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신약개발 … 다른 빅파마보다 늦게 진출, 기존 병소 중심 치료제 개발 탈피
릴리는 유전자치료제 전문기업인 미국 뉴욕 소재 프리베일테라퓨틱스(Prevail Therapeutics, NASDAQ: PRVL)를 10억4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15일(현지시각) 발표했다.
현금으로 8억8000만달러를 지불하고 지분을 매입하는데 주당 22.5달러로 전일 종가에 80%의 프리미엄이 붙은 수준이다. 나머지 1억6000만달러는 개발 중인 신약개발 프로그램이 시장에 나올 경우 붙는 최대 마일스톤이다. 이를 위해 시판 승인시 주당 현금 4달러를 지급하는 조건부 가격 청구권(contingent value right, CVR) 조항을 걸었다.
CVR은 2024년 12월 31일까지 미국, 일본, 여러 유럽 국가에서 시판 승인을 받은 경우 주당 최대 4달러를 지급하며 거래가 불가능한 조건부 권리다. CVR은 2025년부터 2028년 12월 1일 만료될 때까지 매월 주당 8센트씩 줄어든다.
이번 인수 소식에 프리베일의 주가는 14일 종가 12.5달러에서 15일 22.78~23.02달러를 오가며 90% 안팎 폭등했다.
프리베일은 리젠크스바이오(Regenxbio)의 유전자 치료 기술을 라이선스 도입해 2017년에 출범했다. 파킨슨병의 분자 메커니즘을 전문 연구해온 컬럼비아대의 아사 아벨리오비치(Asa Abeliovich) 교수가 이끌어왔다. 유전성 파킨슨병과 전두측두엽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FTD) 유전자치료제인 PR001과 PR006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릴리의 신경계질환 파이프라인은 거의 전적으로 알츠하이머병과 치매에 집중돼 있다. 프리베일의 PR006은 이들 질환과 관련된 병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릴리의 생물학적제제인 도나네맙(donanemab) 및 자고테네맙(zagotenemab)과 시너지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두 항체 약물은 현재 중기 임상 단계다.
PR006은 신경세포의 성장을 보호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프로그래눌린(progranulin)이라는 단백질의 수준을 낮추는 GRN 유전자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기전이다. PROCLAIM 1/2상 임상이 이달 시작돼 최근 첫 투여가 이뤄졌다. PR006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집행위원회(EC)로부터 FTD에 대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또 GRN 유전자 돌연변이 전두측두엽 치매(FTD-GRN)에 대해 FDA 패스트트랙으로 인정받았다.
PR001은 GBA1 유전자 변이로 유도되는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with GBA1 mutations, PD-GBA) 및 가우셔신경병증(neuronopathic Gaucher disease, nGD)을 교정하는 유전자치료제다. GBA1는 노화로 인해 늘어나고 뇌안에 축적되는 당지질(glycolipids)의 재활용과 처분을 촉진하는 뇌내 지질 용해 효소(beta-glucocerebrosidase, 약어 GCase)를 만들라고 지시하는 유전자다. 이 변이를 교정하는 게 바로 PR001이다. PD-GBA를 적응증으로 하는 PROPEL 1/2상이 진행 중이고, nGD 2형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PROVIDE 1/2상 연구는 환자를 모집 중이다.
노바티스, 로슈,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등 빅파마가 유전자치료제를 인수하는 지난 몇 년 동안 릴리는 거의 ‘부업’ 수준으로 이 분야를 등한시해왔다. 대신 치매의 병소에 집중해 치료하는 고식적인 신약개발에 나섰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연초에 10억~50억달러 범위에서 유전자치료제 기업을 인수해보겠다고 약속한 것을 이참에 지키게 됐다. 지난달 20일엔 뒤센근위축증 등 3가지 유전자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Durham) 소재 바이오기업 프리시전바이오사이언스(Precision BioSciences)에 1억3500만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릴리 CEO 데이비드 릭스(David Ricks)는 15일 “프리베일 인수는 좋은 진입점처럼 보인다”며 “이번 거래가 유전자치료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노력이 아니라 우리의 첫 번째 노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릴리의 유전자치료제 분야 투자는 2019 년 5월 노바티스의 ‘졸겐스마’(Zolgensma, 성분명 오나셈노진 아베파보벡-xioi, onasemnogene abeparvovec-xioi)에 대한 출시 이후 1년 반이 넘도록 광범위하게 성장하는 유전자치료제 파이프 라인에도 불구하고 한 건도 FDA가 추가 승인을 내리지 않아 이를 바라보는 유효성 및 안전성의 잣대가 엄혹해진 게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 단행돼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9일 바이오마린의 A형 혈우병 신약인 ‘발록스’(Valrox 성분명 발록토코젠 록사파보벡 Valoctocogene Roxaparvovec, 최근 상품명을 록타비안 Roctavian으로 변경)에 대해 FDA가 반응종결레터(CRL)을 통해 승인을 거절한 것은 업계에 충격을 줬다. 약효의 지속성이 떨어져 투여 후 12~18개월이 지나면 혈액응고 8인자 수치가 급격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출혈을 방지하려면 재투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미국 주식 분석가들은 이번 릴리의 신규 투자에 대해 전략적으로 합당하고, 이 분야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감소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릴리는 2021년 매출 전망치를 265억~280억달러로, 주당 수익은 7.25~7.90달러로 제시했다. 이 중 코로나19 항체 치료제인 ‘밤라니비맙’(bamlanivimab, LY-CoV555)의 매출이 약 10억~2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시장조사업체 레피니티브(Refinitiv)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264억7000만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또 재무 지침을 업데이트하여 2020년 매출 추정치를 237억~242억달러에서 242억~247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 미국 정부가 밤라니비맙을 구매하는 데 12억달러를 지출해 매출 추정치를 높인 것이라고 릴리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