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생검 불가능 환자 33%, 건보 혜택 못받아 … 미국선 동반진단기기로 승인
EGFR(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내성 표적 비소세포폐암 신약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오시머티닙, osimertinib)가 지난달 5일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부담금이 월 1000만원에서 34만원(급여가 680만원의 5%)으로 대폭 경감됐다. 하지만 종양 조직을 떼내 검사하는 조직생검(tissue biopsy)에서 EGFR 유전자에 내성변이(T790M, 엑손20에 위치)가 확인된 경우에만 급여가 인정돼 환자들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액체생검(liquid biopsy) 결과를 토대로 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측은 “전문가로 구성된 암질환심의위원회가 신기술인 액체생검의 임상적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타그리소의 급여 기준을 제한하게 됐다”고만 밝혔다.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지난달 타그리소 급여 등재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보건당국과 논의해 관련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반응했다.
타그리소와 같은 3세대 EGFR 표적치료제인 한미약품의 ‘올리타’(올무티닙, olmutinib)에도 같은 급여 조건이 적용되고 있다. 타그리소와 올리타는 1세대 EGFR 표적치료제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게피티니브, gefitinib), 로슈의 ‘타쎄바’(엘로티닙, erlotinib) 치료 후 T790M 돌연변이가 발생해 약이 더 이상 듣지 않는 환자에게 처방된다. 이레사와 타쎄바는 EGFR 유전자 내 19del(엑손19 결실) 또는 L858R(엑손21 변이)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에서 효과가 뛰어나다.
혈액기반 액체생검은 종양이 폐 말초부나 뇌 등 다른 장기로 전이돼 조직을 확보하기 어렵거나,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후 종양 크기가 너무 작아져 조직생검을 받기 어려운 암환자에서 흔하게 시행된다. 학계에 따르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약 3명 중 1명은 조직생검이 불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타그리소 관련 1~3상 임상시험 프로그램 ‘AURA’, 리얼월드(real world, 실제 진료현장) 임상연구 ‘ASTRIS’ 등 임상 모든 단계에 액체생검으로 EGFR 내성변이가 확인된 환자를 포함시켰다. 액체생검을 통해 EGFR 내성변이를 확인한 환자 비율이 3상 임상 ‘AURA3’에선 62.5%(총 1036명 환자 중 648명), ASTRIS의 한국 하위분석 연구에선 13.1%(총 371명 중 39명)로 확인됐다.
AURA3 임상연구 결과를 근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6년 9월 스위스 로슈진단의 액체생검 진단키트 ‘코바스 EGFR변이검사 버전2’(cobas EGFR Mutation Test v2)를 이 약의 동반진단기기(companion diagnostics, CDx)로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추가로 허가했다. 이 제품은 비소세포폐암 분야에서 FDA가 최초로 승인한 액체생검 진단키트로 6개월 전에 1세대 EGFR 표적치료제의 동반진단기기로 처음 허가받았다.
코바스 EGFR변이검사 버전2는 AURA3 임상에서 110개의 샘플을 채취해 T790M 돌연변이 유무를 분석한 결과 민감도(sensitivity, true positive rate) 73%, 특이도(specificity, true negative rate) 67%로 확인됐다. 즉 기존 표준검사법인 조직생검 검사로 T790M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의 67%가 액체생검으로도 변이 양성이 확인됐다는 의미다. 민감도는 T790M 변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대상에서 실제로 T790M 변이가 있는 환자를, 특이도는 T790M 변이가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대상에서 실제로 T790M 변이가 없는 환자를 각각 정확히 가려낸 비율을 의미한다. 연구결과는 엘스비어(Elsevier)가 출판하는 국제학술지 ‘폐암’(Lung Cancer) 2015년 12월호에 게재됐다.
이 제품은 타쎄바 3상 임상 ‘ENSURE’에서 채취한 샘플을 바탕으로 조직생검 진단키트인 ‘코바스 EGFR변이검사 버전1’과 결과를 비교한 결과 민감도는 76.7%, 특이도는 98.2%이었다.
국내에서는 ‘코바스 EGFR변이검사 버전2’ 외에 EGFR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용 액체생검 진단키트로 파나진의 ‘파나뮤타이퍼 EGFR’(PANAMutyper EGFR)도 출시됐다. 이들 제품은 지난해 10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으로부터 각각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 연구뿐 아니라 임상(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병원에 이미 보편화된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eal-time PCR) 장비로 분석한다. 파나뮤타이퍼는 결과를 3시간 이내, 코바스는 4시간 이내에 각각 확인할 수 있다.
김혜련·조병철·이창영 연세암병원 폐암센터 연구팀은 지난해 9월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102명을 대상으로 파나뮤타이퍼와 기존 조직생검을 비교한 결과 최대 90.2% 일치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인 ‘온코타깃’(Oncotarget)에 실었다.
연구진은 EGFR E19del, L858R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를 액체생검 또는 조직생검으로 확인했다. 두 검사의 두 돌연변이 지표에 대한 검사결과 일치율은 각각 80.4%와 90.2%였다. T790M 변이 여부를 이들 검사법으로 확인한 결과 56.3% 일치했다.
파나진은 파나뮤타이퍼의 검사 정확도가 로슈 코바스 이상으로 뛰어나다고 자신하고 있다. 파나뮤타이퍼의 FDA 허가신청을 준비 중이다.
김혜련 연세대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코바스와 파나뮤테이터가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 병원에 도입되면 일부 조직검사는 혈액생검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다만 조직생검과 혈액생검 결과를 비교하면 30%가량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두 검사가 상호보완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액체생검은 조직생검의 대안으로 암세포에서 분리돼 혈액 속을 떠돌아다니는 순환종양DNA(ctDNA, circulating tumor DNA)를 분석한다. 환자의 개별 맞춤치료에 필요한 암유전자 변이 정보를 채혈처럼 간편하고 안전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아직은 진단 정확도를 입증한 대규모 연구결과가 부족해 조직생검이 어려운 경우 등에 제힌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진경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과장은 “액체생검을 활용하면 초기 진단뿐 아니라 전체 치료단계에 걸쳐 질병 경과를 예측하고 환자 상태에 맞춘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다”며 “조직생검을 여러 번 반복할 경우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치료 도중 암세포는 진화해 기존 약이 듣지 않는 새로운 유전자 돌연변이를 생성하기도 한다”며 “같은 암조직이라도 특성이 다른 세포가 혼재돼 어느 부위를 생검했는지에 따라 유전자검사 결과가 달라지는데 이런 양상은 전이암에서 더 심하다”고 덧붙였다.
손주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기존 조직생검은 바늘·내시경 등을 이용한 침습적 시술로 환자의 공포감이 컸고 통증·천공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액체생검은 혈액 내 극소량의 DNA를 검출해 분석하므로 안전하고 편리하지만 시험오차를 낮출 수 있는 기술발전이 요구된다”고 평가했다.
액채생검은 201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선정 10대 혁신기술,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가 뽑은 10대 유망기술로 각각 뽑혔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BCC리서치는 세계 액체생검 시장이 2015년 16억달러(약 1조700억원) 규모에서 매년 22.3% 성장해 2020년에는 45억달러(약 4조78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