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K씨(38)는 몇 달 전부터 목이 뻐근하더니 최근에는 등으로까지 통증이 번졌다. 급기야 머리까지 아파 K씨는 덜컥 겁이 나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C자 형태여야 할 목뼈가 일자로 펴져 버린 일명 '거북목'. 수술이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답을 들었지만 레저활동을 즐기는 그로서는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K씨가 선택한 치료법은 '카이로프랙틱'.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이 방법으로 4개월 만에 목디스크를 고쳤다는 말을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요즘 김씨처럼 허리나 어깨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형외과 대신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이나 '추나요법'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척추관절 병원들의 수가 포화 상태에 달하면서 도수치료, 일명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이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불거진 과잉수술 논란, 최소침습적 시술 인기 등의 두가지 좋은 조건이 맞물린 데 따른 어부지리다. 비보험인데다 1회 시술비용이 5만~12만원에 달해 병원의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모델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환자들도 수술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이 치료법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서울 강남 일대 정형외과들은 인터넷을 통해 카이로프랙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의들은 카이로프랙틱의 임상적 근거가 아직 불충분한데도 비전문가들이 불법적으로 시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엔 정부가 카이로프랙틱의 국가공인자격 허용을 추진하면서 의사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정형외과 및 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은 카이로프랙틱이 엄연한 의료행위로서 오직 의사들만이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가뜩이나 병원 상황이 악화된 상황에서 카이로프랙틱이 활성화되면 자칫 환자를 모두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반면 카이로프랙틱 전문가, 이른바 DC(Doctor of Chiropractic) 자격 소지자들은 이 치료법이 현대의학과는 엄연히 다른 분야로 별도의 자격면허가 필요하며, 이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카이로프랙틱은 그리스어 중 ‘손’을 뜻하는 ‘카이로(Chiro)’와 ‘치료’를 의미하는 ‘프락티스(Practice)’가 결합된 것으로 틀어진 척추뼈와 골반을 손으로 교정해 요추간판수핵탈출증(허리디스크) 같은 근골격계질환, 생리통 등 내과질환을 치료하는 의료행위다. 약물요법이나 수술을 하지 않고 전문가의 손만으로 치료하는 게 핵심이다.
손기술로 척추 후관절(facet joint)에 운동범위를 약간 넘는 정도로 자극을 가하면 척추의 비정상적인 배열을 교정하고, 신경이 눌리는 부분을 풀어줄 수 있다. 또 관절과 근육 속의 감각수용체 등을 자극해 통증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할 수 있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뼈가 어긋난 부위와 방향에 따라 환자를 눕히는 자세와 몸을 고정시키는 자세, 힘을 가하는 정도 및 방향 등이 달라진다. 치료 시간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치료법이 언제, 누구에 의해 창시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관련 전문가들은 1895년 캐나다의 의학자 다니엘 데이비드 팔머 박사가 고대 이집트에서 등이나 등뼈를 두드리고 찌르고 눌러 질병을 치료했던 방식을 발전시킨 것을 기원으로 여긴다.
팔머 박사는 자신의 집 하인이 무거운 짐을 나르다 갑자기 등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뒤 난청이 생긴 것을 보고 척추교정 치료법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그가 하인의 솟아난 등뼈를 정상 위치로 돌려 놓자 청력이 회복됐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카이로프랙틱 이론이 모두 타당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통증완화 및 근골격계질환 치료에 어느 정도 도움될 수는 있지만 기존 정형외과적 치료만큼은 효과가 없다”며 고 말했다.
내과질환을 척추 교정으로 고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척추가 질병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기 때문에 척추를 교정한다고 해서 내과적 질환이 치료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다. 실제로 2014년 11월 미국에서 30세 남성이 목에 카이로프랙틱 시술을 받은 뒤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김준성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목에는 뇌부터 온몸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잘못 건드리면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며 “시술 후 통증이나 어지러움 등 가벼운 증상부터 척수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뇌졸중, 사망 등 치명적인 부작용까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세계척추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카이로프랙틱을 받은 뒤 통증, 두통, 피로감, 다리로 뻗치는 듯한 통증(방사통), 현기증 등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이 중 74%는 하루 안에 사라진다. 하지만 드문 확률로 허리디스크나 마미증후군(cauda equine syndrome)이 발생할 수 있다. 마미증후군은 바깥으로 튀어나온 추간판(디스크)이 신경다발을 눌러 발생하는 질환으로 항문과 회음부의 감각 저하, 발의 감각 저하, 요실금 등을 유발한다. 엉치, 허벅지, 다리 쪽으로 뻗치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땐 바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한다.
또 국내에는 미국만큼 제대로 된 카이로프랙틱 교육기관이 극히 드물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일본, 중국 에서는 정식 의료기법 중 하나로 인정된다.
특히 카이로프랙틱 요법을 체계화한 미국은 카이로프랙틱대학(College of Chiropractic)만 18곳이 있고, 6년간 4200시간의 교육을 수료한 사람에게 카이로프랙틱의사(DC, Doctor of Chiropractic) 자격을 부여한다. 미국에만 5만명 정도의 DC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의 경우 약 200여명의 DC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국내에서는 DC 자격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DC 자격을 취득했더라도 국내에서는 비의료인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카이로프랙틱을 시행하다 적발되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이 치료법을 둘러싼 의사와 DC간의 다툼도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한 의사단체들은 최근 카이로프랙틱 관련 연수강좌 등을 개최하며 DC를 상대로 일종의 선전포고를 했다. 카이로프랙틱을 제도화해 DC 자격을 허용하려는 정부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의협은 “카이로프랙틱은 도수치료의 일종으로 의사가 시행해야만 국민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며 “그럼에도 외국에서 카이로프랙틱 교육을 수료한 비의료인 단체는 ’카이로프랙틱사‘라는 별도 자격 신설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보건의료 기요틴‘ 정책을 통해 이를 허용하려 한다”며 “카이로프랙틱은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의료행위로 제대로된 의학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비의료인에게 결코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또다른 정형외과 전문의는 “의사 중에도 미국에 가서 카이로프랙틱 과정을 이수하고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있다”며 “이처럼 정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 카이로프랙틱을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 갑자기 국가공인 자격으로 허용하는 것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부유층 자녀 중 미국에 유학을 가 DC자격을 취득하는 사람이 많아 지속적으로 국가공인자격 인정이 추진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는 수가 등 여러 상황이 달라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협 관계자는 “5년 전 기준으로 미국에서 DC가 받는 진찰료는 80달러, 의사(MD)는 150달러로 단지 진찰료가 저렴해 DC를 찾는 환자가 많았다”며 “미국의 경우 의료비가 비싸 가격 측면에서 DC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전문의의 진찰료가 9000여원에 불과해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DC들은 의사들이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로 자처하기엔 임상 경험이나 교육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반발한다. 대한카이로프랙틱협회(KCA)는 “의협은 카이로프랙틱의학을 단순한 도수치료로 폄하하고, 급조된 30시간의 조악한 단기연수로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지침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세계보건기구(WHO) 카이로프랙틱에 관한 교육안전지침에 따르면 의사나 한의사 등 의료인도 카이로프랙틱으로 환자를 진료 및 치료하려면 기존 의대 교육 외에 카이로프랙틱 교육을 추가로 2200시간 이상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KCA 관계자는 “카이로프랙틱이란 약을 사용하지 않는 온전한 하나의 학문이어서 현대의학 등 다른 학문 밑으로 들어갈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환자의 안전을 위해 카이로프랙틱 치료는 의사가 아닌 카이로프랙틱 전문가가 치료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의사들의 이중적인 행태도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