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항암제자문위원회(Oncologic Drugs Advisory Committee, ODAC)는 미국 릴리와 중국 이노벤트바이오로직스(Innovent Biologics·信達生物制葯)의 PD-1 억제제인 ‘타이비트’(Tyvyt, sintilimab)의 승인과 관련, 추가 임상이 필요하다며 10일(현지시각) 신약 승인을 거절했다.
릴리는 2020년 8월 18일 중국 판권은 이노벤트가, 그 외 전세계 판권은 릴리가 갖는 조건으로 글로벌 협약(선불계약금 2억달러, 최대 마일스톤 8억2500만달러, 별도의 순매출액 대비 두 자릿수 로열티)을 맺어 타이비트에 대한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에 따라 릴리는 2021년 5월에 신틸리맙을 비편평(nonsquamous) 비소세포폐암에서 자사의 ‘알림타주’(Alimta, 성분명 페메트렉시드 Pemetrexed) 및 백금착제 화학요법제와 병용하는 요법으로 1차 치료제 신약으로 FDA에 승인심사를 신청했다.
이번 승인 신청은 주로 ORIENT-11 임상 3상 시험의 결과를 기반으로 했다. 이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FDA 산하 ODAC는 14대 1의 압도적인 표결 결과로 임상시험이 중국에서만 시행된 신틸리맙에 대한 자료가 더 많이 필요하다며 승인을 거절할 것을 권고했다.
ODAC 회의에 앞서 FDA는 브리핑 문서를 통해 신틸리맙 임상시험에서 다양한 피험자군이 시험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FDA 우수종양학센터(Oncology Center of Excellence, OCE)의 리처드 파즈더(Richard Pazdur) 소장은 “단일 국가 임상자료는 미국에서 필요로 하는 인종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한 단계 후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릴리는 실망스럽다며 FDA가 신틸리맙 심사를 완료하는 동안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상시험에서 인종적 다양성과 임상윤리의 중요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임상시험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이니셔티브를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신틸리맙은 진행성 또는 재발성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1차 평가지표인 무진행 생존기간(PFS)를 충족했다. 그러나 FDA 자문위는 중국 단일 국가에서만 임상을 실시한 것 말고도 대조군을 PD-1 억제제 계열의 시금석인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로리주맙 Pembrolizumab)가 아닌 화학요법제로 설정한 점, 1차 평가지표를 전체생존기간(OS)이 아닌 PFS로 지정한 것 등을 문제삼았다.
자문위는 신틸리맙의 회의 결과 보고서에서 “단일 외국 국가에서만 실시된 ORIENT-11이 다양한 미국 인구를 대표할 수 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며 “이는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E17(다지역 임상시험)에 기술된 원칙에 어긋나며, 임상 결과를 미국 환자와 의료 현장에 적용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자문위는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가 키트루다와 화학요법제 병용요법을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적용 약물 중 가장 높은 등급인 카테고리1 중에서도 선호요법으로 권고한 것도 승인 거절의 명분으로 삼았다. ORIENT-11 임상 당시에는 화학요법제 간 병용요법이 표준치료제였으나 ORIENT-11 임상 이전부터 면역항암제가 승인됐으므로 ORIENT-11은 키트루다 병용요법을 대조군으로 삼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문위는 “신청인(릴리)은 미국 환자 등록 가능성과 관련해 FDA에 자문하지 않았다”며 “면역항암제가 이미 1차 치료제로 등재된 미국에서 ORIENT-11과 같은 임상시험 구조로는 피험자 모집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자문위는 ORIENT-11 연구의 1차 평가지표로 PFS를 설정한 것도 잘못됐다며 “현재까지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의 1차 면역요법제에 기반한 (단독 또는 병용요법) FDA 승인은 전체생존기간의 유의미한 개선을 근거로 삼았다”고 꼬집었다.
MSD의 키트루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옵디보주’(Opdivo, 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 등 PD-1 억제제 계열의 다른 효과적인 항암제가 이미 나와 있고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입증돼 신틸리맙의 승인이 시급하지 않은 상황도 승인 거절의 빌미가 됐다. 이밖에 임상시험 인구통계 특성이 미국 내 일반적인 폐암 환자 인구 분포와 차이가 나는 점도 고려 요소가 됐다.
중국에서 임상개발 비용 낮춰 저가로 미국에 공급하려던 전략에 ‘제동’ 걸려
릴리나 이노벤트가 이런 상식을 모르고 FDA에 허가 신청을 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가 FDA에 신틸리맙 승인 신청을 낸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FDA가 미국 내 약값을 낮추기 위해 중국 임상만으로도 승인이 가능하다는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FDA 내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릴리는 당초 중국 시장만을 겨냥해 2018년 이노벤트와 제휴했으나 2020년 타이비트가 ORIENT-11 임상연구에서 대조군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52%까지 줄일 수 있다는 우수한 데이터를 내놓자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 범위를 확대키로 했다.
신틸리맙은 릴리가 PD-1 억제제 계열의 최강자인 키트루다나 2인자인 옵디보의 아성을 넘기 위해 릴리가 모험을 걸고 도입한 신약후보물질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재발성 또는 불응성(R/R) 만성 호지킨림프종(cHL),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등의 적응증을 얻어 시판 중이다.
릴리는 신틸리맙을 다른 PD-1 억제제보다 40%가량 더 낮은 가격으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다국가 임상시험 시행 비용을 줄임으로써 그만큼 약가를 인하할 여지가 있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FDA는 승인을 위한 의사결정에서 의약품의 가격은 고려할 수 없으며 자문위원회 검토 또는 논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자문위 표결 결과는 중국에서 개발을 수행해 더 낮은 임상시험 비용으로 이득을 얻으려 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다국가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전체생존기간을 1차 평가지료로 삼을 경우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FDA는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바탕으로 다음 달까지 신틸리맙의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