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도시, 안보·힐링여행의 시작점 ‘고양’을 만추에 걷다
2019-11-25 10:18:53
행주산성·서오릉·서삼릉·벽제관·최영장군묘 등 역사유적 … 중남미문화원·원흥종마목장 눈요기
경기도 고양은 서울에 인접해 있어 당일 나들이에 딱 좋은 곳이다. 해마다 4월말~5월초면 국제고양꽃박람회가 열려 자유로가 막힌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는 애칭에 어울리게 자연, 역사, 맛, 놀이, 체험, 문화 등 몸이 즐거운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충분한 볼거리와 먹을 거리를 제공한다.
고양의 초입, 행주산성은 한강을 굽어본다
행주산성(사적 제56호)은 서울과 파주를 잇는 자유로를 따라가다 보면 신행주대교에 못미친 좌측 한강변 덕양산에 위에 자리잡고 있다.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행주산성은 문화유적과 함께 한강의 확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포인트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순찰사로 있던 권율 장군(權慄·1537~1599)년 7월 6일은 이곳에서 병사를 이끌고 왜군 수만 명을 무찔렀다. 당시 성안의 부녀자들은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싸움에 일조했다. 여기서 부엌에서 일할 때 덧두르는 앞치마란 의미의 ‘행주치마’가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다.
임진왜란 당시 북상했다가 명군에 밀려 퇴각하는 왜군이 벽제관에서 한차례 승리하고 다시 기가 살아 서울로 진입하려 했다. 권율 장군은 방어의 요충지인 행주산성을 관민의 협조 아래 왜군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권율의 지략이 제대로 통한 행주대첩은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매표소를 지나 행주산성 정문을 들어서면 권율 장군 동상이 늠름히 서 있다. 비교적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한강 물줄기가 보인다. 바로 앞에 보이는 게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방화대교이다. 날씨가 좋으면 올림픽대로, 자유로, 난지도, 여의도, 남산, 저 멀리 임진강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와 대첩비각, 행주대첩비 등을 보노라면 아직도 국운이 일본에 휘둘리는 현실에 마음을 저민다.
행주산성 진입로에는 1990년대부터 맛집이 생겼다. 장어, 닭백숙, 오리탕이 대표적이다. 주말은 물론 평일 낮에도 회사원들이, 저녁에는 단합대회·MT·골프시합을 마친 단체 손님이 몰린다. 그러나 가격도 많이 오르고 점차 음식점이 늘면서 10~20년 전의 만족했던 느낌도 흩어져가고 있다.
안보·힐링 여행의 출발점, 고양서 평화누리길 트레킹 시작
행주산성에서 출발해 행주대교, 삼성당마을, 섬말다리, 일산호수공원에 이르는 평화누리길 4코스도 걸어 볼만하다. 이를 비롯해 평화누리길의 1코스는 경기포 김포 대명항에서 문수산성 남문으로 이어진다. 2코스는 문수산성 남문에서 애기봉 입구, 3코스는 애기봉 입구에서 전류리 포구로 이어진다. 김포 문수산성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격퇴한 곳이다. 애기봉은 해병대 2사단이 주둔하는 김포 북단의 요새로 성탄절마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밝히던 자리다. 5코스는 일산호수공원에서 파주 동패 지하차도까지다.
6코스부터는 파주 구간이다. 6코스(출판도시길)는 동패 지하차도에서 성동사거리, 7코스(헤이리길)는 파주 성동사거리에서 헤이리마을을 거쳐 반구정, 8코스(반구정길)는 황희 정승이 벼슬을 내놓고 은인자중하던 유적지인 반구정(반구정)에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임진강을 건너 피란할 때 불태워져 야간의 어둠을 밝혔다는 화석정(花石亭)을 경유해 율곡습지공원에 이른다. 9코스(율곡길)는 율곡의 아버지가 태어나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권문세가인 파평윤씨가 발원한 파주 파평면의 면사무소에서 비룡대교(파주 적성면 주월리~연천 백학면 노곡리를 잇는 다리)까지이다.
10코스부터는 연천 구간이다. 10코스(고랑포길)는 장남교(연천군 장남면~파주군 적성면을 잇는 다리)에서 숭의전지까지 이어진다. 고구려가 주상절리 위에 쌓았다고 백제·신라 연합군에 뺐겼다는 호로고루성, 백학면 학곡리 고인돌, 숭의전지(연천군 마산면·고려 태조 등 7왕을 모신 사당) 등이 생태적 가치를 더한다. 11코스(임진적벽길)는 숭의전지에서 출발해 당포성-임진적벽길-임진교-무등리 보루-고성산 보루-군남홍수조절지로 이어진다. 임진적벽(한탄강 국가지질공원과 연결됨)이 압권으로 국내에서 강변의 웅장한 주상절리 적벽을 볼 수 있는 곳은 화순적벽과 여기가 거의 유일하다. 12코스는 군남홍수조절지부터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가 적혀 있는 신탄리역(현재 경원선 종점)을 거쳐 역고드름에 이르는, 일명 ‘통일이음길’이다.
경기도가 조성한 평화누리길은 파주, 고양, 연천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북단 걷기 코스로 총 189km에 이른다. 산과 강, 농촌과 도시를 두루 지나면서 안보와 힐링을 생각하게 된다. 고양시가 통일을 향한 전진기지이길 희망해본다.
신석기 벼농사 흔적과 조선 후기 서민농가의 전형
고양은 크게 신도심(일산동구 일산서구)과 구도심(덕양구)으로 나뉘어 있다. 신도시인 일산이 커지면서 동구와 서구로 갈라졌다. 일산동구 정발산 북쪽 기슭에는 밤가시초가(정발산동·경기도 민속문화재 제8호)는 조선 후기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통 농촌 주택의 구조를 원형 그대로 보여준다. 약 1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은 온돌이 있는 ‘ㄱ’자형 안채(안방 사랑방 건넌방 부억)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ㄴ’자형 문간채(변소와 창고)가 있어 전체적인 모습은 ‘ㅁ’자형이다. 집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 대들보, 중방, 문틀, 마루, 서까래 등의 재목으로 밤나무를 썼다. 근처에 율동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그만큼 밤나무가 많았다는 얘기다. 밤나무는 사실 집을 짓기에는 강도가 약하지만 흔하기에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발산역에서 수도권 3호선 지하철을 타면 원흥역 옆 가시골에 이른다. 고양시농업기술센터 내에 있는 가와지볍씨박물관이 목적지다. 가와지볍씨는 약 5020년 전 신석기 시대의 볍씨로 1991년 일산신도시를 개발하던 중 가와지마을(고양시 대화동)에서 발견됐다. 신석기 시대 때 이미 한반도에 벼농사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농경사적 증거이다. 박물관엔 가와지볍씨에 대한 자료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고양의 농경문화 변천사를 두루 전시해놓고 있다.
조선왕조 왕릉 세계문화유산 중 8개가 고양에
가와지볍씨박물관 주변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삼릉과 서오릉이 있다. 먼저 고양시 용두동 통일로 옆에 들어선 서오릉(사적 제198호)은 조선 왕후를 모신 5개(창릉, 명릉, 익릉, 홍릉, 경릉)의 능이다. 오릉 외에도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과 영조 후궁 영빈 이씨(사도세자의 생모)의 수경원이 있다.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한쪽에 자리잡았다. 서오릉 안으로 들어가니 오솔길 가에 늘어선 소나무, 참나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서오릉은 서울시 은평구와 맞닿아 있어 흔히 서울로 생각하지만 고양이다.
통일로를 따라가다 농협대학 쪽, 원당 가는 길로 2km쯤 들어가면 조선말기 왕실의 가족 묘지인 서삼릉(사적 제200호)이 나온다. 희릉, 효릉, 예릉 등 3개의 능이 서울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삼릉이라 한다.
인종의 친모 장경왕후 윤씨를 모신 능이 ‘희릉’이고, 중종의 아들 인종과 인종의 비(妃)인 인성왕후를 모신 능이 ‘효릉’, 조선 제25대 철종과 철인왕후 안동김씨를 모신 능이 ‘예릉’이다. 중종의 대를 이은 인종은 즉위 9개월 만에 승하했다. 철종은 강화도령이란 별명처럼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한많은 임금이다. 불운했던 두 임금과 그 어머니와 아내가 되는 다섯 분이 묻혀 있다.
서삼릉 옆에 들어선 원당종마목장은 사색에 빠지기에 딱 좋다. 탁 트인 초원에 북국에서 내려온 차가운 겨울 바람이 서삼릉의 잔영과 겹쳐져 인생 무상을 생각케하는 요즘이다. 초지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 말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말똥 냄새가 진동한다. 목장을 천천히 돌아보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관리사무소 좌측으로 난 오솔길은 종마장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고려공양왕릉, 최영장군묘, 성녕대군묘 등 놓치기 아까운 포인트
지나치기 아쉬운 곳 중 하나가 원당 화훼단지 부근의 공양왕릉(사적 제191호)이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이다. 쌍릉으로 왕과 왕비를 모셨다. 능 앞엔 비석 1기와 상석이 놓여있고 장명등 1기가 서 있다.
인근에 있는 생태동물원 ‘쥬라리움’도 가볼만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실내동물원이면서 야외동물원, 식물원, 체험교실, 카페테리아 등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췄다. 라마, 캥거루, 악어 등 총 95종 동물 300여 마리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최영(崔瑩, 1316~1388년) 장군 묘도 근방에 있다. 최영 장군은 수차례 홍건적, 왜적, 원나라 잔당, 내란 수괴 등을 물리치고 고려왕실을 보호한 명장으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로 유명하다. 원래 이 말은 최영이 16세 때 최영의 아버지 최원직이 죽으면서 남긴 유언이라고 한다. 평소 성품이 온건하고 강직했던 최영은 유언을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되새기면서 살았다고 한다.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실각하고 귀양길에 올랐다가 개경에서 참수당했다. 사각 양식의 무덤은 뒤편에 부친 최원직의 묘와 함께 있는데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최영 장군의 우국 절개에 한동안 무덤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그래도 제법 풀이 잘 자라 있다.
성령대군(誠寧大君, 1405~1418년) 묘는 태종의 넷째 아들, 다시 말해 세종의 바로 아랫동생인 성녕대군이 묻힌 곳이다. 성령대군은 태종이 3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본 막내아들로 용모가 출중하고 행동거지가 공손하고 우애 깊고 총명하여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4살 때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후사가 없었으나 양자를 들여 성령대군파가 이어지고 있다. 그를 모신 사당이 태종이 이름 지은 대자사(大慈祠)이고, 그의 묘가 대자산에 있으며, 모두 행정구역상 덕양구 대자동에 속한다. 신도비의 비문은 변계량(卞季良)이 짓고 글씨는 성개(成槪)가 썼다.
벽제관(碧蹄館)은 조선시대의 역관(驛館) 터다. 중국에서 오던 사절들이 쉬어가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 군사와 일본군이 격전을 벌였다. 방심한 명군이 일본군에 일격을 당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헐렸고 지금은 관사의 윤곽과 터만 남아 있다. 벽제관지에서 시작하는 고양관청길도 열려 있다. 고양의 옛 관아 자리인 고읍마을과 고양과 파주를 잇는 관청고개(관청령)를 지나는 길로, 관청고개에 서면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중남미 각국의 역사와 문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남미문화원에도 들러보자. 중남미 지역에서 30여 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던 이복형 선생이 2500여 점의 중남미 문화유산을 모아 놓은 곳이다. 박물관엔 중남미의 3대 문명인 마야, 아즈텍, 잉카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엔 중남미 12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등 예술작품을 볼 수 있다.
김초록 여행작가 rimpyung74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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