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 목사는 나치 하에서 히틀러의 광폭한 참상을 목격하고 그를 암살하려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돼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한달을 앞두고 39세의 젊은 나이로 처형당했다. 그의 사형 직후 미국의 라인홀드 니버는 “본회퍼는 순교자이며 그의 삶은 ‘현대의 사도행전’”이라고 칭했다.
본회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신학 형성에 기여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바르게 사는 제자의 길과 교회의 참모습을 십자가신학을 통해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죽음으로써 양심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표상이 됐다. 강한 호소력을 갖게 하는 면모다.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 본회퍼의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은 민주화 투쟁을 하던 학생들에게 크나큰 용기와 격려가 됐다. 이 저작은 본회퍼가 18개월 동안 감옥에서 가족과 친지들과 주고받은 206통의 편지를 묶은 것이다.
본회퍼 목사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을 하다가 암살당한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엘살바도르 군부독재에 항거하다 성당에서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 주교와 함께 영국 성공회가 20세기의 성자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올해는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회 95개조 반박문을 붙여 시작된 종교개혁의 500주년이 된다. 따라서 올해는 개혁돼야 할 한국교회와 현대문명 속에 갈 길 잃은 신도들에게 새로운 방향과 지침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행동하는 양심적 신앙인인 본회퍼의 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본회퍼 신학개론’이 최근 출판됐다. 이 책은 존 드 그루시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기독교학 교수 등 13명의 전세계 본회퍼 전문가들이 본회퍼신학의 주요 주제를 각자 전공을 살려 집필한 것을 영국 캠프리지대 출판부가 본회퍼 지침서(companoin)로서 내놓은 것이다. 유성석 한국본회퍼학회장(서울신학대 교수)과 김성복 양울교회 목사가 공동 번역했다.
이 책은 본회퍼의 유년·청년시절을 포함한 생애, 나치 하의 정치적 상황, 그리스론과 제자직, 공동체로서 교회, 책임윤리, 평화사상, 유대인 문제, 성인된 세계, 정의를 위한 영성과 기도, 본회퍼 사상의 유산과 영향을 망라해 다뤘다. 민족과 교파가 다른 저자들이 본회퍼의 생애, 활동, 저작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한 유익한 개론과 다각적인 논평을 제공했다. 연표, 주요용어 해설, 색인 등이 달려 빠른 이해에 도움을 준다.
본회퍼는 베를린대 신학부에 입학해 21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23세에 대학교수가 된 승승장구하던 신학자였다.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면서도 끊임없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신앙인이었다. 청년 시절엔 베를린의 가난한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교회 어린이들을 돌봤다. 뉴욕의 유니언 신학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서는 빈민가 할렘에서 흑인들과 지냈다.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혀서는 영치품을 흉악범들과 나눠 썼다.
그는 1933년 1월,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독재를 시작하자 지식인이자 신앙인으로서 저항을 시작했다. 본회퍼는 “미친 사람이 차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나는 성직자니까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나 치러 주고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자동차에 뛰어올라 미친 운전자에게서 핸들을 빼앗아야 하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했다. 라디오 생방송 연설을 통해 “자신을 신성화하는 지도자는 신을 모독하는 자”라고 지적했다가 제지를 당했고 이내 나치 정권으로부터 반동분자로 낙인찍혔다.
그는 감옥에서 쓴 ‘밑으로부터의 시각’에서 “사회로부터 배제당한 사람들, 의심받는 사람들, 학대받는 사람들, 무력한 사람들, 억압당한 사람들, 멸시받는 자들, 즉 수난당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거대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경험”이라고 했다. 또 시 ‘자유의 도상’에서 ‘순간의 쾌락에 동요하지 말고, 정의를 단호히 행하고/ 가능성에서 흔들리지 말고, 현실적인 것을 담대히 붙잡으라./ 사고의 세계로 도망치지 말라,/ 오직 행위할 때에만 자유가 존재한다./ 두려워 주저하지 말고 인생의 폭풍우 속으로 나가라’고 적고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것을 촉구했다.
본회퍼는 히틀러시대가 오도록 방임한 당시 독일 신학과 교회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보수적이고 사변적인 기성 신학자들을 그리스의 형이상학에 의해 주조된 추상적이고 낡은 교리 체계, 종교개혁 이후 정통주의에 매몰돼 이미 화석이 된 신학을 반복한다고 지적했다.
본회퍼는 예수를 ‘타자(他者)를 위한 존재’로, 교회를 ‘타자를 위한 집단’으로 해석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도하는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본회퍼신학은 한마디로 ‘정의와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결정체였다.
유석성 교수는 “이 책의 출간은 본회퍼 연구자뿐만 아니라 국내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고 세계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요즘 본회퍼신학은 평화 안착을 위해 전 인류가 나갈 길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유 교수는 독일 튀빙겐대에서 본회퍼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신학대 총장, 한국기독교학회 회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회장, 한국신학대학 총장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본회퍼 전집 16권 중 국내서는 ‘옥중서신-저항과 복종’을 비롯해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 ‘윤리학’, ‘성도의 교제’, ‘행위와 존재’, ‘창조와 타락’, ‘그리스도론’ 등 8권의 주요 저서가 번역 출간돼 있다.
존 드 그루시 외 12명 공저, 유석성·김성복 공역, 종문화사 간, 512p,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