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군을 세분화한 맞춤치료를 의미하는 정밀의학은 약에 효과를 보일 일부 환자를 가려내는 바이오마커를 활용한 치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오마커를 통해 질환 발병으로 유발된 체내 변화를 감지하는 의료기기인 동반진단키트가 신약과 함께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마커는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 단백질 발현 상태 등 질환 발병으로 유발된 체내 변화를 감지하는 생체표지자다. HER2 표적치료제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 trastuzumab, 판매사 한국로슈)이 개발되면서 중요성이 대두됐다.
손주혁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이사(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EGFR 표적치료제 ‘타그리소’(오시머티닙 osimertinib,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항PD-1/PD-L1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 한국MSD)과 ‘옵디보’(니볼루맙 nivolumab, 한국오노약품공업과 한국BMS제약) 등 기존 항암제의 한계를 뛰어넘은 비싼 신약이 속속 출시되면서 약에 따라 높은 효과를 보일 환자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 효율을 높이고, 환자와 정부의 약제비 부담과 부작용 위험은 낮출 수 있어서다.
그는 “암조직의 PD-L1 발현율은 항PD-1/PD-L1 면역항암제의 비소세포폐암 2차치료제로서 경제성(비용 대비 효과)을 평가하는 바이오마커로도 활용됐는데 더 확실한 바이오마커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항PD-1/PD-L1 면역항암제는 돌연변이가 심한 비소세포폐암·흑색종·대장암 등 암종에서 뛰어난 효과가 기대되는 반면 돌연변이가 적은 유방암·간암·췌장암 등에선 반응률이 낮다.
기전상 암조직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심할수록 변형된 단백질이 과다 발현되면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외부물질로 인식하기 쉽기 때문에 반응률이 높을 수 있다. 고도의 현미부수체불안정(MSI-H, Microsatellite Instability-High) 등 관련된 새 바이오마커도 등장했다.
키트루다는 지난해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암이 발생한 위치에 상관 없이 MSI-H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인 사람에게 처방할 수 있도록 추가 적응증으로 획득했다. MSI-H는 암종별 관련 환자가 몇 명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전체 암환자 중 극소수에서 관찰된다.
옵디보는 비소세포폐암 1차치료제로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3상 임상연구 ‘CheckMate-227’를 통해 높은 종양변이부담(TMB, Tumor Mutation Burden)을 새 바이오마커로 제시했다.
손 교수는 “앞으론 신약과 진단키트를 함께 개발하지 않으면 신약이든 진단키트든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전향적인 임상연구에서 신약과 진단키트의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의료현장에 바로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향연구는 미래지향적으로 임상에 참여한 환자를 관찰한다. 이에 반해 후향연구는 이미 도출한 임상연구 데이터를 과거 지향적으로 분석한다.
특정 약의 동반진단키트로 최근 허가받은 품목으로는 키트루다의 ‘PD-L1 IHC 22C3 PharmDx’(개발사 다코), 타그리소의 ‘코바스 EGFR변이검사 버전2’(한국로슈진단) 등이 있다.
서울은 지난해 전세계 도시 중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시행된 곳이지만 국내 암 임상연구가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임상연구 활성화는 진단키트 등 국내 헬스케어산업이 성장하는 밑거름이지만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손 교수는 “한국 임상연구 인프라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해외 환자를 보낼 정도로 우수한 편”이라며 “다만 이들 제약사가 임상데이터 소유권을 갖고 있어 국내 연구진이 데이터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정밀의료에 활용되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장비를 활용한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의 정확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유전체 빅데이터와 질환 간 상관성을 분석하는 바이오인포매틱스(BI) 전문가를 양성하고, 관련 업체들이 개별적으로 운영 중인 기존 검사시스템을 표준화하지 않으면 검사결과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