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1 14:19:35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영주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성읍저수지
“발해(渤海) 동쪽에서 수억만리 떨어진 곳에 오신산(五神山)이 있는데, 높이는 3만리이다. 여기엔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樓閣)이 늘어서 있고,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이곳엔 하늘을 날아다니는 선인(仙人)들이 산다. 오신산은 본래 큰 거북의 등에 업혀 있었는데, 뒤에 두 산은 흘러가 버리고 삼신산 (三神山)만 남았다고 한다.”
사기(史記) 열자(列子)에 있는 삼신산에 관한 이야기다.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이 삼신산으로 우리의 귀에 익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금강산을 봉래산(蓬萊山),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렀다. 나머지 하나 영주산(瀛洲山)이 바로 한라산이다.
주차장이 넓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찾는 이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주차에 불편은 없었다. 그러나 화장실은 마련되지 않았다. 영주산 걷기는 소가 넘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시작한다. 밧줄 울타리의 계단을 따라 가면 끝에 작은 시멘트 벙커가 있다. 소 관리하다 갑자기 비라도 오면 잠시 피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인 듯하다.
그 안에는 누군가 이런 저런 그래피티 작업을 해 두었다.
소들이 여름내 풀을 뜯은 탓인지 가시가 있는 작은 나무들을 제외하고 모든 풀은 잔디를 깎은 듯 짧다. 가시엉겅퀴, 꽃향유, 이질풀, 쑥부쟁이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가을꽃이 땅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반복적으로 소가 뜯어 먹으니 꽃 피울 기회를 번번이 놓치다가 소들이 뜸할 때에 번개처럼 꽃을 피운 듯하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소똥만 아니라면 초지는 잘 다듬어진 잔디밭 같아서 발 딛는 느낌이 좋다.
낮게 누운 꽃과 풀밭을 느끼며 두 번째 언덕까지 오르면 비로소 시야가 넓어진다. 북쪽의 오름들이 멀리 보이고 동쪽으로는 풍력발전기 너머로 성산일출봉이 크게 보인다. 남쪽을 보면 수평선이 훌쩍 올라와 있다. 이곳의 나무계단은 마치 하늘에 올라서는 느낌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그리고 안내표지판에서 영주산 지명에 관한 애매한 설명을 읽는다. ‘신선이 살아 영모루라 불리다 한자로 영지(靈旨)로 표기되다가 발음이 비슷한 영주로 정착되었다’는 해설이 적혀 있다. 변천 과정에 대해 참 애매하게 적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주산을 영모루오름이라 부르고 있으니 바른 해설인지는 알 수 없다. 한자표기를 하려다 보니 조금은 억지스러운 이유를 끌어와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아래 양지바른 곳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어느 오름을 가든 비슷하다. 다니다 보니 좋은 자리 찾아 오름 높은 곳에 묘를 쓰고는 돌보지 않아 나무와 풀이 무성해져 돌담이 없었다면 무덤이라 알기 어려운 곳이 태반이다. 이곳 오름 아래 누운 분들은 그나마 소박한 삶을 살은 듯 싶다. 어렸을 적 이 오름에서 뛰어놀고 어른이 되어서는 이 오름에서 농사짓고 가축 키우다 늙어 다시 오름으로 돌아갔으리라.
차나무밭을 벗어나니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다. 그 길 끝에서 저수지를 만난다. 농어촌공사에서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6년 12월에 공사를 마친 이 성읍저수지의 저수용량은 125만㎡다. 저수지라기보다는 커다란 호수로 보인다. 그 둘레가 2.5㎞에 이르는데 이 물이 지하로 스며들거나 흘러나가지 않도록 가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듯하다.
삼신산 중의 하나라는 내용을 읽고 걷기 시작한 영주산은 걷기를 끝내고 나서도 그 모양새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정상에서 보는 사방의 경치가 장관이어서 꼭 한 번은 올라야 할 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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