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개인의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성장호르몬 제제를 ‘키 크는 주사’로 오남용하는 사례가 여전해 주의가 요구된다. 성장호르몬 제제는 부작용이 적은 편이지만 암 발생과의 연관성은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국내에선 △소아·성인 성장호르몬결핍증 △터너증후군 △소아 만성신부전 △프래더윌리증후군(Prader-Willi Syndrom) △임신주수에 비해 작게 태어난(small for gestational age, SGA) 저신장 소아 등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국내에 출시된 약은 한국머크 ‘싸이젠주’(성분명 유전자재조합 사람성장호르몬 recombinant human growth hormone, 또는 소마트로핀 somatropin, 이하 동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약의 허가사항 내 사용 주의사항으로 △하수체성소인증 환자에서 백혈병 발생 △유방암 위험 증가 △뇌종양 재발 등 사례 보고가 언급돼 있다.
최근엔 스리프리야 라만(Sripriya Raman) 미국 미주리대 캔자스시티(UMKC) 어린이병원(Children‘s Mercy Hospital) 소아내분비내과 교수팀이 미국 생물의학 논문 데이터베이스 ‘펍메드’(PubMed)를 활용해 성장호르몬 치료가 발암위험을 높이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성장호르몬 관련 임상연구 자료를 후향분석한 연구로 전향분석 연구에 비해 결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내분비학·대사저널’(JCEM, Journal of Clinical Endocrinology & Metabolism) 2015년 6월호에 게재됐다.
김성운 경희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대한내분비학회지’ 2006년 제21권 제6호에 실은 보고서(‘성인에서 성장호르몬 보충요법 부작용: 새로운 암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서 “성장호르몬 보충요법은 이를 투여하지 않을 때보다 악성종양 발생위험을 약간 높일 가능성이 있지만 평균 4년 넘게 장기간 추적관찰한 임상연구가 아직 없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과 발암 위험 간 상간관계의 이론적 근거로는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이 간에서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I, insulin-like growth factor-I)를 생산하는 데 활용되는 게 꼽힌다. IGF-I은 미토겐 활성화단백질 키나제(mitogen-activated protein kinases, MAPK) 신호전달체계를 통해 악성종양 증식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혈중 IGF-I 값이 높은 경우 성장호르몬을 투여하지 않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연구에서 대장암·유방암·전립선암·폐암 등 발생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성장호르몬 치료와 암 발생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는 결과가 상반돼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히더 딘(Heather Dean) 캐나다 매니토바대 의대 소아과 교수팀이 JCEM 1996년 1월호에 실은 연구 결과 뇌종양 재발은 소아 성장호르몬 치료 환자에서 흔한 사망원인으로 보고됐다.
반면 안토니 스워들로우(Anthony Swerdlow) 영국 암연구소(Institute of Cancer Research) 역학 교수는 성장호르몬 투여가 뇌종양이나 급성백혈병 재발위험을 높이지 않았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JCEM 2000년 12월호에 게재했다.
성장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는 말단비대증과 성장호르몬 성분을 보충해 치료하는 성장호르몬결핍증은 약제 부작용이나 합병증 양상이 전혀 다르다. 말단비대증 원인은 뇌하수체 종양으로서 암과의 연관성에 대해 학계 의견이 분분하다.
대장내시경으로 용종을 모두 제거한 말단비대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IGF-I 농도가 높은 경우 새로운 대장선종이 발생할 확률이 IGF-I 농도가 정상인 경우보다 4.5배 증가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다른 연구에서 말단비대증과 악성종양 발생률·유방암 사망률 등과의 상관 관계는 환자 수가 적어 통계적 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전반적인 부작용 발생률은 3% 미만으로 낮은 편이며, 증상 대부분은 치료를 중단하거나 용량을 줄이면 개선된다. 대표적인 이상반응은 양성 두개내압항진증(intracranial hypertension), 염분저류로 인한 부종 등이다. 뇌압이 상승하면 두통, 구토, 어지럼증이 나타나게 된다. 또 복통이나 근육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남아는 여성형유방 발생도 주의해야 한다. 이같은 부작용은 보통 첫 주사 후 한달 후면 사라지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대퇴골두분리증(slipped capital femoral epiphysis)과 척추측만증 악화는 성장호르몬 투여가 직접적인 원인이기보다 급격한 성장에 따른 이차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성장호르몬 과다 투여는 인슐린저항성을 유발해 혈당 수치를 높일 수 있는데 터너증후군·프래더윌리증후군 환자 등 제2형 당뇨병 위험군은 정기적인 혈당검사가 필요하다.
비만도가 높고, 호흡기감염 경험이 있는 프래더윌리증후군 환아에서 성장호르몬 치료 초기에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례가 보고됐다. 성장호르몬 치료가 편도나 아데노이드 같은 림프조직 비대를 유도해 수면무호흡증을 초래한 것으로 추측되므로 관련 위험군에선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이기형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대한의사협회지’ 2008년 9월호에 실은 보고서(‘저신장 소아 성장호르몬 치료 득과 실’)에 따르면 성장호르몬 치료는 1958년에 사체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호르몬 성분을 성장호르몬결핍증 환자에게 투여한 게 시초다. 이후 사체 추출 성장호르몬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Creutzfeldt-Jakob Disease, CJD) 유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1985년까지 사용이 중지됐다. 바로 그 해(1985년)에 유전자를 재조합한 사람성장호르몬이 개발되면서 지금까지 안전성 우려에 따른 사용 제한 없이 공급되고 있다.
다만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허가 적응증 중 하나인 특발성저신장증(ISS, Idiopathic Short Stature)은 개인마다 효과 차이가 심해 일부 환자에선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보고가 있다. 효과는 치료 시작 연령이 어릴수록, 저신장 정도가 심할수록, 치료기간이 길수록, 성장호르몬 치료 용량이 높을수록 좋은 편이다.
특발성저신장증은 성장호르몬 분비가 정상인데도 키가 자기 나이 또래에 비해 3백분위수(100명 중 작은 순서로 3위 이내) 또는 -2표준편차(SD) 미만인 경우로 발병 원인이 불분명하다.
레이먼드 힌츠(Raymond Hintz)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내분비내과 교수팀이 세계 의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 1999년 2월호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특발성저신장증 환자 121명을 대상으로 성장호르몬 제제를 환자체중(㎏)당 매일 0.125단위 또는 매주 0.3㎎을 2~10년 주사한 결과 치료 전 신장 표준편차가 -2.7SD에서 치료 후 최종 성인키의 -1.0 SD로 호전됐다. 총 80명이 성인키에 도달했는데 치료 전 예상키 대비 최종 성인키가 남자는 5㎝, 여자는 5.9㎝ 각각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성장호르몬치료는 연간 성장 속도가 2~3㎝이하가 되면 치료를 중단하는 게 원칙이다. 흔히 발진, 가려움증 등 과민반응이나 부종이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이기형 교수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할 때 저신장 소아가 가질 수 있는 키에 대한 열등감과 거의 매일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투여하는 부담감 등 심리적 측면과 치료 비용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장호르몬 제제는 특발성저신장증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약제비 전액을 부담한다. 급여가 인정되는 적응증 기준 1개월 약가는 40만~50만원 수준으로 전체 치료를 마치는 데 수천만원이 들어간다.
성장호르몬 주사제 급여가 인정되는 적응증인 터너증후군과 프래더윌리증후군은 유전질환이다. X염색체 이상이 원인인 터너증후군은 여아 3000~4000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 저신장, 난소 발육부전, 자가면역성 갑상선염, 신장·심혈관·골격계 문제를 동반한다.
15번 염색체 이상으로 발생하는 프래더윌리증후군은 약 1만5000명당 1명 빈도로 관찰된다. 2세 미만에선 식욕부진·근긴장도 저하·발달지연 등이 특징인데 나이가 들면 식욕조절 실패로 인한 비만, 수면·행동장애, 저신장, 당뇨병, 성선기능저하증, 척추측만증 등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