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톤펌프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 PPI)는 위벽 벽세포에 존재하며 위산의 수소양이온(프로톤 proton H+)을 생산하는 프로톤펌프와 비가역적으로 결합해 억제한다. 즉 PPI 제제는 H+/K+ ATPase와 결합해 이를 비활성화시키고 H+가 위 안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PPI는 전구약물(prodrug) 형태로 위 기저세포막을 통하여 벽세포 내로 들어가 축적되며 낮은 산성의 조건 하에서 활성체인 sulfenamide로 바뀌게 된다. sulfenamide는 프로톤펌프의 시스테인(cysteine) 그룹과 환원 가능한 이황화결합(reducible disulfide-bond)을 한다. 즉 S-S-sulfenamide가 형성돼 위산을 만드는 수도꼭지인 프로톤펌프를 틀어막는다.
하지만 대다수 PPI는 전구약물이기 때문에 위를 통과할 때 위산에 의해 쉽게 분해된다. 또 복용 후 산분비 억제효과는 복용 첫 날부터 나타나지 않고, 대체로 5일 후에 최대로 나타나 발현이 늦다. 반면 반감기는 짧아 약효는 빨리 사라진다. 이는 ‘야간 산분비 돌파(산분비 억제 실패)’(nocturnal acid breakthrough, NAB)를 야기할 수 있고, 증상이 지속되게 만든다.
프로톤펌프억제제로는 오메프라졸(omeprazole), 판토프라졸(pantoprazole), 란소프라졸(lansoprazole), 라베프라졸(rabeprazole), 에스오메프라졸(esomeprazole), 덱스란소프라졸(dexlansoprazole), 일라프라졸(ilaprazole) 등이 있다.
PPI는 아주 강력한 산분비 억제제다. PPI는 공복이 오래 지속된 후(특히 아침 식전)에 복용하면 효과가 좋은데 이때는 위벽세포에 비활성화된 H+/K+ ATPase가 증가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일 1회, 식전(주로 아침 식전) 투여하면 충분하다. 두 번에 나눠 복용할 경우에는 아침 식전과 저녁 식전이 적합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H2수용체길항제를 복용해도 효과가 없을 경우에 2차적으로 선택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지금은 ‘산이 없으면 궤양(위산식도역류도 포함)도 없다’는 치료 원칙 아래 지금은 1차적으로 선택되고 있다.
대부분의 PPI 제제는 △위궤양, 십이지장궤양의 단기치료 △역류성식도염 및 위식도역류질환(GERD)의 증상(가슴앓이, 토출 등) 치료 △심한 역류성식도염과 잘 치료되지 않는 소화성궤양의 유지요법 △졸링거엘리슨증후군 △Helicobacter pylori에 감염된 십이지장궤양의 재발 방지를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 투여로 인한 위·십이지장궤양 또는 미란의 치료 △위·십이지장 병변의 병력이 있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 장기투여 환자에서 NSAID 투여로 인한 위·십이지장궤양 또는 미란 및 소화불량증상의 예방 △역류성식도염의 재발방지라는 적응증을 갖고 있다.
▷ 서방형 PPI
종래의 PPI가 반감기가 짧고 약효가 빨리 소멸돼 야간 산분비가 유발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게 이른바 ‘서방형 PPI’다.
서방형 중 가장 대표적인 덱소란소프라졸은 △미란성 식도염의 치료 △미란성 식도염의 치료 후 유지 △ 증후성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Non-Erosive 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과 관련된 속쓰림의 치료 등에 국한돼 있다. 이는 상용화된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국내 위염 및 십이지장염, 위·십이지장궤양 환자의 감소로 포화된 시장 때문에 적응증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은 때문으로 분석된다.
덱스란소프라졸은 란소프라졸(s-form)의 광학적 거울상 이성질체로 d-form에 해당한다. 덱스란소프라졸은 란소프라졸보다 우위를 보이는 강력한 산분비 억제 작용과 함께 PPI 최초로 적용된 ‘Dual Delayed Release’(다케다 덱실란트디알캡슐에 국한됨) 기술이 결합돼 체내 지속시간이 늘어났다. 즉 약물 함량의 25%(1차 방출, 캡슐내 백색과립)는 근위 십이지장에서 pH 수준 5.5에서 방출되고, 나머지 75%(2차 방출, 캡슐 내 녹색과립, 지연방출)는 pH가 6.75인 원위 소장에서 방출된다. 이런 이중 방출 메커니즘을 통해 전자는 투여 후 1~2시간 이내, 후자는 투여 후 4~5시간 이내에 최대 약물혈중농도에 도달한다. 이는 PPI 제제 중 덱스란소프라졸이 가장 긴 약효유지시간과 가장 강한 양성자펌프 억제능력을 가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서방형 제제는 초기치료 시 증상 완화가 그리 빠르지 않고, 위산분비 억제 능력이 늦게 나타난다. 게다가 덱스란소프라졸은 혈장 반감기가 90분(1~2시간) 내외로 짧아 야간 산분비 억제 실패가 발생할 소지가 여전하다. 또 란소프라졸 용량이 1회에 15mg, 30mg인 반면 덱스란소프라졸은 그 2배인 30mg, 60mg이 투여되는 문제가 있다.
덱스란소프라졸은 에스오메프라졸과의 24시간 동안의 위내 pH를 비교한 결과 우수한 산 분비 조절 효과를 나타냈다.
덱스란소프라졸은 또 식사와도 무관하게 복용이 가능한 장점을 갖췄다. 아침 식전, 점심 식사, 저녁 식사, 저녁 식사(또는 저녁 간식)에 복용해도 24시간 동안 위의 pH 수준이 4이상(치료 목표 도달, 산성 환경에서 펩시노겐이 펩신으로 활성화되는 것을 억제하는 조건) 달성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각 복용 시간별로 24시간 중 pH 4 이상 유지시간의 평균 백분율은 71%, 74%, 70%, 64% 수준이었다.
반면 다른 PPI 제제는 식사 30~60분전에 복용해야 제대로 효과가 난다. PPI 제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40%만이 제 시간에 약을 복용해 순응도가 떨어졌으며 이는 치료 실패 원인의 하나로 지목됐다.
요컨대 덱스란소프라졸은 이중 방출 메커니즘 덕분에 단일 방출 메커니즘을 가진 기존 PPI보다 적절한 혈장 농도를 더 오랜 시간 유지해 효과를 지속하게 하며, 식사 시간과 약효가 무관한 것으로 평가됐다. 아울러 덱스란소프라졸은 오메프라졸이나 에스오메프라졸에서 나타나는 클로피도그렐과의 약물상호작용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종래의 PPI
오메프라졸은 최초의 PPI 제제로 위산을 강력하게 억제한다. 난치성 및 재발성 궤양에 신속한 치료 반응을 나타낸다. 위산에 매우 불안정하므로 장에서만 녹도록 장용정으로 제조되고 있다. 위장점막이 오그라드는 위축성 위염, 산 분비가 적은 저산증에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아침 식전에 복용토록 권장하며 8주(처음 4주 후, 추가로 4주 연장, 위궤양 및 역류성식도염의 경우) 이상 복용을 제한하고 있다. GERD에서는 2~4주 투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시메티딘과 마찬가지로 다른 약물의 간 대사를 억제해 약물혈중농도를 증가시켜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다른 약물을 병용할 경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에스오메프라졸은 오메프라졸의 s-이성질체이다. 오리지널 오메프라졸은 R-omeprazole(상품명 로섹 또는 프릴로섹)인데, S-omeprazole(상품명 넥시움)은 그 거울상 이성체로 약효를 향상시킨 것이다. 이들 약의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안전성을 중시해 R-omeprazole를 먼저 상품화했으나 이후 안전성을 보완하고 유효성이 강조된 S-omeprazole를 출시했다. 여기에는 R-omeprazole의 특허만료를 앞두고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기 위한 개발전략도 담겨 있다.
거울상 이성질체(racemic isomer)는 분자식은 같지만 서로 다른 물리, 화학적 성질을 갖는다. 오메프라졸의 경우 S=O 결합이 서로 거울에 비친 형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에스오메프라졸이 오메프라졸보다 위산분비 억제 효과가 더 강력하다고 연구돼 있다. 에스오메프라졸이 오메프라졸에 비해 간에서 느리게 대사돼 혈장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므로 위산분비 차단 효과가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라베프라졸은 판토프라졸과 야간 12시간 위산분비 억제 효과를 위내 pH 4 이상 유지시간 달성률을 통해 비교한 한 연구에서 50.2% 대 16.0%로 우위를 보였다. 다만 라베프라졸은 평가 가능한 10시간 30~45분 시간 중에서 관찰 전반부에 걸쳐 평균보다 더 높은 위내 pH를 보여준 반면, 판토프라졸은 관찰 후반에 더 높은 pH를 나타냈다.
일라프라졸은 일양약품이 개발한 국산 14호 신약으로 위·십이지장궤양의 단기치료, 미란성 식도염의 단기치료, 헬리코박터필로리에 감염된 위·십이지장궤양의 재발 방지를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으로 적응증이 좁은 편이다. 위산식도역류질환에 대한 적응증이 없기 때문에 시장성 확장에 큰 약점을 안고 있다.
▷ 제산제와 PPI 병용 (속방형 PPI)
최근 제약업계에서는 PPI에 중탄산나트륨을 복합해 GERD 개량신약으로 개발하는 게 유행이다. 중탄산나트륨은 위산을 중화할 뿐만 아니라 위산에 의해 PPI가 분해되는 것을 막아준다. 환자의 증상이 빠르게 완화되다보니 ‘속방형 PPI’로 불린다.
속방형 PPI 제제는 소장에서 바로 흡수돼 상당히 빠른 시간에 약효를 나타내는 장점이 있다. 속방형 PPI 제제의 혈중 농도는 1시간 이내에 최고에 도달해 기존 PPI 제제(1~5시간)와 비교했을 때 훨씬 빠르게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야간 pH 감소도 상당히 억제하는 것으로 보고돼 야간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 2회 투여 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에스오메프라졸+중탄산나트륨, 라베프라졸+중탄산나트륨, 란소프라졸+탄산칼슘이다. 에스오메프라졸+탄산칼슘, 에스오메프라졸+수산화마그네슘 조합도 있다.
중탄산나트륨은 습기를 잘 먹으므로 제습 코팅을 해야 한다.약제가 위에 도달하면 위산에 의해 첫 번째 장벽(barrier)이 깨지면서 중탄산나트륨이 위산을 중화시키고, 중화작용을 통해 에스오메프라졸 또는 라베프라졸의 분해를 막아준다.
약물역동학 평가 결과 에스오메프라졸/중탄산나트륨 복합제의 최고 혈중농도 도달시간(Tmax)은 0.5시간, 기존 지연방출형 에스오메프라졸은 1.5시간으로 복합제의 작용시간이 더 빨라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에스오메프라졸/중탄산나트륨 복합제는 반복적으로 투여해도 위내 pH 변화 정도가 그리 크지 않았고, 위의 pH가 4 이상에 도달하는 시점도 기존 에스오메프라졸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반응도 양군에서 차이가 없었다.
제약사들은 개량신약을 보다 쉽게 개발하기 위해 주성분인 PPI의 용량은 그대로 둔 채 중탄산나트륨의 용량을 여러 가지로 해서 배합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복합제를 내놓는 ‘꼼수’를 부리고 있기도 하다.
▷ PPI의 효과와 부작용 요약
위식도역류질환 환자의 70∼80%는 PPI를 투여하면 가슴앓이(heartburn) 증상과 위산역류(acid regurgitation) 등 양대 증상이 사라지는 것으로 입증됐다.
하지만 증상이 경증이거나 중등도인 경우에는 H2RA나 제산제를 단독으로 투여하거나, H2RA와 제산제를 병용하는 방법을 2주 이내로 시행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PPI는 장기 복용하면 다양한 안전성 이슈에 걸린다. 우선 위산이 적게 나와 음식물 속에 부패된 물질이나 감염균을 위산으로 정화·살멸하는 작용이 떨어진다. 폐렴에선 PPI 장기사용이 감염 위험을 80% 높이는 것으로 연구돼 있는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PPI를 장기복용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위암(위축성 위염 또는 위내 세균증식에 의한), 식도암, 간암, 췌장관암의 발생 위험이 2배가량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수차례 나온 바 있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이슈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부작용으로 두통, 설사가 유발될 수 있으나 심각하지 않다.
최근에는 골다공증과 골절위험 증가가 안전성 문제로 부각됐다. 논란의 발단은 혈액투석 환자가 2주 이상 PPI를 사용할 경우 칼슘 수치가 감소해 골다공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한 최초의 논문이었다.
PPI를 고용량으로 장기간 투여하면 소장에서 칼슘 흡수가 감소하기(프로톤펌프 억제 및 위산 감소에 의함) 때문에 혈중 칼슘 농도가 떨어지고 골다공증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고관절, 손목, 척추 등에 골절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견해였다. 이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장기 투여 시 골다공증에 주의해서 투여할 것을 권고하는 선으로 이슈는 정리됐다. 대규모 전향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PPI를 장기간 투여해도 고관절 골절률이 유의하게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PPI 장기 투여 시 부갑상선호르몬의 증가가 지목됐는데 실제 30대 이상의 정상 성인 남성에서는 3개월 동안 PPI를 투여해도 부갑상선호르몬이 증가하는 게 관찰되지 않았다.
PPI 제제는 세부 적응증마다 정해진 치료기간이 다르게 설정돼 있다. 가급적이면 이를 준수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프로톤펌프억제제는 H2수용체길항제나 점막세포보호제의 일종인 프로스타글란딘 제제와 같이 쓰면 위산분비 억제 효과가 심하게 감소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