은층에서 위암 발병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종원 중앙대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젊은층은 귀찮음이나 경제적 이유로 패스트푸드 같은 인스턴트식품으로 혼밥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중년층보다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덜해 소화기계 건강이 취약한 편”이라며 “잘못된 식습관이 주요인으로 꼽히는 20~30대 성인의 ‘미만성 위암’의 한 요인으로 혼밥을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만성은 암세포가 군데군데 얇고 넓게 퍼지면서 위벽을 파고들므로 진단 및 치료가 늦어지기 쉽다.
임상 근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혼자 밥을 먹으면 우울증 위험이 높아지고 특히 남성에서 이런 경향이 크게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직장이나 학교 등 공동체 내에서 소속감을 더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사 시간을 혼자 보내면 그만큼 박탈감이나 우울증 등을 겪을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친구나 가족과의 식사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교감 및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놓치는 것도 혼밥의 단점이다.반대로 혼밥이 자신만의 시간과 여유를 갖게 해 건강에 도움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브라이언 원싱크(Brian Wansink) 미국 코넬대 식품브랜드연구소 박사팀이 혼자 밥을 먹는 그룹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은 그룹을 비교 분석한 결과 혼밥족이 오히려 건강한 식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사람과 식사한 참가자 중 평소 소식하던 사람은 과식했으며, 반대로 평소 든든하게 먹던 사람들은 양에 차지 않게 먹었다. 원싱크 박사는 “같이 식사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식사량과 속도를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혼밥을 하는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스테파니 카치오포(Stephanie Cacioppo) 미국 시카고대 신경생리학과 교수는 혼자 식사할 때 외로움을 느끼면 지방과 칼로리 섭취량이 급증하지만 반대로 편안함을 느끼면 소화기능 향상에 도움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김종원 교수 “혼자 밥을 먹든 술을 먹든 건강을 챙기려면 정해진 시간에 느긋하게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며 “인스턴트식품 같은 간편식이나 제육덮밥 등의 한 그릇 음식보다는 여러 종류의 반찬이 나오는 백반을 먹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