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히말라야를 오르다 - 신만이 허락한 그곳으로 1
2015-04-17 10:01:57
인간의 넘치는 욕망도 절제되는 ‘히말라야’ … 통신·전기 없는 곳으로 떠나는 ‘언플러그드 여행’, 인간 본연의 모습을 끌어보다
한 달간의 짧은 인도 생활을 마치고 네팔로 향했다. 단 하나의 이유로 모든 여행자들은 그곳을 향한다. 신만이 허락한 산을 오르기 위해.
산악인 고 박영석 대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히말라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몇 가닥 뿐이다. 신이 우리에게 허락해주는 순간만 자연은 그 속살을 보인다”. 당장 마음 먹으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인간의 넘치는 욕망도 절제되는 곳, 신의 허락만이 있어야 가능한 곳이 바로 히말라야다.
네팔로 가는 길은 강행군이다. 인도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은 크게 항로와 육로, 두가지다.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네팔의 수도)를 거쳐 포카라(안나푸르나 히말라야 트레킹 시작 도시)로 이동하면 된다. 또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국경을 넘게 된다. 한국에서 네팔로 바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일주일에 2회 편성, 운항되고 있다.
나는 인도 바라나시에서 건장한 청년 ‘강혁’군을 만났다. 그는 해병대를 전역한지 얼마되지 않은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서로 일정이 비슷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하기로 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일정이 맞는 여행자와 동행하기도 하는데 낯선 곳에서 한국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응급상황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를 대비한다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2013년 3월 24일 필자는 바라나시에서 포카라로 출발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나의 내면과 타협하는 적절한 장소가 이곳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젊은 백패커들은 이동수단으로 현지 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한다. 특히 현지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행위는 아주 매력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분단국가에 종속되어 있어서일까? 국경을 넘는 것은 묘한 쾌감마저 든다.
야간기차를 타고 국경도시 고락푸르(Gorakpur)까지 밤새 달렸다. 해가 뜨자 역 앞에서 네팔 국경도시 소나울리(Sonauli) 까지 가는 로컬버스를 탔다. 버스는 동네 곳곳과 비포장도로를 달려 한낮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내 정신은 밤샘 이동에 비몽사몽이다. 차에서 내려 먼지 가득한 도로를 걷다보면 ‘Welcome Nepal’ 간판이 보인다.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왔다는 증거다. 국경사무소에서 비자 비용 25달러(15일치)를 지불하니 여권에 도장이 나온다. 걸어서 나라 전역을 이동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네팔로 들어왔으니 적응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인도 루피와 네팔 루피의 현금 단위가 헷갈린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 보며 지프 기사와 재협상을 벌인다.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어느덧 출발한지 16시간이 지났다. 힘들게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포카라행 티켓을 끊는다. 하지만 여기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험준한 산이 많은 특성상, 위험천만한 길을 곡예운전하듯 6시간 이상 가야 한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린 여행자가 되어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할 뿐이다.
버스는 1980년대식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오라이’를 외치는 승무보조원에게 모든 짐을 맡긴 채 버스에 올라탄다. 올드한 느낌의 보잉 선글라스를 낀 채 몸집보다 큰 무파워 핸들을 거침없이 돌리며 왕복2차로 도로를 질주하는 운전수를 보고 있으면 ‘내 목숨을 담보로 얻는 대가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터무니없이 좁은 자리에서도 직각 자세로 잠을 잘 수 있다는 생존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드디어 24시간 만에 도착했다. 체력적인 소모가 많아 아주 건장한 젊은 여행자가 아니라면 네팔 국경 근교 도시에서 1박할 것을 추천한다.
#. 트레킹의 시작, 포카라
해발 820m 고지에 위치한 포카라는 히말라야를 등반하기 위해 전세계 수많은 트레커들이 모이는 곳이다. 트레킹 이후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는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일대 모든 트레킹의 출발지이며 종착지인 셈이다.
지난 강행군에 시체처럼 잤다. 눈을 뜨면 항상 듣던 인도에서의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히말라야의 찬 공기가 창문 너머 스며들어 방의 정적을 깬다. 창문을 활짝 열어본다. 화창한 날씨와 고요한 봄내음에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른다. ‘힘들게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 포카라 레이크사이드, 지상낙원에 왔음을 멀리보이는 설산이 두 팔 벌려 격렬히 환영하는 것 같다.
오후가 되자 트레킹을 위한 준비물품을 사러 레이크사이드 거리에 나왔다. 즐비한 장비점에서 쉽게 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 나는 등산용 바지를, 강혁군은 침낭과 등산복 세트를 빌렸다. 유명 브랜드 ‘북쪽얼굴’의 짝퉁이지만, 트레킹을 하기에 큰 무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 산에 적응한 티를 내듯 몸에 잘 어울려 있는 것만 같다. 등산용품을 대여하고 마트에 들려 초콜릿과 과자 등 비상식량도 빠지지 않고 챙긴다. 자신과의 위대한 싸움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다.
TIP. 트레킹 준비물품
일반적으로 트레커들이 준비해야 할 물품으로는 챙이 넓은 모자와 활동성이 좋은 등산용 바지, 비와 바람에도 든든한 등산 자켓, 방한복, 등산화, 갈아입기 편한 상하의, 침낭, 선글라스, 자외선차단제, 입술연고, 비상약, 초콜릿 등이다. 하지만 트레킹 도중 간혹 삼선슬리퍼나 쪼리를 신고 트레킹을 즐기는 유럽 백패커들을 보면 오색빛깔 화려한 등산복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단지 중요한 준비물품은 마음가짐이 아닐까?
TIP.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트레킹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이 즐기기에 적당하다. 10일의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트레킹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포카라를 찾는다. 물론 쿰부·랑탕 등 다른 지역에도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안나푸르나를 중심으로 하는 3개의 주요 트레킹 코스로 △좀솜 트레킹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ABC라고 부름) △안나푸르나 어라운드 트레킹이 있다. 좀솜 트레킹과 ABC 트레킹은 푼힐 전망대를 본다는 가정 하에 7~10일이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간혹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여행자들은 3일 일정의 좀솜 트레킹과 푼힐 트레킹을 즐기기도 한다.
필자는 푼힐 전망대와 ABC 전망대를 오를 계획으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8박 9일 루트를 소화했다. 이 코스를 돌면 다올라기리,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산의 풍경과 그곳 촌락에서 생활하는 네팔리(네팔인)의 삶을 볼 수 있다.
#. 트레킹 1일차 : 언플러그드 여행의 시작
코스: 나야풀 (1070m) ~ 울레리 (1960m)
소요시간: 약 6시간
출발 전 8박 9일 동안 트레킹을 도와 줄 포터 아저씨 ‘밀바두’ 를 만났다. 톰 아저씨를 닮은 선한 인상의 그는 짐꾼이라 보기에는 힘겨울 정도의 왜소한 체구다. 키는 160㎝, 몸무게는 50㎏이 조금 넘을 듯하고, 상당한 노안의 외모다. 트레킹 후반에 친해지고 나이를 물어보니 30대 초반이란다. 깜짝 놀랐기에 노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숙소 사장님은 나의 걱정스런 눈빛을 읽었는지, 염려말라고 안심시켜준다. 든든할 정도로 잘 챙겨 줄 것이라는 눈빛과 함께.
여행 전 어느 책에서 본 글귀다. ‘포터 고용은 인권윤리 침해다. 하지만 그들은 원한다. 그들은 종종 말한다. 단지 직업의 하나뿐이며, 어느 곳에서든 많이 와주었으면 하는 바림뿐이라고. 그들에게 포터는 하나의 생존 방식이다.’ 포터 아저씨 ‘밀바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다뤄보겠다.
가방 때문에 택시의 공간이 비좁다. 창문 너무 희미하게 설산의 봉우리가 스쳐 지나간다. “내가 도전할 곳이 저곳인가?”하며 다시 힐끔 뒤돌아본다. 한참을 달려 나야폴(1070m) 트레킹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많은 트레커들이 신발을 단단히 동여매고, 가방을 다시 챙긴다. 나도 택시에서 내려 가방끈을 조여 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시작이구나. 아자! 파이팅’ 시계를 흠칫 쳐다보니 이제 오전 9시다. 차갑지만 상쾌한 산속 공기를 힘껏 들여 마시며 발걸음을 떼 본다.
트레킹은 1시간 정도를 걷고 앉아서 조금의 휴식을 취하는 방식을 반복한다. 언덕을 오를 경우 시간적 제약은 없다. 힘들면 쉬면 그만이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트레킹의 첫 번째 철칙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경치의 아름다움에 비례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도 넘친다. 걷기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리 힘들지 않은 언덕 덕분에 아직까지는 나의 체력에 대한 자만감으로 가득 찼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포터가 하루 일정을 고려해 롯지(트레킹 코스 중간에 있는 식당 겸 숙소)를 선택한다. 우리는 ‘힐레(1430m)’라는 마을에 닿았다. 든든한 아침을 먹고 중간 휴식 시 초코바를 먹어서 인지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다. 하지만 무조건 시켜야만 한다. 내가 지불하는 음식 값에 포터 아저씨의 밥값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먹어야 그도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식사는 생각보다 좋았다. 운동한 뒤 마시는 맥주의 상쾌함처럼, 땀 흘린 뒤 먹는 밥도 제법이다.
‘힐레(1430m)’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 ‘울레리’(1960m)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고달프다. 일반 길이 아닌 계단길이다. 끝없이 오르는 경사진 계단길에 관절 마디가 상당한 통증을 호소한다. 힘을 낼 수 있는 뭔가를 먹어야만 한다. 중간의 쉼터에서 환타를 사 먹는다. 트레킹 중 탄산음료는 최고의 활력제다. 단 가격이 무려 180 네팔루피(한화 약 2200원)임은 감안해야 한다. 모든 트레커들이 가파른 언덕의 계단길에 힘겨워하고 있다.
하지만 포터들은 본인의 몸뚱이 보다 훨씬 큰 짐과 바구니를 짊어지거나, 머리에 매고 간다.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말이다. 이 산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고, 이 일이 그들의 주 생계임을 감안하면, 내가 태어난 곳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3시가 다 되어간다. 울레리 마을에 들어오니 ‘히말라야 여행동호회’라는 큰 한글 팸플릿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오늘의 숙소를 잡는다. 오늘 총 6시간의 트레킹을 했다. 오후 3시면 다소 이른 시간일지도 모르나, 산속이라 해가 일찍 지기에 위험하다고 한다. 한껏 여유롭게 쉬며 산속 경치를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언젠가는 새로운 여행 트렌트가 될지도 모를 언플러그드 여행. 통신과 전기가 없는 곳으로의 여행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끌어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여행일지 모른다는 설렘으로 첫날을 마무리지어 본다.
TIP.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최적 시기
히말라야 트레킹을 최고의 조건에서 즐기려면 날씨를 고려해야 한다. 네팔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구분된다. 우기는 대개 5월 하순~9월 하순이고, 10월~5월 중순까지는 건기다. 트레킹하기 좋은 계절은 당연히 건기다. 우기가 끝나는 10월은 트레킹 최적기다. 청명하고 짙은 잉크빛 하늘을 바라보며 트레킹을 할 수 있기에 10월이면 네팔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가장 많다. 마치 우리나라 단풍철에 설악산을 가는 것처럼. 하지만 10월이 아닌 건기에도 추위에 단단히 대비한다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과 눈덮인 설산의 조화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백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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