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2 01:14:12
아바나 구시가지에 위치한 옛 쿠바 국회의사당. 1929년에 완성된 건물로 미국 국회의사당의 축소판처럼 지어졌다. 당시 거대한 돔은 아바나 시내의 스카이라인을 제압했으나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관심이 쏠린 나라 중 하나가 쿠바다. 여행 에세이나 인터넷에서는 쿠바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차 있고, 이색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대체 쿠바는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쿠바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영어로 된 안내 보드를 든 호객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탁시(택시)? 탁시?” 이제 막 아바나공항에 도착한 나에게 택시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와 어딜 가느냐며 질문을 쏟아부었다.
이 가운데 영어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기사를 따라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는 공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지나 한적한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처음 택시를 본 순간 ‘이게 택시라고?’하고 당황했다. 내 앞에는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 ‘올드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로 작동은 될까. 커다란 엔진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고 의자는 경운기라도 탄 듯 쉴 새 없이 떨렸다. 오로지 택시의 불빛만 의지한 채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를 달렸다. 쿠바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날이 밝아 일찍 거리로 나섰다. 맑은 하늘의 아바나는 따듯한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는 ‘딱 여행하기 좋은’ 날씨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본떠 만든 카피톨리오(Capitolio)를 지나 아바나의 중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오비스포 거리(Calle Obispo)로 들어섰다. 좁은 거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마다 쿠바 기념품을 사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기에 ‘인기 명소인가’ 하고 다가갔더니 다름 아닌 환전소다. 쿠바의 화폐는 내국인 전용인 쿱(CUP)과 외국인 전용인 쿡(CUC)으로 나뉘는데 시세가 무려 25배나 차이난다. 모양도 크게 다르지 않아 자칫하면 25배가 되는 금액을 지불할 수도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결국 40분 정도 기다린 끝에 환전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외국인은 무조건 CUC으로만 환전할 수 있어 CUP으로 다시 환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는데, 지금은 환전소에서 한 번에 환전할 수 있다.
환전을 마치자마자 건너편 아이스크림 집으로 향했다. ‘Chocolate’(초콜릿)이라고 적혀 있는 메뉴 옆에 5라는 숫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다. CUP일까 CUC일까. 쿠바에서는 외국인들이 가는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CUC 단위로 적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길거리 간식들은 CUP으로 계산하면 된다. 5~10쿱내외(한화 약 250~500원)면 아이스크림은 물론 츄러스, 피자, 샌드위치 등 다양한 간식을 먹어볼 수 있다. 간식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천국같은 곳이다.
양손에 아이스크림과 츄러스를 든 채 오비스포 거리를 지나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에 도착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총독관저와 박물관이 둘러싸고 있고, 광장 안에는 쿠바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고(古)서적과 포스터를 판매하는 판매상들이 자리 잡고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 흰색의 강렬한 조합이 시선을 사로잡고, 낡은 고서적과 포스터들이 어딘지 ‘쿠바스러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항상 새로움과 ‘신상’을 추구하는 나에게 이같은 ‘앤티크함’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오비스포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대표적인 거리인 만큼 여행객을 붙잡는 상인들도 많은 곳이다. 거리를 다닐 때마다 곳곳에서 들리는 ‘치나’(중국인을 뜻하는 말로, 동양인을 통칭해서 부른다)와 ‘탁시’(택시를 타라는 호객 행위)는 아바나 여행을 피곤하게 만들어 오비스포 거리에 특별한 목적이 있는 않는 한 다른 골목을 이용해 이동하곤 했다.
아바나대성당이 있는 대성당광장(Plaza de la Catedral)을 지나면 요새처럼 보이는 국왕군 성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 정복 시절부터 중심 역할을 해 온 국왕군 성은 총독 관저가 세워지기 전까지 총독이 거주했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국왕군 성의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모형과 바다에 가라 앉아 있던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종탑이 설치된 2층에서는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광장뿐만 아니라 아바나만 건너편에 있는 ‘모로요새’(Castillo de San Pedro de la Roca del Morro)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안가를 달리고 있는 색색의 올드카와 아바나의 파란 하늘. 쿠바로 오기 전에 감탄했던 사진 속 모습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을 벗어나 신시가지로 이동하기 위해 오비스포 거리에 있는 여행자 센터를 찾아 아바나대학교로 가는 꼴렉티보 승강장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꼴렉티보’는 아바나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인데 모습은 택시와 같지만 버스처럼 정해진 경로로 이동한다.
가격은 1인당 10쿱으로 한 대당 3~4명의 승객이 동승한다. 여행자 센터에서 알려준 대로 카피톨리오 옆 골목길에 서서 꼴렉티보를 기다렸다. TAXI라고 크게 적혀 있는 차량 한 대가 앞에 멈춰 섰다. ‘유니버시다드 데 아바나?’ 목적지를 말하고 나서 운전자가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꼴렉티보에 탑승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함께 동승했던 사람들이 각자 목적지에서 하차하는데 탑승 장소의 위치만 명확히 알고 있다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쉽게 오갈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꼴렉티보에서 내리자 수많은 계단 위로 신전의 모습이 눈에 띈다. 아바나대 캠퍼스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1728년부터 지켜온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3개의 건물이 ‘ㄷ’자 형태를 만들고 있고, 가운데에는 잘 정돈된 정원이 마련돼 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계단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하는 학생들까지 여느 대학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바나대 앞에서 내려 뒤쪽 언덕길을 따라 내려갔다. 구시가지와는 다른 느낌의 높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대로를 따라 약 30분 정도 이동해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on)에 도착했다. 이 곳엔 멀리서도 보일 정도의 높게 솟은 혁명기념탑이 무려 109m에 달한다.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 아바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사 중인 관계로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혁명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 한다면 단연 체게바라의 조형물을 꼽을 것이다. 내무부 건물 벽에는 체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영원한 승리를 향해(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문구와 쿠바의 영웅 체게바라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아바나의 밤은 유난히 어둡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중심가임에도, 가로등의 빛은 약하게 아른거리고 밝게 빛을 내는 상점 하나 없다. 화려한 네온사인보다 은은한 촛불이 어울리는 곳. 서툴지만 정이 있고, 투박하지만 오랜 손때가 매력적인 곳. 쿠바에는 그런 낭만이 있다.
[TIP] 쿠바 바라데로에서 올인클루시브 호텔을 즐기자.
아바나에서 차로 3시간 정도 이동하면 바라데로에 도착한다. 바라데로는 쿠바의 바다와 휴양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다. 멕시코 칸쿤의 호텔존처럼 긴 반도에 60여개의 호텔이 위치해 있다.
바라데로가 유명한 것은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에서 가까이 위치해 있다는 점과 저렴한 가격으로 올인클루시브 호텔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의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하루 7만원 선이면 아름다운 바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행의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다.
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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