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희고 고우며 물이 깊지 않은 함덕 해변(함덕포)은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상륙해 삼별초를 전멸시킨 슬픈 사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br>
서우봉은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과 북촌리 사이에서 북쪽 바다로 불쑥 돌출된 해발 113m의 오름이다. 한국향토문화대전에 따르면 과거엔 서모, 서모오름, 서모롬 등으로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서산(西山), 서산악(西山岳) 등의 이름도 얻었다. 조선시대에 서모오름의 북쪽 봉우리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이 봉수를 서산봉이라 했는데 조선 후기부터 서우봉(犀牛峰)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서우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나, 원래 이름은 아니다.
서우봉은 한 시간쯤 무리하지 않고 산책하기에 좋은 바다와 숲을 갖추고 있다. 19번 올레길이 함덕 해변을 지나 이 봉우리를 넘어간다. 함덕리 청년들이 중심이 돼 해안길, 둘레길, 정상에 이르는 산책로 등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개발 및 관리하고 있다.
서우봉 아래 산책로 입구에 있는 길이 11m의 기와 가마 와막밧은 주로 암키와와 수키와를 굽던 곳이라 한다. 불은 넣던 화구부분을 포함해 약 2.4m는 멸실된 상태다. 한여름 수풀이 우거지면 가마는 거의 보이지 않아 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br>
조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서우봉에 오르기 전 오른쪽에 허물어져 가는 가마가 눈에 들어온다. 기와를 굽던 와막밧이다. 길이 11m, 높이 166cm, 너비 280cm이다. 불을 넣던 화구 부분을 포함해 앞부분 약 2.4m가 훼손된 채 거의 방치돼 있다. 이 가마에 대한 안내문이라도 없었다면 아무도 여기가 기와를 구웠던 곳임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마터 뒤엔 집터를 닦고 있는지 축대를 튼튼하게 쌓아 평지를 만들고 있다. 함덕 해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해안을 따라 난간이 있고, 바다 가까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아직은 미완인 듯 멀리 가지 못하고 길이 끝난다. 이 길 끝에서는 서우봉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리며 굳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갖가지 모양의 바위를 살필 수 있으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서우봉 전망대에선 함덕 해변뿐만 아니라 해질녘의 석양도 아름답다. 굳이 전망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우봉에 오르는 길 어디서도 해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br>
서우봉으로 오르는 길은 잘 닦인 시멘트 포장도로다. 한 발자국 오를 때마다 함덕 해변과 바다가 조금씩 넓어지며 눈에 들어온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관광객들은 저녁때면 중턱의 정자까지 와서 함덕 해변과 저 멀리 지는 해를 즐긴다. 중턱이라고는 하지만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정자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 또 산책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동쪽으로 한참 내려가면 일제 말기에 구축한 동굴 진지가 있다. 산책로는 잠시 아름드리 소나무, 팽나무, 덩굴이 우거진 숲을 지나 서우봉 둘레길로 연결되는데 이 길을 따라 서우봉 정상 부근을 한 바퀴 돌며 숲과 주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청년들이 정비한 서우봉 숲길은 울창한 곶자왈 정도는 아니지만 한여름엔 생명이 충만한 제주 숲의 속살을 볼 수 있다. <br>
서우봉은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오름으로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면 제주의 울창한 숲이 압도적인 곳이다. 특히 올레길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한 순간 숲속으로 풍덩 빠지는 느낌이 든다. 한여름에는 나뭇잎과 풀잎이 우거져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이 길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한낮에도 으스스할 정도로 어둡고 습도조차 매우 높아 걷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적당한 햇빛 속에서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숲을 벗어나면 함덕 해변은 물론 한라산과 멀리 서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위의 오름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이른다. 말과 염소를 키우는 방목지 상단에 위치한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일품이다.
서우봉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북촌과 그 앞바다의 무인도인 ‘다려도’, 그 너머 구좌읍의 풍력발전기까지 멀리 보인다. 서우봉에 기댄 북촌은 제주 4.3 사건 당시 주민 절반이 학살당했지만 여전히 조용하고 아름다운 해변마을이다. <br>
이곳에서 몇 걸음 더 가면 서우봉 정상이다. 지금까지 서우봉이 가로막고 있던 동쪽 해안 풍경이 펼쳐진다. 서우봉 아래 북촌과 그 너머 동쪽으로 시야가 끝없이 달려간다. 이곳에선 제주도 동쪽 바다의 새벽 일출도 감상할 수 있다.
북촌을 향해 서우봉을 내려가면 해안가엔 일제가 연합군을 향한 자살공격용 무기를 배치하기 위해 구축한 동굴 진지가 20여 곳이 남아 있다. 북촌엔 제주 4.3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 주민의 절반 가까이 학살당한 아픈 현장이 있다.
서우봉은 북쪽을 바라보며 솟아올라 서쪽의 함덕 해변을 잔잔하게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북촌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다. 새벽에 오르는 이는 일출을 감상하고 저녁에 오른 사람들은 석양을 바라보며 감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