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인 도나네맙(donanemab, 개발코드명 LY3002813)의 신약승인신청 서류 제출 완료 일정을 연기했다고 로이터 등 현지 외신이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릴리는 이날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보고하면서 일단 올해 1분기에 예정된 승인신청 완료 목표는 불가능하며 연내에 완료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는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가 유효성 논란 끝에 지난해 6월 허가를 받은 바이오젠의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에 대해 공적 의료보험 적용 범위를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로 제한하기로 최근(지난달 12일) 결정한 데 따른 결과로 관측된다. 더욱이 애듀헬름은 지난해 총 3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에 바이오젠은 지난달 말 1500명을 대상으로 애듀헬름 확증 임상시험 ‘인비전(ENVISION)’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이번 확증시험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급여 범위를 넓히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올해 4월에 나올 예정인 CMS의 최종적인 의료보험 보장 조건은 릴리의 도나네맙을 비롯해 로슈와 에자이가 개발 중인 모든 유사한 동종 계열 치료제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월 결정이 나오면 함부로 방침이 바뀌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제약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릴리는 작년 10월 26일에 FDA에 가속승인을 얻기 위해 신약승인 신청자료 순차제출(rolling submission)을 시작했다고 밝히면서 조속한 승인을 얻기 위한 시동을 걸었으나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릴리의 신경과학 부문 사장인 앤 화이트(Anne White)는 “CMS가 알츠하이머병을 다른 종류의 의약품과 다르게 취급할 이유를 상상할 수 없다”며 “이런 전례 없는 방침은 환자 집단, 보호자,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상당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며 결국 CMS가 방침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도나네맙은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중합체(oligomer)에 결합해 응집현상을 막는 항체로 지난해 3월 나온 임상 2상(TRAILBLAZER-ALZ)에서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 및 일상생활 기능 감소를 지연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알츠하이머병 위험군 3300여 명을 대상으로 3상(TRAILBLAZER-ALZ 2) 연구를 진행 중이다. 3상 확증시험의 데이터는 내년 중반에 나올 예정이며, 릴리는 이후 얻게 될 공적 의료보험 급여에 관한 명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도나네맙의 충분한 임상적 이점 증거자료만이 이 약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임상적 유효성을 전제로 2024년이나 돼야 승인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릴리는 작년 4분기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인 ‘트루리시티(Trulicity, 성분명 둘라글루타이드 dulaglutide)’와 코로나19 항체 치료제인 밤라니비맙(bamlanivimab)+에테세비맙(etesevimab) 병용요법제 덕분에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거뒀다.
릴리의 분기 매출액은 79억99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으며, 비-GAAP(미국 일반기업회계기준) 주당순이익도 2.49달러로 8% 증가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릴리의 매출액은 283억1800만달러로 전년보다 15% 늘었으며, 비-GAAP 주당순이익은 8.16달러로 20% 늘었다. 릴리는 올해 전체 매출액은 278억~283억달러, 비-GAAP 주당순이익은 8.50~8.65달러로 예상했다.
한 해 동안 트루리시티 매출은 64억72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8% 증가했으며,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매출은 22억392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릴리 및 리제네론의 코로나19 항체 치료제가 오미크론 변이에 효과적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미 여러 미국 주정부에서 사용을 제한해왔기 때문에 향후 매출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릴리는 항체 치료제 외에도 관절염 치료제 JAK 억제제 계열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인 ‘올루미언트정’(Olumiant 성분명 바리시티닙, Baricitinib)을 산소 보충이 필요한 코로나19 입원 환자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올루미언트는 최근 루푸스(전신성홍반성낭창, Systemic Lupus Erythematosus, SLE) 적응증 확보를 위한 임상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미국에서 아토피피부염 적응증 승인 심사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등 더 큰 시장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