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30대 정 모씨는 지난 5월 손목을 자해(自害)해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응급실을 나가 건물에서 투신, 사망했다. 환자 가족은 정 모씨가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폐쇄병동에 입원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해 이런 사고가 났다며 2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환자의 투신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고, 치료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맞섰다. 이 사고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됐다.
의료중재원은 손목치료를 먼저 한 데 대한 과실은 없으나 정신분열증 환자의 피해망상이 악화돼 자해를 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해행동이 재발할 수 있는데도 보호병동으로 입원시키지 않는 등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망한 환자가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업무를 하기는 어렵고, 과거에도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지속적인 근로를 하지 못했던 점 등을 들어 3500만원으로 조정했다. 환자와 의료인 양측은 의료중재원의 감정결과와 제시된 조정금액이 적정하다고 보아 합의했다.
이처럼 환자의 억울함과 병원의 속사정을 중재해 의료소송으로 갈 일을 막는 의료중재가 점차 일반에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4월 8일 출범한 이래 9월 말까지 6개월간 총 256건의 조정·중재 신청을 접수했고, 이 중 피신청인의 동의를 받아 조정이 개시된 건수는 86건이며, 이 중 27건의 조정을 완료했다고 14일 밝혔다. 동의절차가 진행 중인 건수는 41건, 동의하지 않아 각하되거나 신청을 취하한 건수는 129건으로 조정 참여율은 40.0%를 나타내고 있다.
의료기관이 조정을 신청한 건수도 3건이며, 의료중재원의 조정 진행 절차를 경험한 의료기관이 중재원의 전문성과 공정성에 신뢰감을 갖고 중재(의료중재원 조정부의 종국적 결정에 따르기로 합의함)를 신청한 건도 1건 있었다. 외국인이 조정신청한 건수는 5건으로 중국 3건, 베트남 및 스리랑카 각 1건이다.
27건의 조정 완료 중 조정결정(성립) 및 합의조정이 24건으로 조정 성립율은 88%였다. 조정결정(성립)은 의료중재원 조정부의 조정결과에 환자와 의료인 양측이 동의하는 것을 말하고, 합의조정은 조정절차 진행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인 양측이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중재원은 의료분쟁 특성상 의료사고 발생 후 합의를 시도했다가 안 되면 민원을 제기하는데 통상 2~3개월이 소요되고, 치료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손해액이 확정되지 않는데다가, 월별 조정·중재 신청 접수건수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10월 이후에 조정 신청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했다.
의료중재원은 피신청인의 조정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의료기관이 조정절차에 참여할 경우,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환자의 시위나 농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조정절차의 장점에 대해 지속적인 홍보를 실시할 계획이다.
한편 256건의 조정·중재 신청건수를 진료과목별로 보면 내과가 59건(23.3%)으로 가장 많았고, 정형외과 45건(17.6%), 치과 25건(9.8%), 외과 21건(8.2%) 순이었다. 의료행위별로는 수술이 61건(23.8%), 처치 59건(23.0%), 진단검사 47건(18.4%) 등의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78건(30.5%)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62건(24.2%), 부산 19건(7.4%) 순이었다. 의료기관 종별로는 병원이 99건(38.7%)으로 가장 많았고, 종합병원 82건(32.0%), 의원 75건(29.3%)등의 순이었다. 또 조정신청 금액별로는 501만원에서 1000만원이 42건으로 가장 많았고, 301만원~500만원, 3001만원~5000만원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