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은 합병증이 나타날 때까지 뚜렷한 증상이 없어 알아채기 힘든 무서운 병이다. 모른 채 방치하는 동안 고혈압은 뇌, 신장, 안구 등 주요 장기에 각종 손상을 입힌다. 특히 대표적인 합병증으로 심뇌혈관 질환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인 사람은 일반 혈압을 가진 사람보다 심뇌혈관질환 발병과 사망 위험도가 최대 2.6배, 뇌경색이 발병할 확률은 7배나 높다. 문제는 유병률도 높다는 것이다. 60대 이상에서는 두 명 중 한 명이 고혈압이다. 예방하려면 결국 정기적인 혈압 측정이 답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인다. '집에서'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에서는 긴장, 스트레스 등으로 실제 혈압보다 높거나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혈압은 혈액이 혈관 속을 흐를 때 혈관벽의 압력으로 가장 손쉽게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혈관에 따라 동맥혈압·모세관혈압·정맥혈압 등으로 구분되며 보통 혈압은 동맥혈압을 의미한다. 동맥혈압은 심장박동에 의해 변동한다.
심장이 수축할 때 동맥에 가해지는 압력을 수축기혈압, 심장이 이완할 때 동맥의 압력은 이완기혈압이라고 표현한다. 고혈압은 수축기혈압이 140㎜Hg 이상, 이완기혈압이 90㎜Hg 이상인 상태다.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혈압을 잴 때 양쪽 팔을 모두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무의식적으로 한쪽 팔 혈압만 측정한다.
대부분 양쪽 팔 혈압은 미세하게 차이난다. 차이가 10㎜Hg 미만이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양쪽 팔 혈압이 10㎜Hg 이상 차이나면 산소와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콜레스테롤 등 지방 침전물이 쌓인 것은 아닌지 체크해보는 게 좋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양팔 혈압차가 10㎜Hg 이상 나면 혈관질환 유무를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양팔 혈압이 차이나는 것은 한쪽 팔로 가는 혈관이 가늘어졌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예가 동맥경화다. 한쪽에 동맥경화가 생기면 혈류량이 줄어 반대쪽보다 혈압이 낮게 측정될 수 있다.
손일석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동맥경화 외에도 뇌로 가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뇌졸중,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 양쪽으로 피를 균등하게 보내지 못하는 부정맥, 심장 벽 한쪽이 두꺼워진 심근비대, 혈관염 등을 앓는 환자에서 양쪽 팔의 혈압 차이가 쉽게 관찰된다”며 “양팔의 혈압이 20㎜Hg 이상 차이나면 혈관 일부가 아예 막혔을 가능성이 있어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양팔의 혈압차가 건강이상 신호임을 입증하는 국내외 연구결과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영국 엑시터대 의대 크리스토퍼 클라크(Christopher Clark) 박사팀이 ‘영국일반의저널(Journal or General Practice)’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양팔의 수축기혈압 차이가 5㎜Hg 이상이면 8년내 사망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두 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클라크 박사팀의 또다른 연구에선 양팔의 수축기혈압이 15㎜Hg 차이나면 말초혈관질환 위험이 2.5배,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들 위험이 1.5배 증가했다.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위험이 70% 늘었다.
또 김진권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신경과 교수팀의 연구에선 양팔의 수축기혈압이 10㎜Hg 이상 차이나는 뇌졸중 환자는 사망률이 2배, 이완기혈압이 10㎜Hg 차이나는 환자는 3.4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 진단을 위해 팔과 발목 부근에서 잰 혈압을 비교하기도 한다. 정상이라면 팔과 발목에서 잰 혈압이 엇비슷하다. 하지만 발목에서 잰 혈압이 두드러지게 낮으면 말초동맥질환으로 하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혈관이 완전히 막히면 발등에 있는 혈관의 맥이 잘 잡히지 않고 발이 차가워진다. 아주 짧은 거리도 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하다. 발의 상처가 잘 아물지 않고 혈액순환도 저하돼 괴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집에서 재는 가정혈압은 동일한 혈압계로 하루에 두 번, 올바른 방법과 자세로 측정해야 한다. 아침·저녁에 각 2회 측정하는 게 좋다. 아침혈압은 기상 이후 1시간 이내, 식사나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측정하면 된다. 소변을 본 뒤 5분 정도 차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측정 30분 전에는 흡연 및 카페인 섭취를 금한다. 저녁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변을 본 뒤 측정한다.
혈압은 편안한 장소에 앉아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지 않은 상태에서 측정한다. 등을 기대지 않으면 5~10㎜Hg, 다리를 꼬면 2~8㎜Hg, 커프와 심장의 높이가 다르면 10~40㎜Hg 높게 측정된다. 측정 중 말하면 혈압이 10~15㎜Hg 높게 측정될 수 있다.
팔을 팔꿈치 높이 테이블에 올려놓고 혈압계 커프를 위팔에 감되 가급적 맨팔이나 얇은 옷 위에 감는 게 좋다. 커프 위치는 심장 높이와 같게 유지하고, 손가락 한두 개 들어갈 만큼 여유 공간을 준다. 측정을 완료하면 날짜와 시간, 수축기혈압, 이완기혈압, 맥박 수를 혈압 수첩에 적는다.
하루 중 언제 혈압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혈압은 하루에도 수시로 변한다. 손일석 교수는 “주로 아침에 잠에서 깬 뒤 몸을 깨우기 위한 각성호르몬이 분비돼 혈압이 10㎜Hg 정도 상승하고 낮에는 원래 상태를 유지한다”며 “그러다 오후 6~8시에 혈압이 10% 떨어지기 시작해 수면 중인 새벽에 최저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아침 혹은 밤에만 혈압이 유독 높게 측정되기도 한다. ‘아침고혈압’은 평소에는 혈압이 정상이거나 약간 높은 정도이지만 아침에 잠에서 깬 뒤 약 두 시간 동안 수축기혈압이 최대 160~180㎜Hg까지 급격히 높아진다. ‘야간고혈압’은 낮보다 혈압이 10~20% 떨어져야 하는 밤중에 혈압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높아지는 것이다.
손일석 교수는 “혈압변동성이 큰 것은 그만큼 심장과 혈관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라며 “하루 중 혈압변동 폭이 15㎜Hg 이상이면 심혈관질환 발생 및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어 50대 이상이라면 병원에서 혈압이 정상으로 나와도 집에서 혈압을 여러 번 다시 측정하고, 하루종일 혈압 측정기를 부착하는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을 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