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빛깔 이집트 1 … 의심병 그리고 사막여우와의 하룻밤
2015-10-26 19:27:34
이집트의 모든 곳으로 통하는 ‘혼돈의 카이로’에 익숙해져 … 바흐리야 오프로드에 환호성
찬란한 과거 유산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유혈사태와 국경지대 내전으로 이집트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매년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여정에서 이집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 대한 관심, 이집트 서부 사하라 사막 체험, 여행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세계 3대 블루홀 포인트 ‘다합’ 탐사 등을 위해서다. 낙후된 시설과 칙칙한 사막 모래가 전부가 아닌 오색빛깔 모습을 지닌 이집트로 떠났다.
#. 의심병 : 도착
공항은 시내 중심에서 20㎞ 이상 떨어져 있다. 하지만 공항까지 연결되는 지하철은 없다. 현재 지하철 3호선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그들의 성격상 언제 완공될 지는 미지수다. 별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아니면 터무니없이 비싼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방문한 2013년 6월 무렵, 이곳은 혁명 이후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공항에서 나와 터미널1에 정차중인 버스에 올라 타흐릴광장(Tahrir Square)으로 향하는지 물어봤다. 운전자는 정색하며 내리라고 손짓한다. 지난밤 알아본 바로는 분명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 중 하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버스에서 내리자 낯선 아저씨 한 명이 다가온다. 다짜고짜 나를 부근 매점으로 끌고 가 그 곳의 TV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킨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이 ‘LIVE’의 문구와 함께 내 눈에 들어온다.
순간 후진국에서만 생기는 의심병이 생긴다. ‘이것들이 TV 채널까지 가짜로 만들어서 나를 속이려고 그러나?’ 일단 예약한 숙소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이곳으로 나를 데리고 왔던 낯선 이에게 휴대폰을 빌렸다. 잠깐 통화가 끝난 후, 모든 게 사실이란 게 밝혀졌다.
실제 매주 금요일 타흐릴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그곳을 경유하는 버스와 지하철은 전면 중단된다. 별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 심각한 나의 모습을 감지한 그는 갑자기 밝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한다. 그렇다. 그는 택시기사였다. 휴대폰까지 빌려 사용한 이상 어쩔 수 없다. 최선의 네고(negotiation의 앞부분 발음을 따온 말, 협상이라는 뜻)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가야만 한다.
어렵사리 지하철 전동차에 올라탔다. 아프리카의 지하철은 어떤 모습일까 평소 궁금했다. 객차 안에는 낡은 봉이 있고 의자들이 양 옆으로 마주보고 배치돼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지하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낡은 창문과 창문 사이에 비치된 먼지 가득한 선풍기의 모습은 가히 명물이다.
몇 정거장을 이동해야 하는지 지도를 한참 보고 있는데 유독 주변에서 나를 쳐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객차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간혹 남성이 1~2명 보였지만, 무관심한 듯 눈길을 주지 않는다. ‘카이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인가 봐’ 전동차가 지하철역을 통과할수록 매번 여성들만 타고 내린다.
그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목적지인 ‘엘 마디’(El Maadi)역에 내린다. 객차에서 내리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표시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내가 탄 칸은 여성전용이었다. 실제로 카이로 지하철의 맨 앞 두 칸은 여성전용으로 우대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에서만 가능한 시스템이다. 흥미진진한 도착이다. 택시 기사와 TV 화면까지 의심하고 여성전용 칸에서 뻔뻔하게 원숭이가 될 줄이야.
#. 혼돈의 카이로 : 검정
카이로의 도로엔 차선이 필요 없다. 또한 도로의 차들은 각자 브랜드를 뽐내듯 경적소리를 연신 힘차게 울린다. 내리쬐는 태양의 온기가 더해진 모습은 마치 인도에 다시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외국인 여행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내의 모습에 과연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다. 낯선 아랍어가 눈앞에 즐비할 뿐, 영어 간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배낭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는 최악이다. 최소한 유명한 관광지 안내 표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길거리 현지인의 사정이 좋은 편도 아니다.
기대 이하의 낮은 문화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현지인들은 거의 없다. 처음 몇 번은 버스를 타기 위해 그들에게 물어봤지만, 이내 실망하고 지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심지어 게으르기까지하다. 이른 아침부터 길거리에 자리잡고 앉아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하얀 피부를 가진 동양인을 마치 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본다. 거리 곳곳에 보이는 흙색 건물들은 모두 낡아 강도 1.0의 약한 지진에도 허무하게 무너질 것만 같다. 힘든 여행지를 경험한 적이 많지만, 이곳은 손꼽히는 도시다. 혼돈 그 자체다.
상황을 파악한 여행자는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거대한 땅덩어리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곳을 무조건 경유해야 한다. 지리적 특성상 모든 대중교통은 카이로를 경유해서 다른 도시로 가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여행자들은 이곳을 몇 차례 들를 수밖에 없다.
나도 이곳이 처음에는 싫었다. 건조함에 손발이 트고, 매연과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다음 도시로의 이동을 위해 몇 차례 이곳에 더 머물다 보니 어느새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돈의 도시를 누비다보니 기대 이상으로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지고 있는 게 아닌가. 카이로는 마치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도시다. 여행하기 힘든 혼돈의 도시에서 발견한 묘한 매력이 대체 뭘까. 아마도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가는 맛이 아닐까 싶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 보물을 소개한다.
- 고고학 박물관
고고학박물관은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 잔뜩 전시된 곳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람세스 2세 동상, 파라오 미라 등 25만점이 넘는 유물과 보물이 100개가 넘는 홀에 보관돼 있다. 위치는 타흐릴광장(Tahrir square)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찾기 쉽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교차점인 사다트(Sadat)역에서 내려 고고학박물관 표시를 보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입장을 하면 ‘고대 유물이 이렇게 흔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박물관 바닥에 내 팽겨져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큰 홀을 거닐면서 천천히 고대 이집트의 유물과, 벽화, 조각상들을 바라본다. 비록 현지 가이드는 동행하지 않았지만, 작품들을 최대한 마음으로 읽어본다.
박물관 2층 양쪽엔 ‘로얄 멈’(Royal Mum)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입장료를 조금 지불하면 고대 이집트 왕들의 미라를 볼 수 있다. 람세스 3세, 6세, 7세 등 역사책에서나 들어봤을 왕과 왕비들의 미라가 유리관 안에 죽 전시돼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 상세히 볼 수 있다. 머리카락이 남아있는 모습, 돌로 만들어져 있는 인공눈, 공손히 양손을 가슴에 올려놓은 모습 등을 관찰한다. 입장료 60파운드(한화 1만2000원)를 아끼기 위해 입장하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 피라미드
카이로 기자지역에 있는 ‘대 피라미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장면 중 주인공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장면은 아주 인상 깊었다. 결국 꼭 방문해야 하는 내 인생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집트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사정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 관광 명소에 있는 현지인들의 호객행위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투어를 이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방문할 경우 벌 때처럼 달려드는 호객꾼들에게 정신이 팔려 버릴지도 모른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나는 조금 더 그들의 역사를 알고 싶어 사전에 투어를 신청했다. 이실직고 하자면 나를 오늘의 제물로 생각할 호객꾼들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투어 당일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현지인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오늘의 일정을 유창한 한국어로 설명한다. ‘눈앞에 보이는 저 거대한 형체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기원전 2560년에 세워지기까지 약 20년이 시간이 걸렸어요.’ 그의 유창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에 오늘의 투자가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옆을 거닐다 보니 나의 존재가 새삼 초라하다. 피라미드를 완공시키는데 사용된 230만개의 돌 중 하나의 크기가 압도할 만큼 크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바로 옆에는 그의 아들과 손자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있다.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파노라마 포인트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이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모두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조금 더 이동하니 스핑크스가 보인다. 사자의 몸과 왕의 얼굴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가 피라미드를 어엿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다. 투어는 이집트 최초 계단식 피라미드를 지나, 굴절 피라미드 ‘다슈르’로 향한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보니 찐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자극 할 뿐이다. 빡빡한 투어 일정의 마지막은 카이로 남부의 ‘멤피스’로 향한다. 이곳은 인류 역사 상 최초의 제국도시로 이집트 왕국의 최초 수도다. 이집트 전성기 시절의 람세스 2세도 이곳을 수도로 삼아 부흥시켰다고 하나, 현재는 초라한 신전만이 있다. 거대한 홍수로 도시가 사라지고, 후손들이 주거지 건축을 위해 석재 자료로 사용하면서 농촌으로 퇴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람세스 2세의 거상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TIP] 그 밖의 카이로의 보물로는 중세의 성벽 요새인 시타델과 순례자들이 찾는 모카탐 동굴교회, 모함메드 알리 모스크가 있다. 카이로의 전경과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높은 건물인 카이로타워도 좋다. 유적에 관심이 많지 않다면 해질녘 나일강을 거닐면서 걷거나 나일강의 크루즈 투어를 하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 사막여우와의 하룻밤 : 노랑
바흐리야(bahreya)는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350㎞ 정도 떨어져 있다. 약 5시간 이상 소요된다. 버스는 고속도로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의 차선조차 없는 사막도로를 질주한다. 쾨쾨하고 더러운 이집트 버스는 새삼 한국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막 중간에 덩그러니 있는 낡은 휴게소에 잠시 멈추더니 이내 다시 출발한다.
한참을 황토색 모래 지형을 달리던 차량의 창문 밖으로 사막의 석양이 비춰진다. 힘든 여정에 대한 보상의 선물을 주는 것 같다. 혹시 이곳을 가는 여행자라면 오른쪽 좌석에 앉기를 추천한다. 그 모습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떻게 알고 동네 호객꾼들이 달려든다. 사전에 사막 투어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그들과의 타협이 필요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파리를 제공하는 한국 숙소가 두 곳이 있다. 한국 여성이 현지인과 결혼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숙소를 운영하는 이모님들의 이름을 따서 ‘영선네’,‘경미네’ 라고 부른다. 인터넷 포털 카페를 통해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나는 ‘하마다 경미네’를 예약했다. 외국 친구와 함께 1박2일을 보내고 그곳에서 추가적으로 며칠을 더 머무는 일정을 잡았다. 와이파이조차 없는 그곳에서의 생활은 나를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푼다.
사파리를 원하는 다른 일행이 있다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차량 비용을 N분의 1로 나눌 수 있어서다. 지프 한 대당 보통 800파운드(한화 12만원)로 계산하면 된다.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이곳에 막 도착한 베트남 친구가 나의 유일한 사파리 파트너다.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옷을 최대한 편하게 입고 필요 물품만 챙긴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할 운전기사 겸 가이드는 하마다의 사촌동생이다. 이곳은 백사막과 흑사막, 크리스탈사막 등이 유명하다. 바흐리야사막 사파리는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다. 황금 빛깔의 모래가 펼쳐져 있는 사막이 아니기 때문에 낙타를 타지 않는다.
지프가 힘차게 달린다. 한참을 달리던 지프는 검은색의 돌로 덮여 있는 흑사막을 오른다. 오프로드(Off-Road)! 이것은 사막 사파리 최대 장점이다. 너무 신나서 환호성이 절로 난다. 그렇게 지프는 한참을 멋진 곳을 가로 지르며 달려 이번에는 백사막 지역에 도착한다. 신기한 모양의 백색 돌로 구성되어 있는 일대를 신나게 달린다. 처음 보는 풍경들에 감탄사만 나온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백사막의 어느 지점에 지프가 멈춘다. 캠핑 준비를 한다.
적막하지만 외롭지 않은 그곳에서 사막여우와 함께 먹는 바비큐의 맛은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눈앞에 가득 채워져 있는 무수한 별들은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사막 사파리는 다음날 샌드보딩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숙소로 다시 돌아온 이후 마을 근방에 있는 유황온천에 가서 몸을 담그면서 피로를 푼다.
사막지역이라 물이 부족하다보니 자연온천에서 목욕하는 현지인이 쉽게 눈에 띈다. 사막 사파리는 보통 1박2일 일정이다, 길게는 14박15일 이상의 일정도 있다.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긴 일정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 또는 지프를 직접 빌려 사막 이곳저곳을 누벼보는 꿈을 가져본다.

장기백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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