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 운용 중인 베인캐피탈(Bain Capital)이 총 9275억원을 들여 휴젤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 2일자로 손지훈 전 동화약품 사장을 휴젤의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주주들은 이번 인수로 창업주간 경영권 분쟁이 해소되고, 휴젤의 보툴리눔톡신(일명 보톡스) ‘보툴렉스’와 히알루론산필러 ‘더채움’의 글로벌 진출이 탄력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대규모 인수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휴젤은 베인캐피탈이 사들인 이후 주가가 지난해 7월 말 62만2900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3개월 만에 41만100원으로 급락했다. 8일엔 55만7000원으로 회복했다.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국내 보툴리눔톡신·히알루론산필러 관련 미용시장은 가격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지난해 보툴리눔톡신 국내 시장점유율 1위(약 40%)인 메디톡스가 하반기에 ‘메디톡신’ 제3공장을 가동하면서 가격을 20% 인하했다. 보툴렉스는 이 시장에서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베인캐피탈은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사인 미국 베인앤드컴퍼니(Bain&Company)에서 분리된 사모펀드로 운용자산만 750억달러(약 80조원)에 달한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휴젤 신주 98만5217주를 3547억원에 취득했으며, 휴젤이 발행한 전환사채(CB) 1000억원어치도 인수했다. 휴젤 최대주주인 명목회사 동양HC(동양에이치씨)로부터 지분 전체(24.36%, 80만주)를 4728억원에 사들여 새로운 휴젤의 최대주주로 지분 총 45.32%를 확보했다.
이와 함께 창업자인 문경엽 전 대표와 홍성범 사내이사(현 중국 상하이 서울리거병원장) 등 기존 경영진을 전면 교체하고 미국식 집행임원제를 도입했다. 이번 매각으로 문 대표는 1463억원, 홍 원장은 2994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임원제도는 이사회가 대표를 선출하지 않고 외부에서 별도의 집행임원을 선출하는 경영 방식이다. 이사회는 관리·감독하고 집행임원이 업무집행만 전담한다.
손 대표 영입은 지난해 11월 공동 대표집행임원으로 선임된 송성근 휴젤파마가 사임하면서 이뤄졌다. 손지훈 대표는 해외영업통으로 2016년 2월 동화약품 사장으로 발탁돼 이 회사의 약점이었던 전문의약품(ETC) 사업을 보완했다. 국산 항생제 ‘자보란테’(성분명 자보플록사신D-아스파르트산염수화물, zabofloxacin D-aspartate)를 지난해 1월 중동·북아프리카 12개국에 380억원 규모로 수출했다. 같은 해 4월에는 2016년에 643억원어치가 처방된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의 ‘플라빅스’(클로피도그렐황산염, clopidogrel bisulfate)의 국내 의원 독점 판권을 확보했으며, 9월에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컨슈머헬스케어와 코프로모션을 확대해 2020년까지 무좀치료제 ‘라미실’(테르비나핀, terbinafine) 등 GSK의 일반의약품 10개 전품목을 공동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손 대표는 고(故) 손정삼 전 동아제약 부회장의 아들로 고려대 경제학과, 미국 보스턴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다국적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미국 본사에서 영업분석가를 지냈으며, 동아제약 해외사업부(전무)를 거쳐 6년 6개월(2008년 7월~2016년 1월) 간 박스터코리아 사장을 역임했다.
휴젤은 2001년 11월 창립 2년 만에 보툴리눔톡신을 독자 개발에 성공, 2010년 79억원의 매출을 시작으로 2016년 1242억원을 기록, 고공성장을 이어갔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320억원과 7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2.8%와 78.5% 증가했다. 중국·브라질·러시아 등 해외수출이 전체 매출의 62.6%를 차지했다.
휴젤의 강력한 라이벌인 메디톡스는 지난해 1~3분기 누적매출 1283억원, 영업이익 645억원으로 격차를 줄였다. 메디톡스는 2016년엔 수요에 따른 공급 부족으로 일시적인 열세를 보였지만 올해부터는 경쟁사보다 막강한 해외 네트워크의 다변화, 국내시장 안착, 품질 고급화 등에 힘입어 휴젤을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를 공동 창업한 문경엽 전 대표가 연구개발(R&D)을 주도해 제품화를 이끌었고, 홍성범 원장이 의료계 인맥을 활용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문 전 대표는 단백질 전문가로 서울대 생물학과 학사, 같은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MSKCC,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6년간 단백질 정제법을 연구했다. 홍 원장은 성형외과 전문의로 한림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제대 강남백병원 성형외과 과장과 한림대 의대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다. 동양성형외과와 BK성형외과 원장을 거쳐 2016년 5월 한중합자 1호 병원인 서울리거를 인수했다. 휴젤의 또다른 창립멤버인 신용호 현 비오성형외과 원장(전 BK성형외과 대표원장)은 휴젤이 2015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하기 6개월 전에 보유하고 있던 동양HC의 지분 전부를 벤처캐피탈에 매각하고 떠났다.
문 전 대표와 홍 원장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것은 2016년 7월 문 대표와 특수관계자가 기타주주로부터 동양HC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 51.12%를 확보했다고 공시하면서다. 기존에는 문 대표와 홍 원장이 각각 43.3%씩 동일하게 지분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1월 동양HC 최대주주(당시 50.75% 보유)인 홍 원장을 비롯한 14명은 문 대표 해임 안건을 놓고 임시주주총회 소집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갈등이 격화됐다. 2개월간의 분쟁 끝에 4월 정기주총서 홍 원장과 심주엽 현 동양HC 대표를 휴젤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심주엽 동양HC 대표를 공동대표로 임명해 분쟁이 일단락됐다. 지난해 7월 베인캐피탈은 휴젤을 인수한 직후 표주영 전 교촌에프앤비 사장을 영입해 문경엽·심주엽 공동대표 체제에서 표주영·심주엽 대표집행임원 체제로 바꿨다. 지난해 11월 이사회 결의에 따라 송성근·심주엽 대표집행임원 체제로 다시 변경했다.
베인캐피탈은 지난 4월 56억달러(약 6조원)에 독일 제네릭의약품 전문회사인 스타다(STADA)를 인수하는 등 최근 최근 헬스케어 사업에 투자를 집중해왔다. 스타다를 휴젤의 유럽 판매 파트너사로 점찍었다. 스타다는 2016년에 21억4000유로(약 2조7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에는 국산화장품 브랜드 ‘AHC’(에이에이치씨)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를 미국 증권회사 골드만삭스와 함께 인수한 지 1년 만에 네덜란드·영국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에 되팔아 7배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4300억원에 사들여 국내 화장품업계 인수합병(M&A) 사상 최고가인 22억7000만유로(약 3조원)에 매각했다. 이밖에 미국·영국 대형 의료기관 아카디아(Acadia), 인도 제네릭 전문회사인 엠큐어(Emcure), 세계 1위 CRO(바이오임상대행) 업체인 퀸타일즈(Quintiles) 등에도 투자했다.
베인캐피탈은 이달 말까지 휴젤의 100% 자회사인 휴젤파마와 휴젤메디텍을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휴젤은 올해 말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보툴렉스 3상 임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2019년 현지 발매가 목표다.
전세계 보툴리눔톡신 시장 규모는 약 4조원으로 보툴리눔톡신 균주 확보가 어려워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지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대웅제약의 ‘나보타’가 미국에서, 휴온스의 ‘휴톡스’가 국내에서 각각 출시될 예정이다. 해외 품목으로는 미국 앨러간의 ‘보톡스’, 프랑스 입센·스위스 갈더마의 ‘디스포트’, 독일 멀츠의 ‘제오민’ 등이 건재한 상황이다.
전세계 필러 매출은 약 7조3000억원으로 보톡스 시장보다 규모가 크다. 국산 제품으로는 LG화학의 ‘이브아르’, 메디톡스 ‘뉴라미스’에 이어 일동제약의 ‘네오벨’, 휴온스 ‘엘라비에’, 동국제약의 ‘벨라스트’ 등이 경쟁에 가세했다. 해외 시장은 갈더마의 ‘레스틸렌’과 엘러간의 ‘쥬비덤’이 주도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베인캐피털의 휴젤 인수 및 추가 자회사 흡수·합병이 이들 회사 가치를 바로보고 투자한 선경지명일지, 과대평가에 따른 오판일지 국내는 물론 전세계 투자가가 지켜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휴젤이 인수된 지 불과 반년이 갓 넘은 시점에 거대 다국적기업에 재매각될 것이란 설이 나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