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3 15:09:14
과달라하라의 자유광장 모습
1주일간 머물렀던 멕시코시티에서 과달라하라로 떠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 나라에서 처음 방문해보는 버스터미널은 예상외로 크고 깔끔했다. 멕시코에는 넓은 땅만큼이나 다양한 노선과 버스 회사들이 있다. 특히 ‘ETN’과 ‘프리메라 플러스’는 좋은 서비스와 시설 덕분에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고급버스 회사로 꼽힌다.
멕시코시티에서 과달라하라까지 700페소(한화로 약 4만2000원)나 되는 교통비가 부담스럽지만 7시간 장시간 이동인만큼 체력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
버스에 탑승하기 전에는 수화물 검사가 이뤄진다. 공항에서 볼 법한 검색대를 통과한 뒤 꽤 삼엄한 경비 속에 배낭에 있는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받았다. 친절하면서도 깐깐한 모습에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생긴다. 검사 후 나눠주는 간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음료, 빵, 몇 가지 스낵 등 소박하지만 알차게 구성돼 있다.
멕시코의 버스는 듣던 대로 최신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버스 내 무선 인터넷부터 160도로 눕혀지는 의자, 개인 모니터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런 버스라면 7시간은 물론 10시간도 거뜬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버스에 설치돼 있는 모니터로 영화를 보다 잠깐 잠든 사이에 과달라하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다. 터미널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는 택시 중 한 대를 타고 곧장 숙소로 향했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시티를 기준으로 서쪽의 할리스코주에 위치해 있다. 한국인에겐 생소하지만 멕시코 제2의 도시이자 교통의 중심지로 멕시코 서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로 꼽힌다. 고풍스러운 흔적과 함께 멕시코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독립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마리아치, 타피티오댄스 등 멕시코 문화의 본고장으로 가장 ‘멕시코스러움’을 품고 있는 도시여서 꼭 들러야겠다고 계획했다.
다음날 아침 새벽엔 비가 내린 덕분에 거리는 촉촉하고 공기는 상쾌했다.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유독 음식점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른 시간에도 인기 있는 음식점들은 벌써 대기해 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에 다섯번 식사를 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이해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서 멕시코식 오믈렛과 대중 음료인 ‘오르차타’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과달라하라의 센트로(구시가지)로 향했다.
주정부청사에 들어가기 위해 갖고 온 가방을 검사받은 뒤 방명록에 이름과 동행자 수, 연락처를 기입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던 것처럼 내부도 반듯한 사각형의 성벽처럼 높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청사 내부 곳곳에는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흰 머리에 신부복을 입고 칼을 휘두르고 있는 ‘미겔 이달고 신부’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멕시코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오늘날까지도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멕시코 독립기념일인 9월 16일은 독립을 쟁치한 날이 아니라 이달고 신부가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린 날이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데고야도극장을 둘러보고 센트로과달라하라의 끝에 위치한 카바냐스문화원(Instituto Cultural Cabanas)까지 단숨에 이동했다. 이 곳은 19세기 초 고아, 노인, 장애인 등을 돌보기 위해 세워진 복합단지로 규모가 대단하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멕시코 최고의 벽화가인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e Clemente Orozco)의 작품이 예배당을 장식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싼 벽화는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인 색채로 표현돼 잠깐 서 있는데도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예배당 내부에 마련된 의자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누운 채 천장의 벽화를 감상하고 있다.
[TIP] 과달라하라의 문화의 날, 화요일을 즐기자
매주 화요일이면 카바냐스문화원을 포함해 과달라하라박물관, 데고야도극장 등 문화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데고야도극장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문화시설들이 센트로 과달라하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하루 동안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센트로과달라하라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세련된 차풀테펙(Chapultepec) 거리를 만날 수 있다. 4차선의 넓은 도로를 중심으로 카페와 레스토랑, 오픈 바(Bar) 등이 즐비해 있다.
주말에 방문한 차풀테펙 거리에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거리 중심에는 형형색색의 장식품과 조각품들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시선을 붙잡고, 곳곳에서 진행하는 마임·마술쇼 등 길거리 공연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잠시 후 거리 한 가운데를 폭스바겐의 비틀이 가득 채운다. 같은 모델이지만 자신만의 특색을 살려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차량의 모습은 예술에 가까울 정도다. 멕시코에는 ‘폭스바겐 비틀의 날’이 있는데, 멕시코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20여개의 폭스바겐 비틀 동호회가 참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단종돼 모습을 찾기 어려운 차량이지만, 멕시코에서는 2003년까지 생산됐으며 현재까지도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눈길이 가는 차량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비틀의 매력을 만끽했다.
밤이 되니 거리 가운데 위치한 분수대에서는 다양한 색의 조명으로 수놓은 분수쇼가 진행되고, 즐비한 바·카페·레스토랑들은 과달라하라의 밤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차풀테펙 거리는 화려하고 흥겨웠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 1만원도 채 안 되는 3ℓ의 넉넉한 맥주까지. 밤을 즐기기 위해 이만한 게 또 어디 있을까.
[TIP] 교육의 도시, 과달라하라에서 스페인어를 배우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바로 스페인어다. 특히 중·남미를 여행하기 위해선 초보적인 스페인어가 필수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쪽으로 이동할 계획이라면 멕시코 초입인 과달라하라에서부터 스페인어 배우기를 시작하라고 추천한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만큼이나 체계적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차풀테펙 거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페인어 학원들이 위치해 있다. 한 달에 약 2000페소(한화 약 12만원) 정도의 저렴한 금액으로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이나 스페인어 유학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과달라하라를 찾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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