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진통제 ‘애드빌 리퀴겔’(성분명 이부프로펜, ibuprofen)을 복용해 본 환자는 이 약만 찾아요.”
‘세계 판매 1위 진통제’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국내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화이자의 애드빌을 두고 한 약사(경기도 H약국)가 한 말이다. 그는 애드빌 재고가 떨어져 환자들에게 한국얀센의 ‘타이레놀정’(아세트아미노펜, acetaminophen)을 권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고 한다.
애드빌과 타이레놀은 세계 진통제 일반의약품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글로벌 매출은 애드빌이 앞서지만 국내에선 오랜 역사를 가진 타이레놀이 압승을 거둬왔다.
두 회사는 이들 약의 진통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화이자는 “애드빌은 타이레놀 대비 효과가 뛰어나면서도 단기간 복용할 경우 위장관 부작용도 비슷하다”고 말하는 반면 얀센은 “타이레놀은 애드빌과 비교해 더 안전하면서 효과는 대등하다”고 맞선다.
화이자에 따르면 애드빌 리퀴겔은 이부프로펜 단일 성분을 함유한 액상 연질캡슐로 동일 성분의 일반 알약 제형보다 약물 붕해·용출 속도가 2배가량 빠르다.
사랑니발치 후 중등도 이상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210명이 참여한 해외 한 임상연구에서 애드빌 리퀴겔 400㎎ 및 200㎎(국내 시판용량, 10캡슐 단위 판매 중, 5월초 30캡슐 단위 병포장 발매 예정)은 평균 15분 내에 진통효과가 나타났다. 대조약인 타이레놀 1000㎎보다 효과가 빨리 발휘됐다.
치통은 진통제 효과를 임상적으로 측정하는 데 유용한 대표적인 질환이다. 엘리엇 허시(Elliot Hersh) 미국 펜실베니아대치과병원 교수팀이 수행한 이 임상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치료’(Clinical Therapeutics) 2000년 11월호에 게재됐다.
타이레놀은 진통제 중 국내에서 유일하게 편의점 상비약으로 판매된다. 해열진통제로서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NSAIDs)에 비해 위장관계 부작용이 적고,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다만 항염 효과는 없다. 간에서 주로 대사돼 과다복용·음주로 간독성이 발생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성인 1일 최대복용량은 4000㎎ 이하다.
화이자 관계자는 “NSAIDs 성분인 애드빌의 이부프로펜은 긴장성두통, 무릎·골관절염, 감기로 인한 발열 및 동통(몸이 쑤시고 아픔) 환자 등이 참여한 여러 건의 임상연구에서 타이레놀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보다 통증 개선효과가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로 1996년에 캐나다 맥길대 역학·생물통계학 연구팀이 긴장성두통 환자 총 455명을 이부프로펜 400㎎, 아세트아미노펜 1000㎎, 위약 등 세 그룹으로 무작위배정하고 애드빌과 타이레놀의 효과를 비교한 것을 들었다. 연구 결과 이부프로펜 투여군은 10단계로 통증 강도를 그려 넣은 시각적통증척도(Visual Analog Scale, VAS) 평가 기준 통증완치율이 63%로 아세트아미노펜 투여군(34%)보다 높았다.
진통제를 7일 이내로 짧게 복용할 경우 이부프로펜이 NSAIDs임에도 아세트아미노펜보다 위장관 부작용위험이 오히려 낮다는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1999년에 니콜라스 무어(Nicholas Moore) 프랑스 보르도대 약리학 연구팀이 환자 8233명을 대상으로 단기간(7일) 통증을 관리하는 1차치료제 성분인 이부프로펜, 아세트아미노펜, 아스피린(aspirin, 바이엘 ‘아스피린’ 등) 3종의 안전성을 직접 비교한 ‘PAIN스터디’ 임상 결과 위장관 부작용은 이부프로펜이 가장 적었다. 세 그룹의 위장관 부작용 발생률은 각각 4%, 5,3%, 7.1%였다. 위장관출혈이 총 6명 발생했는데 아세트아미노펜 투여군에서 4명, 아스피린 투여군에서 2명이 나왔다.
애드빌 리퀴겔은 경쟁에 유리한 임상데이터를 갖췄는데도 국내에선 후발주자로서 인지도가 낮다. 타이레놀(1994년 발매)은 물론 NSAIDs 단일 성분의 액상 연질캡슐 브랜드인 대웅제약의 ‘이지엔6’(2006년)와 녹십자의 ‘탁센’(2007년)보다 늦게 출시됐기 때문이다.
화이자는 애드빌 브랜드의 첫 제품으로 애드빌 리퀴겔과 성분이 같은 일반 알약인 ‘애드빌정’(이부프로펜)을 1984년 미국에서 처음 발매했다. 국내에선 2013년 12월에 애드빌 리퀴겔과 애드빌정을 동시에 출시했다.
이지엔6와 탁센은 특허기술인 ‘네오졸’(Neosol) 공법이 적용돼 애드빌처럼 일반 알약보다 약효 발현이 빠르다. 대웅과 녹십자가 최근 브랜드를 확장해 이부프로펜과 나프록센(naproxen) 등 NSAIDs 단일 성분을 함유한 액상 연질캡슐 2종을 모두 확보하면서 화이자가 더 부담스러워진 모양새다. 애드빌 리퀴겔의 판매실적이 아직 미미하지만 전년 대비 30.9% 증가한 것은 긍정적이다.
녹십자 관계자는 “NSAIDs 중 나프록센은 최고 혈중농도에 빠르게 도달하면서도 장시간(약 12시간) 효과가 지속되는 게 장점”이라며 “이부프로펜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에 수록됐을 정도로 오랫동안 안전성·유효성 등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프록센은 이부프로펜보다 진통·소염 효과가 약간 뛰어나지만 해열 효과는 떨어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진통제 일반약 브랜드 매출 비교
애드빌은 미국에서만 연간 5000억원 이상 팔리고 있다. 지난해 현지 매출은 4억8400만달러(약 5158억원,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 자료 기준)로 2014년(4억8550만달러, 약 5173억원)과 유사했다. 타이레놀은 지난해 2억9920만달러(약 3188억원)어치가 팔려 2014년(2억3430만달러, 약 2496억원) 대비 27.8% 성장했다.
국내에선 타이레놀이 지난해 284억원어치(전년 대비 4% 증가, 의약품 시장조사업체 아이큐비아 기준)가 판매돼 애드빌(9억4800만원, 18% 증가)을 압도했다. 애드빌 리퀴겔은 지난해 애드빌(정제 포함)의 전체 매출 중 95% 이상(약 9억300만원)을 차지했다.
이지엔6 시리즈 4종은 지난해 총 49억8600만원어치가 팔려 전년 대비 12.6% 성장했으며, 탁센 브랜드는 연간 30~4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이지엔6 첫 제품인 ‘이지엔6 애니’(이부프로펜)을 시작으로 ‘이지엔6 프로’(덱시부프로펜, dexibuprofen), ‘이지엔6 이브’(이부프로펜·파마브롬, ibuprofen·pamabrom), ‘이지엔6 스트롱’(나프록센) 등을 잇달아 출시했다.
이지엔6 이브는 부종을 줄이는 파마브롬 성분이 추가돼 붓는 증상을 동반한 월경통에 적합하다. 이지엔6 프로 성분은 이부프로펜의 이성질체인 덱시부프로펜 성분으로 근육통·류마티스관절염과 발열을 수반하는 감염증 등에 효과적이다.
녹십자도 ‘탁센’(나프록센)에 이어 ‘탁센400이부프로펜’(이부프로펜)을 발매했다. 탁센 400은 이부프로펜 함량이 400㎎에 달해 즉시 강한 진통효과를 원하는 젊은층이 즐겨 찾는다.
타이레놀 제품군은 ‘타이레놀정’(아세트아미노펜)과 성분이 동일한 단일제이면서 용량과 제형이 다른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어린이용 타이레놀 현탁액’, ’타이레놀ER 서방정’ 등 4종과 복합제 ‘우먼스 타이레놀정’(아세트아미노펜·파마브롬, acetaminophen·pamabrom) 및 ‘타이레놀 콜드S정’(아세트아미노펜·클로르페니라민·덱스트로메토르판·슈도에페드린, acetaminophen·chlorpheniramine·dextromethorphan·pseudoephedrine) 2종으로 구성된다.
아세트아미노펜 복합제로 삼진제약의 진통제 ‘게보린정’(아세트아미노펜·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카페인무수물, acetaminophen·isopropylantipyrine·caffeine anhydrous)이 효과가 빨라 인기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150억원가량(원외처방액 조사기관 유비스트 자료) 처방됐다. 이 약은 효과 발현이 빠른 IPA와 진통효과를 상승시키는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IPA 성분을 과다 복용하면 극히 드물지만 혈액질환 발생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국내에선 2015년 6월부터 15세 미만은 복용할 수 없도록 허가 주의사항이 변경됐다.
NSAIDs 단일제는 일반적으로 연령금기가 없다. 다만 아세트아미노펜을 제외한 다른 성분은 위장장애를 예방하려면 식후에 복용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