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의미한 학습경쟁 탈피 유도하고 기성세대의 끊임없는 멘토링 필요
과거 경제신문사의 의학담당 기자로 지내던 필자는 어쩌다가 중소기업 CEO를 만나면 “취업난이 아니라 구인난입니다”라고 하소연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그 때 필자는 “글쎄요 구인난이라니요. 지방대생들은 스펙(spectrum에서 나온 유행어로 학벌,영어성적,자격증 등의 취직에 도움되는 요건)을 나름대로 열심히 올려놨는데도 서울의 기업들이 채용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크던대요”라고 대꾸했다. 당시에는 CEO들의 말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필자도 조그만 인터넷 건강신문사(헬스오)를 창업해보니 그 의중을 알 수 있게 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졸 세명 중 한명이 대학생(4년제)이었는데 지금은 고졸 다섯명중 한명만이 대학(2년제 포함)을 가지 않는다.대학졸업자는 넘쳐나는데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전문직 등 ‘괜찮은’ 일자리는 소수니까 일자리의 미스 매치(mis match) 현상이 극심하다.
지난 5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316개 기업 인사담당자와 전국 대학 취업준비생 743명을 대상으로 ‘청년실업과 세대간 일자리 갈등에 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4년제 대학생의 초임 기대임금은 3329만원으로, 조사대상 기업의 실제 초임 3043원에 비해 286만원이나 높았다. 특히 서울소재 주요 4년제 대학생의 기대임금은 3633만원으로, 실제 초임과의 격차가 590만원에 달했다. 경총은 “임금 기대치에 대한 불만이 ‘구직난 속 구인난’의 한 원인”이라며 “이같은 문제는 중소기업에서 상대적으로 더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또 취업준비생 3명 중 2명(66.4%)은 정년연장, 재고용 등 고용연장 조치가 청년 일자리를 줄인다는 불만을 갖고 있어 향후 세대간 일자리충돌이 증폭될 우려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준비생이 원하는 괜찮은 직장의 대부분은 고용연장이 잘되고 평균연령이 높아 오히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근로자 때문에 취업문이 좁아진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취업준비생의 69.1%는 세대간 일자리 갈등 현상이 ‘괜찮은’ 일자리에 집중되는 것으로 여겼다.
필자가 조그만 회사를 운영해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귀하게 자라고 고생을 하지 않아서 구인난이 생긴다고 느껴진다. 옛날처럼 셋 이상의 자녀를 가진 가정이 거의 없다보니 다들 존재론적으로 외톨이이며 생각도 외골수다. 지금의 나약한 젊은 세대를 키운 것은 지금의 50대,60대이고 이들은 또 각기 직장에서 정년을 연장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거나, 연장 혜택을 입은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구인난 및 구직난을 빌미로 한 세대갈등은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이를 초래하고 증폭시킨 이유로 필자는 독성스럽게도(toxically) ‘교육사다리’가 무너지고 빈부의 양극화 및 고착화가 심화돼서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다. 귀하게 자라고 학벌까지 괜찮은 부잣집 자식(일명 엄친아)은 정말로 고생을 안해봐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집의 미욱한 자식은 부모들이 그런 자식을 안쓰럽게 여긴 나머지 자기 자식이 겉도는 삶을 사는데도 따끔하게 제지하지 못하고 방치하기 일쑤여서 인생이 잘 풀리기 어렵다.
예전처럼 집이 가난해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명문대를 갈 수 있는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가 다시 돌아와야 요즘 젊은이들의 나약함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희망이 보여야 사회적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입학사정관제, 고교생활기록부(자원봉사)의 대입 사정 반영, 특목고 및 자사고의 증가, 심야 학원과외 등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준화 교육의 맹점이 크지만 과연 평준화 시대에 고교를 다닌 세대들이 형편없어서 한국의 학력수준을 떨어지고 국가성장엔진이 꺼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무의미한 심야학원에서의 경쟁을 줄이고 공교육을 활성화시켜 그 시간에 친구끼리 우정을 쌓고, 운동도 더 많이 하며, 정의와 합리를 실천하는 시민정신을 함양하는 기회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국방부에서는 고질적인 군 폭력문화로부터 나약한 신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같은 계급(동기)끼리 한 내무반에서 지내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폭력문화는 반드시 고쳐져야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동기들간에도 서로 원수가 돼 그 중에서도 결국 싸움 잘하는 사람이 내무반 청소도 하지 않고 약한 동기를 갈궈댈 것이라고 상상하면 개선이 아닌 개악이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직원 채용공고를 내면서 ‘이공계 바탕에 인문적 소양을 가진 사람’을 우대한다고 적었더니 응시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이 문구를 슬쩍 뺐더니 10여명의 지원자가 나타났다. 물론 문과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이 문구를 보고 지원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공계를 우대한다고 했지 문과대 출신을 홀대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정작 구직의지가 강했다면 능히 지원해볼 수 있는 문제다. 한편으로는 이공계 출신들이 취직할 일자리도 많고 급료도 더 좋지만 문과적 소양을 갖추면 언론 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음에도 이공계 지원자가 별로 없다는 것은 다들 틀에 박힌 사고와 안정된 직업만을 쫓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돈키호테 같은 용기가 결여되고 낯선 것에 대해 동경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의 한 단면일 것이다.
필자는 또 기자가 진정 3D직업이 된 것에 새삼 마음이 씁쓸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몸을 쓰는 육체노동도 싫어하지만 머리를 쓰는 것도 싫어한다는 것이다. 기자로서 글을 써도 문화나 패션,연예 분야에는 젊은이들의 관심이 많은 반면 정치,의학 등 취재강도가 높거나 공부할 게 많은 영역은 지원자가 훨씬 적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가 우려되는 점이다.
아울러 비록 필자가 만든 회사가 누구나 가고 싶은 괜찮은 회사는 아니지만 주식을 지급하고 일심동체로 일해서 잘 나가는 회사로 키우자고 설득해보지만 이렇다할 호응이 없다. 안될 법한 일에는 기대를 걸지도, 도전해보지도 않는 젊은이들의 현실주의에 필자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 시행착오를 겪기도 전에 일찍이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부터 배운 게 아닌지 걱정된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국내 20~30대 직장인은 단군 이래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한 시기를 보낸 세대로 세상풍파를 경험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심리적 복원력(resilience)이 취약하다”며 “요즘 신세대 직장인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회사 문을 뛰쳐나가기 일쑤”라고 분석했다. 채 교수는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라며 “멘토링을 강화해 신세대 개인주의 성향의 순기능적인 면을 업무능력 향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기업의 간부들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초·중·고교 교육과정에서 집단체험을 통해 ‘참는 것’을 배우지 못한 요즘의 젊은층은 취직해서 선후배와 갈등을 견디거나 푸는 방법이 미숙하다. 앞으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갈등은 점차 심화될 전망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인재 양성의 관점에서, 기성세대는 아름답고 융성한 조국이 영원불멸하도록 절대 포기하지 말고 젊은이들을 조직의 일원으로 성숙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