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약가 수준으로 다른 선진국의 약값을 인위적으로 인상토록 압박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와 밀접한 싱크탱크의 정책이 제안됐다.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 AFPI)는 21일 발표한 "글로벌 무임승차를 끝내고 미국인을 우선하라"(Put Americans First by Ending Global Freeloading)라는 제목의 현안보고서를 통해 주요 선진국의 약가를 인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6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미국의 약가만 높게 책정되어 글로벌 의약품 혁신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지만, 유럽 등 선진국들은 가격 통제로 낮은 가격에 신약을 구매하여 미국 환자들만 상대적으로 과도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즉, 해외 약가를 끌어올려 제약사에 더 많은 수익을 발생시키도록 하고, 이를 통해 R&D가 활성화되어 혁신 신약이 늘어나게 되면, 그 이후 장기적으로는 신약 간의 경쟁이 유발되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약가가 인하될 수 있다는 이상주의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혼재된 제안이다.
보고서는 우선 현재 미국이 전 세계 의약품 매출의 약 67%를 차지하지만, 유럽 주요국은 약 16%에 불과하며, 해외 국가들은 미국에서 지불하는 약값의 약 4분의 1 정도만 부담하고 있어 불공정한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1998~2022년 글로벌 신약 R&D의 약 78%가 미국에서 이루어졌다며, 미국 환자들이 높은 약가를 지불하면서 신약 혁신에 큰 역할을 한 반면, 유럽 등 선진국은 낮은 약가만 지불하며 혁신의 혜택을 보는 무임승차(Freeloading) 상태라는 해석이다.
이에 미국의 메디케어 등 약가를 OECD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책정할 것을 제안하고, 반대로 제약사가 미국 약가를 유지하기 위해 해외 국가에 가격 인상을 압박하도록 했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글로벌 평균 약가 지수를 개발해 점진적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로 했다.
미국의 약가를 억제하는 대신 무역법(Trade Act) 301조를 활용해 외국의 낮은 수준의 약가 정책 자체를 미국 제약산업에 대한 무역장벽으로 간주하고, 관세 등 무역 제재를 통해 다른 선진국이 약가를 인상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옵션을 제안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해외 국가들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되면 글로벌 R&D 투자가 증가할 수 있으며, 제약사들이 늘어난 글로벌 매출로 R&D 투자를 확대하여 연간 최대 8~13개의 신약이 추가 개발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미국 환자들은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신약을 이용할 수 있으며, 경쟁이 증가하여 글로벌시장에서 의료비 절감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간단히 말해, 미국 환자만 지는 부담을 선진국들이 나눠 지도록 하겠다는 정책 제안이다. 보고서는 단기적 국제 마찰 가능성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R&D 투자 활성화 및 신약 개발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제약사들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해외 약가 인상 압력에 순응할 것이라는 예상과, 해외 국가들이 충분한 경제적 여력과 책임이 있어 신약 비용을 더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 정부 개입을 통한 약가 규제와 무역 조치가 정당하다는 입장 등이 맞물려 있다.
보고서는 AFPI 산하 보건 분야 센터(Center for Healthy America)에서 작성됐다. AFPI는 2021년 설립된 이후 트럼프 후보 시절 예비 백악관(White House in waiting)으로 표현될 정도로 현 행정부와 밀접한 비영리 싱크탱크다. 실제 브룩 롤린스(Brooke Rollins) 전 AFPI 대표는 현재 농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는 등 다수의 AFPI 출신이 행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