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철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의학석좌교수팀은 김광우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팀과 김봉조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과장, 김영진 연구관과와 공동 연구를 통해, MHC 면역유전자 영역을 정밀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분석도구를 개발하고, 전신홍반루푸스(Systemic Lupus Erythematosus, SLE) 발병에 관여하는 핵심 유전변이를 규명했다고 8일 밝혔다.
SLE는 면역 체계가 외부 침입자(세균, 바이러스 등)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상 세포나 조직을 외부의 위협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이다. 유전적, 환경적, 성호르몬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면역체계를 교란해 발생한다. 아직 기전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이번 연구의 초점은 면역유전자가 밀집된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주조직적합복합체) 영역에 맞춰졌다. MHC 영역은 6번 염색체에 위치하며,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들이 집중돼 있다. 특히 HLA 유전자군(Human Leukocyte Antigen)과 C4 유전자(Complement Component 4)는 자가면역질환과 연관성이 높아 오래전부터 그 중요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MHC 영역은 유전 구조가 복잡하고 사람마다 유전적 변이가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기존 기술로는 고해상도의 대규모 정밀 분석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어, 루푸스를 비롯한 자가면역질환의 유전적 원인을 정밀하게 규명하는 게 어려웠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MHC 영역 내 유전변이를 고해상도로 분석할 수 있는 면역유전자 분석 도구(MHC 참조 패널; MHC imputation reference panel)를 새롭게 개발했다. 특히 HLA 유전자와 C4 유전자의 유전 변이 정보를 동시에 정밀 예측할 수 있는 분석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구현함으로써, 루푸스의 유전적 발병 요인을 보다 세밀하게 규명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 분석 도구를 활용해 루푸스 환자와 건강한 대조군을 포함한 약 7만명 규모의 한국인 유전체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HLA 유전자 내 특정 아미노산 변화와 C4 유전자의 개수 차이가 각각 독립적으로 루푸스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새롭게 도출했다.
세부 분석에 따르면, HLA 유전자 내 특정 아미노산의 변형은 항원과의 결합 방식을 변화시켜 자가항원을 외부 침입자로 잘못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C4 유전자의 수가 적거나 비정상적으로 긴 비번역 서열이 삽입된 경우, 보체 단백질의 생성이 감소돼 면역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루푸스 환자에서 나타나는 면역시스템의 이상 반응이 유전적 요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배상철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의학석좌교수(왼쪽부터), 김광우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 김봉조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과장, 김영진 연구관
배상철 의학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로 루푸스 발병 위험과 연관된 유전변이를 규명하고 루푸스의 유전적 기초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다”며 “C4 유전자 결핍이나 특정 HLA 유전형 등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확인함으로써 환자별 질병 위험도를 정확히 평가하고, 조기진단 및 환자맞춤형 치료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구축한 MHC 참조 패널은 국립보건연구원의 CODA 시스템을 통해 공개되며, 국내외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 유전체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자가면역질환뿐만 아니라 감염병, 만성 염증성질환 등 다양한 질환 연구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기존 고비용·저효율 문제로 분석이 제한적이었던 MHC 영역의 대규모 정밀 분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질환 예측, 바이오마커 발굴 등 정밀의학 기반 연구의 가속화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류마티스질환 분야의 국제 최상위 학술지 ‘Annals of the Rheumatic Diseases’(IF 20.6) 최근호에 게재됐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배상철 ·김광우 교수, 김봉조 과장, 김영진 연구관이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를 주도했다. 유채연 경희대학교 박사과정생과 신동문 국립보건연구원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