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오남용으로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 multi drug resistant bacteria) 감염이 급증하면서 전세계 항생제 시장에 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웹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3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카바페넴내성 장내세균(CRE, Carbapenem resistant enterobacteriaceae)을 전수 감시한 지 약 5개월 만에 4869명이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2011년 25건 대비 현저히 늘었다.
해외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츠(Research And Markets)는 세계 항생제 시장이 올해 300억달러미만(약 32조7750억원)에서 연평균 7% 성장해 2023년에는 400억달러(약 43조7000억원)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시장은 2015년 기준 1조3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2년 7월 항생제 후보물질에 대한 감염질환품목인증(QIDP, Qualified Infectious Disease Products) 제도를 시행하고,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QIDP로 지정된 항생제 신약에는 신속심사권 및 5년간의 추가 시장독점권이 부여된다. 지난해 말까지 신청된 총 109개의 후보물질 중 101개가 QIDP 인증을 받았다.
유럽연합(EU) 혁신의학이니셔티브(IMI, Innovative Medicine Initiative)는 2015년 3월 5억5000달러(약 5450억원) 기금을 조성해 CRE 항생제 개발 프로그램인 ‘COMBACTE-CARE’을 운영하고 있다.
카바페넴은 그람양성(gram positive)·그람음성(gram negative)을 가리지 않고 기존 약으로 치료되지 않는 각종 세균 감염에 광범위한 효과를 보여 ‘최후의 항생제’로 불린다.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CRE에 감염되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가 제한적이라 치사율이 약 50%에 달한다. 주로 의료기관 내에서 전파되며 폐렴·패혈증·요로감염 등이 나타난다.
세균은 그람(Gram) 염색법으로 염색해 보라색을 띠면 그람양성, 붉은색이 입혀지면 그람음성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람양성균은 세포벽이 하나의 두꺼운 펩티도글리칸(peptidoglican)으로 이뤄지며, 그람음성균은 얇은 펩티도글리칸 바깥에 세포막이 한 층 더 있다.
그람음성균은 그람양성균보다 세포벽 구조가 복잡해 항생제가 투과하기 어렵다. 감염 환자 수는 그람양성균과 비슷하지만 치료옵션이 적어 치사율은 2배 높다. 미국 FDA로부터 다제내성 그람음성균 항생제로 허가받은 약은 MSD의 ‘저박사’(세프톨로잔·타조박탐, ceftolozane·tazobactam, 2014년 12월 승인), 앨러간의 ‘애비카즈’(성분명 세프타지딤·아비박탐, ceftazdim·eavibactam, 2015년 2월 승인), 더메디슨컴퍼니(The Medicines Company)의 ‘버보미어’(VABOMERE, 메로페넴·버보박탐, meropenem·vaborbactam, 2017년 8월 승인) 등 3개 뿐이다.
신약 항생제 개발이 시급한 다제내성 그람음성균으로는 CRE,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폐렴막대균(Klebsiella pneumoniae),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Acinetobacter baumannii, 적혈구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적혈구대소부동증을 일으켜 부동간균으로도 부름) 등이 꼽힌다. 그람양성균은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알균(MRSA, 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반코마이신내성 장알균(VRE, Vancomycin resistant enterococci),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균(Clostridium difficile)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3상 임상에 들어간 다제내성 그람음성균 항생제로는 MSD의 이미페넴·리레박탐(imipenem·relebactam), 아차오겐(Achaogen)의 플라조마이신(plazomicin) 등이 있다.
국내에선 레고켐바이오의 ‘LCB10-0200’이 1상 임상을 준비 중이며, 인트론바이오의 ‘N-Rephasin NPA200’이 전임상을 밟고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지난해 7월 미국 항생제 개발 전문가와 조인트벤처 검테라퓨틱스(Geom Therapeutics)를 설립하고 LCB10-0200와 베타락탐분해효소저해제(BLI, β-lactamase Inhibitor) ‘LCB18-0055’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베타락탐분해효소를 갖고 있는 그람음성균은 약효가 뛰어난 베타락탐 구조의 항생제를 분해해 약효를 무력화한다. 항생제와 BLI를 병용하면 이같은 약제내성을 극복할 수 있다.
LCB10-0200은 전임상 결과 단독투여만으로 기존 약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녹농균·부동간균 감염에 뛰어난 효과를 보였으며, BLI와 병용투여하면 CRE도 커버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저박사는 다제내성 녹농균, 애비카즈는 CRE와 녹농균, 버보미어는 CRE에 각각 효과를 보인다. 이들 약과 3상 임상이 진행 중인 신약후보물질을 합쳐 LCB10-0200이 적용 범위가 가장 넓을 것으로 레고켐 측은 기대하고 있다.
LCB10-0200은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책과제로 뽑혔으며, 지난 9월 계약에 따라 NIH 산하기관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로부터 현지 1상 임상 비용 전액을 지원받게 됐다. 미국 항생제 개발 전문가 8명을 주축으로 듀크대병원 산하 임상연구기관(DCRI, Duke Clinical Research Institute)에서 1상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LCB10-0200와 LCB18-0055의 현지 전임상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검테라퓨틱스의 최고경영자(CEO)는 애비카즈 개발을 주도한 딜크 타이(Dirk Thye) 박사가 맡고 있다. 그는 항생제 전문가로 ‘도리벡스’(도리페넴, doripenem)과 ‘테플라로’(세프타로린, ceftaroline)를 개발해 각각 2005년 존슨앤드존슨에 2억4500만달러(약 2700억원), 2007년 포레스트래보러토리즈(Forest Laboratories)에 4억9400만달러(약 5400억원) 규모로 기술이전했다.
인트론의 N-Rephasin NPA200은 박테리오파지 유래 항균단백질인 엔도리신(endolysin) 성분의 바이오신약이다. 엔도리신은 세균의 세포벽 파괴효소로 대장균에 이 유전자를 삽입·배양해 대량 생산한다. 기존 합성항생제(small molecule antibiotics)가 세포벽 내 펩티도글리칸을 절단해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기전을 가진 것과 달리 엔도리신은 항생제 내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박테리오파지 및 유전자재조합 기반기술 ‘엔리파신’(N-Rephasin)이 적용됐다.
엔도리신은 전임상에서 부동간균·녹농균·폐렴막대균을 비롯해 그람음성균인 살모넬라균(Salmonella), 대장균(Escherichia coli) 등에 대한 항균효과를 확인 중이다.
2014년 7월 영국 정부가 비영리조직 웰컴트러스트(Wellcome Trust)에 자문한 결과 매년 전세계 70만명이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죽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웰컴트러스트는 항생제내성 관리에 실패할 경우 2050년 무렵 연간 1000만명이 죽고, 세계 경제는 210조달러(약 22경9404조원) 규모의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