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국내 최초로 류마티스 진료를 시작했던 서울성모병원이 면역세포치료의 하나인 CAR-T 치료제를 전신성 홍반 루푸스 환자에 국내 처음으로 투여하는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이 병원 주지현·이봉우 류마티스내과 교수, 윤재호 혈액내과 교수팀은 표준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다른 치료수단이 없는 40대 여성 루푸스 환자에 올해 3월 CAR-T 치료제를 투여한 결과 증상이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이 환자는 2009년 임신 중 전신부종과 단백뇨가 나타나 검사한 결과 루푸스로 진단됐다. 출산 이후 고용량 스테로이드 및 여러 면역억제제 치료를 시행함에도 루푸스 신장염은 관해(증상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장기간 고용량 스테로이드 투약에 의한 부작용으로 무혈성 골괴사가 발생했다. 여러 면역억제제 치료에도 단백뇨와 신장 기능이 악화되는 추세가 지속되었으며, 방치할 경우 루푸스에 의한 신장 손상이 가속화되어 혈액투석이 필요한 말기신부전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상태였다.
이에 주치의인 주지현 교수(가톨릭중앙의료원 기초의학사업추진단 산하 첨단세포치료사업단 단장)는 최근 해외에서 CAR-T 세포제의 치료 적응증이 자가면역질환으로 확대되고 있는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루푸스 환자의 치료목적 임상시험용 의약품 임상시험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고 임상을 진행했다. 혈액질환의 ‘4차 병원’으로 알려진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과의 긴밀한 다학제 진료의 도움으로 임상이 이뤄졌다.
류마티스 질환과 혈액질환은 일부 면역학적 접점을 가지고 있으나, 대상 질환군이 달라 이제까지 협진이나 공동 치료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재발성/불응성 거대B세포림프종이나 B세포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축적돼 온 혈액병원의 다양한 CAR-T세포 치료 경험은 루푸스 환자의 CAR-T 치료 과정에도 큰 도움이 됐다.
지난 3월 투여 이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지난 14일 외래진료 결과, 환자는 급성 부작용 발생 없이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했으며 면역억제제를 중단하여도 루푸스 관련 지표들(단백뇨, 보체, 항DNA 항체 등)이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루푸스는 대표적인 만성 자가면역질환으로,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면역체계가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피부 발진이 늑대에 물린 자국처럼 보인다고 라틴어로 늑대라는 뜻의 ‘루푸스’가 질환명이 되었다. 발병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말처럼 증상은 다양하다.
발생 초기는 발열, 전신 쇠약감, 우울증, 극심한 피로감, 체중 감소가 나타나고, 코 위쪽을 중심으로 나비 모양의 피부 발진이 일어나거나 손이나 손목 관절염을 앓기도 한다. 루푸스 환자 중 절반은 신장 기능 저하가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유명 가수인 셀레나 고메즈는 루푸스 질환으로 신장 이식을 받았다.
이처럼 신장 등 주요 장기 손상을 일으킨 경우 강력한 치료가 필요하다. 약제의 단독치료보다 병합요법이 환자의 예후에 효과적이라는 연구에 따라 적극적인 면역억제제 사용이 시작되고 있다. CAR-T 세포 치료제는 환자 혈액에서 T세포(면역세포)를 채취한 뒤 암세포의 특정 항원을 인지하는 키메릭 항원 수용체(CAR, Chimeric-Antigen Receptor)가 발현될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편집을 해 다시 환자의 몸에 주입하는 면역항암제다. 현재까지 CAR-T세포 치료제는 백혈병, 림프종 등 혈액암 치료에 적용되고 있다.
이런 기전을 응용하여 루푸스의 병리기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정상 B세포 역시 CAR-T 세포 치료제에 의해 억제돼 루푸스의 치료제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돼왔다. 최근 해외에서 기존 치료에 효과를 보이지 않는 루푸스 환자에 CAR-T 치료제를 투여, 증상 호전 및 루푸스의 관해상태 도달이란 치료효과를 올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윤재호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왼쪽부터), 루푸스 환자, 주지현·이봉우 류마티스내과 교수
윤재호 교수는 “혈액질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CAR-T 세포 치료법으로 만성신부전으로 악화될 수 있었던 난치성 루푸스 환자를 치료할 수 있어서 의미가 크며, 다학제 진료를 통해 난치성 환자의 치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지현 교수는 “최근 면역억제제 사용으로 루푸스 환자의 10년 생존율이 90~95%까지 보고되고 있으나 일부 환자는 폐, 심장, 신장, 뇌와 같은 주요 장기에 루푸스가 침범해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며 “이번 임상을 시작으로 기존 약제에 반응하지 않아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난치성 루푸스 환자가 완치될 수 있도록 연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연구는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된 서울성모병원의 중점 연구 분야 중 하나인 ‘난치성 자가면역’과 ‘세포치료’ 분야의 긴밀한 협업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이어서 주목된다. 서울성모병원은 향후 연구중심병원 사업이 본격화되면 이런 창의적인 치료 사례를 더 많이 도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