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간암환자 생명을 볼모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벼랑끝 약가협상을 진행 중인 게르베코리아를 규탄한다고 4일 밝혔다.
이 회사는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로 조영제 ‘리피오돌’(성분명 양귀비열매유래 요오드화 지방산 에틸에스테르)을 국내에 독점공급하고 있다.
리피오돌은 간암 환자에게 경동맥화학색전술(TACE)을 할 때 항암제와 혼합해 사용한다. 이들 환자에서 필수적이어서 퇴장방지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게르베는 지난 3월 심평원에 약가를 기존보다 5배 높일 것을 요구하면서 물량 부족을 이유로 공급량을 10분의 1로 줄여 환자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최근 두 달간 환자들에게 투여해온 재고분마저 바닥난 실정이다.
앞서 2012년에 약가조정을 신청해서 약값을 인상했지만 2015년 이후 수입원가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아 손실이 누적됐다는 게 이 회사가 약가조정을 또다시 신청한 근거다.
리피오돌 단위(앰플)당 가격은 5만2560원인데 심평원에 26만2800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게르베는 최근 중국 정부가 약가를 30만원정도로 올려주면서 중국에 물량을 몰아주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말 리피오돌 수입을 재개하는 조건으로 ’합리적 가격 책정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당분간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하므로 의료진에게 이 약이 가장 필요한 환자부터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심평원과 약가협상이 결렬되면 환자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단체는 “게르베가 약 수입을 중단한 상태에서 심평원과 약가협상을 벌이는 것은 제약사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비인도적 처사”라며 “독점 제약사의 갑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환자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외국계 회사가 제품 가격으로 횡포를 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에 한국노바티스는 약가를 인상하기 위해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이매티닙, imatinib) 공급을 중단했다가 호된 질타를 받고 다시 공급했다. 지난해엔 다국적 의료기기회사 고어코리아가 독점공급하는 치료재료 가격을 인상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아 심장수술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인조혈관 사업부를 국내에서 철수했다. 두 회사는 공급중단 조치 후에 제품 가격을 높게 받는 데 성공했다.
환자단체는 “정부는 제약사의 독점 횡포에 의약품 강제실시, 병행수입 등으로 강력 대응해 환자 생명을 지켜야 한다”며 “법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제실시는 공익을 위해 정부기관 등이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제품의 특허를 무효화하는 제도다. 환자단체와 시민단체가 앞서 특허청에 청구한 글리벡, 한국로슈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치료제 ‘푸제온’(엔푸버티드, enfuvirtide) 강제실시는 기각됐다. 정부가 통상 입력에 부담을 느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23일 시민단체가 게르베에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협박을 멈춰라는 성명을 발표한 이후 “리피오돌이 원활히 공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