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5일 정부의 전공의에 대한 행정명령 철회 조치와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의료 공백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의정 갈등이 지속되면서 정작 환자들만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신속하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정부의 전공의에 대한 행정명령 철회 조치 관련 환자단체연합회 입장:
"정부-의사 힘겨루기가 끝나도 고통받는 것은 결국 환자다."
어제(4일), 정부는 전공의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철회해 전공의 사직을 허용하고, 전공의에게 부과된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공의 부재로 인한 의료현장의 부담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 여부와 그 방식을 묻는 투표를 진행 중이며, 의료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국민도 과연 이번 행정명령 철회 조치로 전공의가 복귀할지 의구심이 들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연합회)는 이와 같은 상황 앞에서 정부의 결정을 환영할 수도,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번 전공의 집단이탈로 촉발된 장기간의 의료공백 사태로 그간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얼마나 부실했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정부와 의료계는 ‘2천명 증원’이라는 숫자를 두고 결국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의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관련 문제적인 시스템을 개선할 구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갑자기 미래에 배출될 의사 수를 늘리는 데에만 골몰하는 정부의 행태는 집착에 가까웠고, 이에 대해 사직과 휴진, 원점 재논의 요구, 총파업 예고로 나아간 의료계의 행태는 환자와 국민에 대한 협박으로 느껴졌다.
이처럼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속에 환자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국민은 불안감과 피로가 쌓여간다. 지금 정부가 행정명령을 철회한들, 그리하여 일부 전공의가 의료현장에 복귀한들, 그것이 환자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공의 복귀는 어쩌면 그저 기존의 부실한 의료체계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가 아닌 일반 국민은 정부와 의료계를 비난할 수도 있으나,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환자들은 그 어느 쪽에도 설 수 없었고, 그래서 더욱 고통받고 있다. 상가 건물마다 들어차 있는 개원의 간판을 보면 우리나라의 의사 숫자는 차고 넘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의 Big5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증‧희귀질환 환자들은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분야의 의사를 ‘어떻게’ 늘리느냐인데, 정부는 ‘2천명씩 1만 명을 늘려야 한다’며 증원 숫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공백 100일이 넘는 동안 줄곧 ‘제발 숫자가 아니라 환자를 봐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의 생명은 강 건너 불 보듯 여기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의료현장을 지키며 탈진해 가는 의사들이 있었기에, 환자들은 그 의사들을 생각하며 말을 아꼈다.
이제 2025년 의대정원 증원 규모가 사실상 확정되었으니, 정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전공의들은 복귀 시 행정처분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환자를 앞세워 진행된 100일이 넘는 의정갈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됐다. 의료공백 기간 동안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는 757건이고 총 상담건수는 3,192건에 이른다. 정부와 국회는 환자의 피해 사항을 정확히 파악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현재 진행 중인 의료공백 사태가 미래에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입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 ‘환자중심의료’가 환자를 가운데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싸우는 도구로 사용되거나 의미로 해석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공의 중 일부는 이참에 다른 진료과목을 택해 개원할 것이고, 사직서 수리를 원하는 일부 전공의는 이제 아예 다른 직업을 선택할 것이다. 며칠 전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향후 3년간 정부의 의료정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무대응·불참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으며, 늘어난 의대정원으로 인해 배출될 의료인력은 10년 후에나 의료현장으로 나올 것이다. 정부도, 의료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병원에 남아 계속해서 고통받아야 하는 건 환자들이라는 뜻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끝이 나든 안 나든, 혹은 어떻게 끝이 나든, 결국 그 결과 고통받아야 하는 건 환자다. 절망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다.
2024년 6월 5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