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영어의 몸이 됐으며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가 박빙의 대선 승부를 버리고 있는 요즘 다들 헛헛한 마음에 빠져 있다. 소상공인은 장사가 안 돼서 울상이고, 부유층은 새 정권이 들어서면 세금이라도 더 털릴까 걱정하면서 ‘부자 몸조심’하며, 일부는 도저히 탄핵의 성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도학회 한서대 교수가 50대의 방황하는 남녀의 성적 일탈을 그리면서 양극화의 표리, 1970~80년대 이데올로기에 갖힌 그 세대의 현실 인식을 소설 ‘아무것도 아닌 관계처럼 아는 사람’을 통해 2월의 촛농이 흘러내리듯 소곤소곤 녹여냈다.
조민준은 대기업을 다니다 갑자기 회사로부터 명예퇴직을 선고받고 방황한다. 젊음을 직장에서 불태워 초고속 승진을 했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잘려 늦깎이로 결혼해 얻은 자녀들을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손정원은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위자료를 받고 ‘강제이혼’ 당한 처지다. 정원은 새 출발을 위해 카페를 차리려 하고 민준은 찻집공사의 책임자로 그녀와 조우한다.
이 소설은 어쩌면 근래 찾아보기 쉬운 평범한 사람의 소소한 스토리를 샛강이 흐르는 필치로 잔잔하게 묘사했다. 조민준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구속에서 잠시 벗어나 정원과 일탈을 한다. ‘젊어서 하는 고백은 사랑의 세레나데이지만 나이 들어 하는 고백은 구원해달라 것’이라고 뇌까린다.
작가는 나름 성실한 삶을 살았음에도 현재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두 주인공의 상황을 묘사한다. 성실함이 오히려 지금의 아픔을 야기하는 부조리였음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깨닫게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금 교수는 조각가이자 교수로서 명예와 경제력 중 어느 하나도 놓지 않고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승자로 묘사된다. 어쩌면 작가의 자화상인 인물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거대한 세상의 메커니즘에 맞서기는커녕 인지하지도 못하고 살다가 모통이로 몰리고 나서야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시점을 포착한다. 명퇴자는 어쩌다 수십만원의 수입이 생기면 또래의 친구와 소주 한잔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 연명한다.
이 소설은 작년 11월부터 올 3월까지의 사회상을 상황 묘사와 주인공의 대화를 통해 리얼타임으로 녹여내고 있다. 허탈함에 묻어나지만 소통과 타협으로 새 트렌드에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관조도 담고 있다.
작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범종으로 알려진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36호)이 2년 여의 작업 끝에 새로 선보이는 주역이다. 오는 29일 오전 11시 상원사에서 신종 타종식을 갖는다. 그는 이번 소설과 ‘대왕의 종’(2016년간)에서 종에 새겨진 비천이 남녀의 심신합일과 카타르시스, 이상의 지향을 의미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도학회 저, 종문화사 간, 260p,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