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관절염·통증 비급여 치료 흔해 … 환자 비용부담 가중
제약사 적응증 확대·건강보험 등재 ‘뒷짐’ … 밥그릇 싸움만
‘DNA주사’로 불리는 폴리데옥시리보뉴클레오티드(PDRN, polydeoxyribonucleotide) 성분의 주사제는 정형외과·통증의학과에서 미허가 적응증인 관절염·오십견·발목인대 손상·만성통증 치료에 흔히 처방되는 비급여 의약품으로 꼽힌다. 제조·판매사들이 밥그릇 싸움에 열을 올리는 반면 관련 적응증 확대를 위한 임상연구, 건강보험 등재 추진에는 뒷짐을 지고 있어 환자의 비용부담 가중이 우려된다.
환자 중 상당수는 오프라벨 처방(허가외 적응증에 의사가 재량껏 처방)임을 모르고 특정 질환을 대표하는 치료제로 오인하고 있었다. 의료진 설명이 부족했을 경우 저렴하고 효과가 입증된 급여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원치 않게 추가 치료비를 지불해왔다는 의미다. PDRN 주사제 가격은 병원에서 부르는 게 값으로 1회 주사당 10만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PDRN은 연어나 송어 정액에서 추출한 DNA 조각으로 이탈리아 제약사 마스텔리(Mastelli)가 개발해 1954년에 ‘플라센텍스’라는 상품명으로 처음 출시했다. PDRN 제제는 동물실험 결과 피부재생 신호전달체인 A2수용체를 자극, 섬유아세포 활성을 돕고 콜라겐 분비를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말초혈류 개선 △항염증 △욕창·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 △각막상피세포 재생 등 효과도 관찰됐다. 하지만 임상연구에선 대부분의 효능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PDRN 주사제의 경우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받은 적응증은 피부이식으로 인한 상처 치료 및 조직수복(조직재생)이 유일하다. 주사제 제형 외에 이 성분을 함유한 의약품으로 피부·결막 상처 치료 및 영양공급 크림, 각막·결막 미세손상 치료 및 영양공급 점안액이 출시됐다. PDRN 제제는 제형에 관계 없이 국내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허가규정이 엄격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 의약품청(EMA)으로부터 의약품으로 시판승인을 받은 품목은 아직 없다.
국내 진료 현장에서 PDRN 주사제는 혈소판풍부혈장요법(PRP, platelet rich plasma therapy)이나 프롤로요법(prolotherapy, 12~15% 고농도 포도당)과 관절·힘줄·인대 손상, 통증 치료 효과가 비슷하면서도 주사통증이 적고 시술시간이 짧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PDRN 처방의 약 80%는 정형외과·통증의학과 등에서 나오고 있다. 국내 PDRN 주사제 시장이 약 200억원(증권사 추정)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료보험 수가가 낮게 책정되는 구조상 병원 수익을 고심한 의사들이 비급여 약제 처방을 적절히 활용해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PDRN 주사제 시장은 개척자인 파마리서치프로덕트와 후발주자인 한국비엠아이(한국BMI)가 양분하고 있다. 파마리서치는 2009년부터 오리지널 의약품 플라센텍스를 독점 수입해왔다. 마스텔리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2012년에 자체 개발한 동일 성분의 주사제 ‘리쥬비넥스’(PDRN)도 발매했다. 플라센텍스은 송어정액을 원료로 사용하며, 대우제약이 판매하고 있다. 리쥬비넥스는 연어정액 유래 품목으로 안국약품이 판매를 맡고 있다.
2014년 플라센텍스의 시판후안전성조사(PMS) 기간이 만료된 후 BMI의 ‘하이디알’(PDRN)을 필두로 총 4개의 제네릭이 출시됐다. 대한뉴팜·영진약품·한화제약 등은 BMI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각 회사 제품명으로 PDRN 주사제를 발매했다. 휴메딕스도 경쟁에 가세해 관절염 치료용 PDRN 주사제를 개발 중이다.
국제 임상시험 등록사이트(ClinicalTrials.gov)에 검색한 결과 PDRN 제제 관련 임상연구는 총 3건에 불과할 정도로 연구가 더딘 편이다. 모두 주사제 제형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한 연구로 총 2건이 완료됐다. 마스텔리가 당뇨병성 족부궤양, 파마리서치가 테니스엘보(상과염) 치료 효과에 관한 연구를 마쳤다. 마스텔리는 비활성 피부경화증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다.
임상연구는 지지부진한 반면 2016년 6월 파마리서치가 BMI 하이디알의 품질을 문제 삼아 감사원에 이 약의 허가처분 취소 심사청구를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두 회사 사이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2016년 당시 파마리서치는 “BMI가 제조시설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원료 사용 부위가 다르다”며 “하이디알은 오리지널 약과 품질이 달라 약효동등성을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PDRN 제제는 동물유래 의약품으로 생물학적제제만큼 제조·품질 관리가 까다로워 오리지널 품목을 보유한 마스텔리와 기술제휴 없이 독자적으로 제네릭을 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이에 BMI는 “식약처의 제네릭 허가 규정에 따라 하이디알이 플라센텍스와 동등함을 증명했다”며 “자사의 중국 원료의약품(API) 제조소는 국내 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GMP)에 준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또 “연어 어정(salmon milt)에서 PDRN을 추출하는데 어정은 정액을 생산하는 정소에 포함된 기관으로 오리지널 약의 원료 기원인 정액과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파마리서치는 경쟁사의 시장진입 저지에 실패했다. 경쟁사 허위·비방광고로 광고업무 정지 1개월 행정처분을 받을 뻔했으나 식약처에 소명해 이를 면했다.
지난해 1월에는 BMI가 특허심판원에 파마리서치의 PDRN 제조법 특허 무효를 청구했지만 기각돼 파마리서치가 반격 기회를 잡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BMI가 자사 홈페이지에 허가사항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을 게재했다가 약사법 위반으로 3개월(지난해 11월 16일~올해 2월 15일)간 제품 제조·판매 정지 처분을 받았다.
BMI 관계자는 “PDRN 주사제는 비급여 오프라벨 처방이 많아 생산실적, 매출액, 공급가, 판매가 등 어떠한 것도 밝히기 어렵다”며 “업계 전반적으로 적응증 확대나 건강보험 등재를 추진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파마리서치 측은 기자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파마리서치는 1993년 설립 당시 국내 최초의 의약품 인허가 컨설팅 회사로 출발했다. 2007년 마스텔리와 플라센텍스를 아시아에서 독점판매하는 계약을 체결, PDRN 기반 재생의약품 개발·판매사로 변신했다. 이듬해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와 함께 PDRN 국산화를 공동 연구했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양양연어사업소로부터 연어를 공급받아 강릉 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GMP) 공장에서 리쥬비넥스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식약처로부터 폴리뉴클레오티드(PN, polynucleotide) 성분의 퇴행성관절염치료제 ‘콘쥬란’ 시판허가를 받아 발매를 준비 중이다. 콘쥬란은 유럽에서 마스텔리가 10여년 앞서 출시한 제품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조된다. PN은 연어 정소에서 추출한 DNA 조각으로 PDRN과 원료 기원이 다르다.
파마리서치는 PDRN 함유 의약품인 ‘리쥬비넥스크림’과 ‘리안 점안액’, 화장품 ‘디셀350’ 등을 출시한 이후 PN 성분의 피부재생 주사 ‘리쥬란힐러’(의료기기)도 발매, 공격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리쥬란은 히알루론산 필러와 유사한 효능을 갖는다. 지난해 11월 보툴리눔톡신(일명 보톡스) 개발업체 바이오씨앤디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달 에스트라(아모레퍼시픽 자회사)의 히알루론산 필러 사업부 클레비엘을 사들였다. PDRN 및 PN 제품군 중 자체 개발 품목(리쥬비넥스·리쥬란·디셀 등)의 지난해 3분기 누적매출은 총 147억원으로 전년 동기(100억원) 대비 47% 증가한 반면 수입 품목인 플라센텍스는 53억원어치가 팔려 전년 동기(101억원) 대비 47.5% 줄었다.
BMI는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중 유일하게 제주도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12년 1월 고순도(99% 이상) 히알우로니다제(hyaluronidase) 액상 제제인 ‘하이랙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경험을 살려 PDRN 시장에도 진출했다. 최근 PN 성분의 필러 개발에 뛰어들어 파마리서치의 주력사업인 PDRN·PN 시장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 히알우로니다제는 히알루론산을 분해하는 효소로 체액 재흡수를 촉진, 신경차단술을 활용한 만성통증 치료 등에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