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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양약품 백혈병신약 ‘슈펙트’ 시판후조사, 식약처 ‘탁상행정’ 도마 위
  • 김선영 기자
  • 등록 2018-01-29 18:05:04
  • 수정 2020-09-13 15: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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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귀질환 고려 없이 환자 보고 3000례 고정 … 조건 낮추는 재심사 반복, 인력·시간 낭비
슈펙트, 처방량 증가에도 수익개선 난항 … 저용량 투여 흔해, 차세대 신약 임상에 환자 빼앗겨 

일양약품의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 ‘슈펙트’

이달 초 일양약품의 만성골수성백혈병(CML, Chronic Myelocytic Leukemia) 치료제인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 radotinib)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시판후 안전성조사(PMS, post market surveillance) 결과를 보고하는 기한이 3년 연장되고 증례수는 기존 3000례에서 300례 이상으로 줄었다.

이는 예정된 수순으로 희귀질환치료제인 슈펙트(2012년 출시)가 6년 만에 3000례의 증례를 확보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주된 의견이다. 식약처가 어차피 기준을 완화할 것이라면 굳이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위) PMS 재심의를 거쳐 행정력과 기업경쟁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각 의약품 품목별로 시장 현실에 맞는 PMS 제출 기준을 식약처가 제시해 이 제도를 융통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현재까지는 PMS 재심의를 거쳐 제출 기한을 2~3년 늘리고 증례수를 대폭 줄여주는 게 부지기수다.
   
PMS 제도는 신약 또는 일부 전문약 개발·허가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이상사례 등을 시판허가 후 사용 초기에 관찰해 허가사항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신약은 시판 후 6년간 3000례 이상, 개량신약 등 자료제출 의약품은 4년 동안 600례 이상을 안전성 자료로 제출해 허가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PMS 기한이나 증례수를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의약품 제조 정지 1, 3, 6, 9개월 처분을 받는데 최악의 경우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식약처가 3000례와 600례로 PMS 증례수를 고정한 것은 각각 0.1% 이상, 0.5% 이상 발생하는 유해반응을 95% 확률로 파악할 수 있어서다. 희귀질환치료제는 환자군이 적어 규정대로 PMS 조사를 수행하기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지만 일부 회사는 안전성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증례수를 줄여달라”며 엄살을 부려 재심의를 거쳐 기준을 조정하고 있다.         

앞서 일양약품은 슈펙트 투여 환자 모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PMS 조사기간을 2년 연장하고 증례수를 총 200례로 줄여줄 것을 식약처에 요구했다. 해마다 CML을 새롭게 진단받는 환자는 총 450명으로 치료받은 경험이 없는 1차 약물치료 대상이 약 400명, 약제를 교체 투여하는 2차 치료 대상이 약 53명에 불과하다는 근거를 들었다. 학계에선 매년 새로운 CML 환자가 약 350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양약품이 추정한 인원보다 100여명이 적은 셈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재심의에서 약심위 위원들은 발생률 0.5%인 유해반응을 발견하려면 600례를 확보해야 하지만 슈펙트는 질환 특성상 PMS 기한을 2~3년 연장해주더라도 이 기간 안에 600례를 모집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했다. 통상적인 PMS 연장기간인 2~3년 내 이 회사가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 증례수로 변경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슈펙트가 다른 CMS치료제보다 부작용으로 3등급 및 4등급 고빌리루빈혈증(발생률 33.3%)이 흔하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날 재심의에서 “일양약품에 따르면 슈펙트는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년간 57례가 추가 등록됐다”며 “월평균 5례를 수집하는 셈이므로 3년간 약 180례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슈펙트는 현재까지 안전성 관련 105례가 조사됐으므로 기한을 3년 연장하면 총 300례는 충분히 수집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슈펙트는 1세대 표적항암제인 한국노바티스의 ‘글리벡’(이매티닙, imatinib) 대비 치료 효과와 부작용을 개선한 2세대 표적항암제로 분류된다. 같은 세대로 한국BMS제약의 ‘스프라이셀’(다사티닙, dasatinib)과 노바티스의 ‘타시그나’(닐로타닙, nilotinib)가 먼저 출시됐다. 이들 4가지 약은 BCR과 ABL 유전자가 융합된 돌연변이에 의해 티로신인산화효소(tyrosine kinase)가 비정상적으로 작용해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것을 억제한다.

슈펙트는 지난해 2월부터 2차치료 외에 1차치료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그해 상반기 원외처방액(IMS헬스 데이터 기준)이 17억6700만원으로 전년 대비 56% 성장했다. 하지만 경쟁약인 글리벡이 227억6300만원(전년 대비 0.8% 감소), 타시그나가 158억7500만원(222% 증가), 스프라이셀이 118억6900만원(10.3% 증가) 어치가 각각 처방된 것을 감안하면 후발주자로서 시장점유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허가 만료된 글리벡이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시장을 여전히 주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스프라이셀은 2011년 10월, 타시그나는 2012년 7월부터 기존 2차치료에서 1차치료까지 급여 범위가 확대돼 5년 이상 일찍 시장을 선점했다.

슈펙트는 2세대 약 중에선 약가가 가장 저렴함에도 신규 환자 중심으로 처방되고 있다. 항암제 등 중증질환치료제 특성상 장기간 안전성 데이터가 확보되지 않으면 환자와 의료진이 약 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새롭게 진단받는 환자도 적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연간 약제비는 타시그나 2876만원, 스프라이셀 2429만원, 슈펙트 1946만원, 글리벡 1617만원 순으로 비싸다. ‘암환자 본인부담금 5% 특례제도’에 따라 환자는 전체 약값의 5%만 부담한다.

김동욱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지난해 2월 슈펙트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1차치료까지 확대되면서 슈펙트의 약 30%가 초(初)치료 환자에게 처방됐다”며 “1차치료에 실패한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다국적 제약사들이 개발 중인 4가지 3세대 표적항암제 관련 임상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슈펙트가 2차치료 환자를 확보하기 어려워졌지만 1차치료제로서 입지는 강화될 것”이라며 “신규 환자가 적은 CML치료제 시장에서 국산신약으로서 선전하고 있다”고 평했다. 3세대 신약 임상에 참여한 환자는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 그는 임상연구를 하고 있는 3세대 신약후보물질과 관련, “다국적 제약사와 공동 진행하는 연구 규정상 업무기밀로 현재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김 교수는 “PMS 기간과 증례수 조정은 슈펙트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희귀질환 신약 관련 PMS 기준을 실정에 맞춰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슈펙트의 흔한 부작용인 고빌리루빈혈증은 환자 체중에 관계 없이 동일한 용량을 투여함에 따라 초래되는 측면이 있다”며 “치료 초기에 용량을 절반가량 빠르게 줄이면 효과는 유지하면서 부작용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용량에 비례해 의약품 보험비가 책정되므로 슈펙트를 사용하면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는 효과가 있다”며 “고빌리루빈혈증이 나타나는 환자는 약물흡수가 빨라 이 증상이 없는 환자보다 슈펙트 치료 효과가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슈펙트는 1차치료 환자에는 1일 2회, 1회 300㎎을, 2차치료 환자에는 1일 2회, 1회 400㎎을 투여한다. 

CML은 1990년대만 해도 골수를 이식받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지만 2001년 글리벡이 출시되면서 약물치료로 평생 관리하면 살 수 있는 병이 됐다. 김 교수는 “보건복지부 암정복추진연구개발사업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글리벡을 장기간 투여한 환자 152명을 관찰했더니 약 60%는 5년간 약 투여를 중단한 후에도 건강한 상태(관해)를 유지하고 있다”며 “20년 이후에 CML이 재발한 환자가 적잖아 현재 의학기술로 CML을 완치한다고 표현하기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생 투약하지 않아도 장기간 관해를 유지할 수 있는 시대엔 진입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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