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브비·바이오젠·BMS·길리어드·화이자·GSK·사노피 등 동참 … 조 바이든 ‘인하’ 공약 불구 ‘기업친화적’ 자세 한계
올해도 어김없이 미국 제약업계는 연초 약가인상을 단행했다. 의약품 약가정보 조사기관인 ‘굿알엑스’(GoodRx)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각)을 기준으로 589개 품목의 약가가 평균 4.2% 인상됐다. 작년 1월 3일에는 463품목이, 재작년 동기에는 295 품목이 오른 것과 대비된다. 다만 보험사가 제약사와 정가 할인 협상에 나서기 때문에 소비자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다소 제한적일 수 있다.
2020년 제약사들은 총 860개 이상의 의약품 가격을 평균 5% 인상했다. 전반적으로 2015년 이후 인상 규모와 의약품의 수의 추세가 상당히 둔화된 양상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약가를 지속적으로 억눌러 왔기 때문에 올해는 약가가 상당 폭 인상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건강보험 관련 시장분석 기업 3액시스어드바이저스(3AxisAdvisors)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약가 인하 행정명령 추진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따라 입은 손실을 메우기 위한 올해 미국 시장에서 약가를 인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코로나19의 유행은 환자의 의사 대면진료, 병원방문 자체를 제한했고 일부 의약품의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올 초 가장 많이 올린 것은 스위스 제약사 비포파마(Vifor Pharma)의 만성신장질환 환자를 위한 철분결핍 개선제인 ‘베노퍼’(Venofer 성분명 수크로오스수산화제이철착염 Ferric Hydroxide Sucrose Complex) 정맥주사제로 14.58% 껑충 뛰었다.
화이자는 130 품목의 약가를 0.5~5% 인상했다. 제네릭 부정맥치료제인 ‘노르페이스 지속정’(Norpace CR 성분명 디소피라미드 인산염, Disopyramide Phosphate)을 0.22%로 최소 인상한 데 반해 폐렴구균백신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백신인 ‘프리베나13주’는 5,14%나 올렸다.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젤잔즈정’(Xeljanz, 성분명 토파시티닙 Tofacitinib)과 CDK 억제 경구용 유방암 치료제 ‘입랜스캡슐’(Ibrance 성분명 팔보시클립, palbociclib), 신장암 치료제 ‘인라이타정’(Inlyta 성분명 액시티닙 axitinib)도 가격 인상 리스트에 포함됐다.
화이자의 에이미 로즈 화이자 대변인은 보도자료에서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평균 약값 인상 폭을 1.3%로 맞췄다”며 “신약개발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애브비에 인수된 엘러간은 30 품목 이상을 5% 올렸다. 그밖에 몇가지 품목을 낮은 한자리수 % 올렸다. 보슈헬스케어( Bausch Healthcare)는 39 품목의 가격을 3.43~7.9% 인상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는 11개 품목의 가격을 올렸는데 가장 많이 올린 게 화이자와 공동 판매 중인 ‘엘리퀴스정’(Eliquis, 성분명 아픽사판, apixaban)으로 6% 인상됐다.
이와 함께 고가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면역관문억제제 ‘옵디보주’(Opdivo, 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와 ‘여보이주’(Yervoy, 성분명 이필리무맙 ipilimumab)의 약값이 올라갔다. 계열사인 세엘진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Revlimid, 성분명 레날리도마이드 lenalidomide)의 가격도 인상됐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31개 의약품 및 백신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특히 백신은 5% 이상 올랐는데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Shingrix)와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등을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종합 백신 페디아릭스(Pediarix)의 가격을 각각 7%, 8.59% 올리기로 했다
천식 치료제 흡입기 ‘엘립타’ 시리즈(렐바, 아노로, 이뉴이티, 인크루즈 등)와 난소암 1차 치료제 ‘제줄라캡슐’(Zejula 성분명 니라파립, niraparib, 다케다와 공동개발), 에이즈(HIV감염증) 치료제 등의 가격도 인상했다.
애브비는 주력 의약품인 ‘휴미라주’(Humira 성분명 아달리무맙 Adalimumab)의 2023년 특허 만료를 앞두고 신형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카이리치프리필드시린지주’(Skyrizi 성분명 리산키주맙, Risankizumab)와 브루톤 티로신 키나제(Bruton’s tyrosine kinase (BTK) 억제제 ‘임브루비카캡슐’(Imbruvica 성분명 이브루티닙 Ibrutinib)의 정가를 7.4% 인상했다. 또 안구건조증 치료제인 ‘레스타시스점안액’(Restasis 성분명 사이클로스포린 cyclosporin)과 과민성대장증후군 치료제인 위장약 ‘린제스캡슐’(Linzess, 성분명 리나글로티드, Linaclotide)를 5% 인상했다.
바이오젠은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시장의 경쟁이 격화된 데다가 베스트셀러 ‘텍피데라’(Tecfidera 성분명 디메틸푸마르산염 Dimethyl fumarate)가 시장 독점권을 잃자 후속 약물인 ‘티사브리’(Tysabri 성분명 나탈리주맙 natalizumab, 2004년 출시)의 정가를 5.3% 올렸다. 티사브리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부 특허는 2015년에 소멸됐지만 다른 특허는 2023년까지 적용된다. 노바티스의 제네릭 부문 계열사인 산도즈(Sandoz)는 티사브리 바이오시밀러의 후기 테스트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어 티사브리 특허 만료 후 강력한 도전자가 될 전망이다.
길리어드는 HIV 치료제 ‘빅타비’와 ‘트루바다’ 가격을 올렸다. 테바는 약 15개 의약품 가격을 인상했다. 희귀신경질환인 헌팅턴무도병 치료제 ‘오스테도정’(Austedo 성분명 듀테트라베나진, deutetrabenazine)과 흡입형 스테로이드 천식치료제인 ‘큐바르’(Qvar 성분명 디프로피온산베클로메타손 beclomethasone dipropionate HFA)는 5~6%가 인상됐다. 근육이완제 ‘암릭스캡슐’(Amrix 성분명 사이클로벤자프린 Cyclobenzaprine)과 기면증 치료제 ‘누비질정’(Nuvigil 성분명 아모다피닐, Armodafinil)은 9.4% 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 당시 노인의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가 제약사와 약가를 직접 협상할 수 있도록 허용, 약가 인하 방향을 지지했다. 이런 방안은 현재 시행이 금지돼 있다. 정부가 민간에 대해 억압적으로 가격을 낮추라는 것은 자유의 침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능가할 때 약가에 리베이트(제약사가 환자나 의사에게 되돌려주는 돈)를 부과하는 것과 같은 대안을 제안해 놓고 지나친 약가 인상에 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처방약 가격 인하를 놓고 상당한 압박을 가해왔다.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생산을 독려했고, 빅파마 대표를 백악관으로 불러 약가를 내리라고 요구했다. 캐나다로부터 저렴한 의약품을 수입해오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 역시 약가를 낮추는 데는 동의하지만 기업친화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것에 비춰볼 때 물가상승률 수준의 약가 제한에 머물 공산이 크다. 바이든은 중산층, 저소득층, 불법이민자 등에 보험 혜택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보험 옵션을 제공하는 ‘오바마케어’를 지지하고 있다. 보험 혜택 강화는 의약품 수요의 증가를 불러오고 저렴하게 의약품을 조달하려면 합리적인 약가 형성이 절실하다.
그 대안의 하나로 신약에 대해 독립적인 기관이 약가를 산정하는 방안도 올려져 있다. 외국약 수입 병행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의약품과의 약한 전쟁’(Less war on drugs)으로 평가받는다. 새 미국 행정부가 약가인하 압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외국약에 대해 문호를 개방할 때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을 가진 한국 의약품도 대미 수출과 기술이전에 기대를 가져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