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기타규슈(北九州) … 바다건너 한스런 시모노세키가 보이는 日 근대화 산업전진 기지
2019-08-08 19:37:11
고쿠라성정원, 에도막부 몰락의 역사터 … 옛 모지코세관, 옛 미쓰이구락부서 수탈과 전쟁 냄새

후쿠오카 셋째날 여행지는 기타규슈시(北九州市)다. 후쿠오카현의 최북단 항구로 후쿠오카시 하카타역에서 기차로 시모노세키 또는 모지코로 가는 노선을 타면 된다. 요시즈카, 카시이, 후쿠마, 오리오, 쿠로사키, 고쿠라, 모지코 순으로 동쪽을 향한다. 고쿠라, 모지코가 기타규슈에 속한다.
모지코역에서 간몬철도터널(해저구간 800m)을 지나면 기차로 약 8분만에 야마구치현(山口縣) 시모노세키역(下關驛)에 이른다. 이를 통해 규슈와 혼슈가 철도로 이어진다. 산요신칸센(山陽新幹線)을 타면 하카타역에서 출발해 고쿠라(신간몬해저터널 통과), 시모노세키, 신야마구치, 히로시마공항, 오카야마공항, 히메지, 신고베 등을 거쳐 신오사카항에 이르게 된다.
하카타역에서 1시간 남짓 달려 고쿠라역에서 내렸다. 기타규슈시는 성을 갖추고 교통의 요충지였던 고쿠라시(小倉市), 간몬쿄(關門橋)를 통해 시모노세키와 마주 보는 모지시(門司市), 공업도시인 도바타시(戶畑市)와 야하타시(八幡市), 석탄 수출로 번영했던 항만도시인 와카마쓰시(若松市) 등 5개시가 1963년 통합돼 출범했다.
고쿠라역에서 고쿠라성으로 가는 길에는 남북으로 무라사키(紫川)강이 흐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공업지대에서 흘러나온 폐수로 본래의 보랏빛강이란 이름이 ‘검은 강’으로 불릴 정도로 오염됐다. 그러다 1980년대에 본격적인 정화 작업에 들어가 지금은 초록 물빛이 됐다. 무라사키강엔 북에서 남쪽 순으로 무라사키대교(바다의 다리), 무로마치대교(불의 다리), 도키와다리(나무의 다리), 가스야마다리(돌의 다리, 勝山橋), 오카이다리(물새의 다리), 니카노다리(태양의 다리) 등 10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차도만큼 넓은 가스야마다리의 인도는 이벤트를 여는 무대가 되기도, 노상카페로 변신하기도 한다.

물새의 다리를 건너 고쿠라성정원(기타규슈 시립정원)에 먼저 들렀다. 고쿠라번(藩)은 일본 에도 막부 시대에 호소가와(細川) 가문(1602~1633)과 오가사와라(小笠原) 가문(1632~1677)이 통치했다. 고쿠라성정원은 1632년 오가사와라 다다자네(小笠原忠眞)가 번주로 부임하면서 고쿠라성을 축조할 때 함께 지었던 호소가와 가문의 중신 마쓰이 오키나가의 저택을 인수, 별장으로 활용한 데서 시작했다.
1798년 오가사와라 가문 5대 번주인 오가사와라 다다미스(小笠原忠苗)가 신지케(心字池) 연못을 도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을 조성했다. 지천회유식이란 흘러가는 물이 고이는 연못의 수면이 주변보다 낮아서 연못의 둘레길(園路)을 돌며 대화하고 교유하는 정원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 중 하나다. 목조건물은 1866년 조슈전쟁 때 모두 소실됐다가 나중에 재건된 것이다.
조슈전쟁(長州戰爭)은 조슈번(長州藩)이 천왕을 중심으로 외세를 배척하자는(나중에 서양의 실력을 보고 외세 수용으로 전환)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우며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려 하자 에도막부의 보수세력이 이를 억누려다 갈등을 빚으며 촉발된 내전이다. 조슈(長州)는 지금의 야마구치현으로 전쟁 당시에는 하기(萩市)가 중심지였다. 중국식 별명으로 나가토(長門, 야마구치현의 서북부)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전쟁은 1864년과 1866년에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이 일어났다. 1866년 8월 29일 오사카성에 머무르고 있던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후계자 없이 죽자 쇼군 지위의 계승 문제로 막부내 균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1866년 9월 5일 규슈 북부 아카사카(赤坂), 도리고에(鳥越)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막부군은 조슈번에 패했고, 9월 9일에는 고쿠라성까지 함락됐다. 이 때 고쿠라성정원도 불 타 없어졌다. 그러자 9월 28일 조정은 전투 중지 칙령을 내렸고, 10월 10일 막부와 조슈번은 정전에 합의했다. 이로써 막부와 조슈번 사이의 전투는 중단됐다. 조슈번에 영지를 빼앗긴 고쿠라번만 1867년 1월까지 단독으로 전투를 계속했다. 조슈전쟁은 에도막부과 와해되는 결정타였고, 1867년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왕정복고가 이뤄져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으로 싹을 틔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궤도에 올라타는 계기가 됐다.
야마구치현은 정한론(征韓論)의 전진기지이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제 56~57대 일본 총리의 고향이다. 야마구치는 일본의 근대화, 산업화를 가져온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본고장으로 한국에겐 악연이다. 아베 신조가 외가의 전쟁추구적 보수주의를 따르지 않고 친가(발해 또는 조선시대 도래인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음)의 평화주의적 성향을 닮았다면 요즘 일어나는 한일 갈등은 상당폭 완화됐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고쿠라성정원에 들어가니 쇼인즈쿠리(書院造) 목조 양식의 서원동으로 연결된다. 넓은 툇마루가 연못으로 튀어나와 눈 아래 펼쳐지는 정원을 조망할 수 있다. 정원을 회유하노라니 마음이 호젓해지고 시름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고쿠라정원을 나와 고쿠라성, 마쓰모토세이초기념관, 야사카(八坂)호국신사로 걸어나왔다. 고쿠라성은 에도시대 고쿠라번의 번청으로 사용됐다. 호소가와 가문이 지금 모습의 성곽 원형을 만들었다. 현재 향토자료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작년 가을엔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1998년에 만들어진 마쓰모토세이초기념관은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 1909~1992)의 문학기념관이다. 그는 현대소설, 근대 역사소설, 추리소설 등에 두루 능통했다. 영화감독 노무라 요시타로(野村芳太郞)와 공동 작업으로 자신의 소설 8개를 영화화했는데 그 중 ‘모래그릇’은 일본 영화사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야사카신사는 일본을 지키기 위해 순국한(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적대적인) 인물을 모셔놓은 호국신사다. 고쿠라성 둘레에 해자(垓字)가 파여 있는데 일부는 흙으로 메워져 있다. 야사카신사가 아주 옛날에는 고쿠라성의 일부였을 것처럼 해자가 신사를 감싸고 있다. 지금은 다리로 고쿠라성, 신사, 거리가 연결돼 있다. 신사를 나와 기타규슈 시청 전망대에 올라갔다. 시청 15층에서 내려 계단으로 한 층 더 걸어올라가면 전망대다. 아까 보았던 성, 정원, 기념관, 신사는 물론 고쿠라 시가지 곳곳이 한눈에 들어온다.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도시락을 먹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적당하게 찾아왔다.
시청을 나와 니카노다리를 건너 단가(旦過)시장에 들어갔다. 재래시장으로서 스시, 빵, 라멘, 우동, 덴푸라 등을 가볍게 먹을 수 있다. 대학당이란 반찬가게 겸 식당이 유명한데 다른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와 여기서 먹어도 된다. 시로야라는 빵집은 달콤한 연유의 샤니빵, 깨가 든 버터빵이 알려져 있는데 기자의 구미엔 맞지 않았다.

고쿠라역에서 다음 행선지인 모지코(門司港)역으로 향했다. 한 정거장이라 금방이다. 역에 내리면 바로 우측 편에 규슈철도기념관이다. 과거에 역으로 이용됐고 실제 운행하던 기차를 볼 수 있으며 당시의 먹거리를 판다. 역 정면으로 걸어나가면 옛 미쓰이구락부(三井俱樂部)가 보인다. 일본 미쓰이기업이 직원의 숙소 겸 호텔로 이용하던 곳이다. 구락부는 클럽(club)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다. 수변을 따라 건너면 모지코 레트로(retro)를 볼 수 있다. 옛 오사카상선, 옛 모지세관 등 근대 산업화시기의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에 출정하면서 말에 물을 먹였다는 우물터도 보인다. 수탈과 전쟁의 냄새가 맡아진다. 옛 부산의 영도다리처럼 교량이 들어올려지는 ‘블루윙 모지’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일본이 오늘날 이만큼 잘 살게 된 과거의 노력을 되돌아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모지코 맥주공방엔 수제맥주인 바이첸, 레귤러 2종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조금 비싸지만 맛은 일품이다. 역사가 오래된 맥주집은 아닌데 여러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고 한다.

당초 계획엔 간몬교를 건너 시모노세키를 보려고 했는데 날씨도 비가 올듯 어둡고 낮술도 취하고 점심을 오래 먹었더니 나태해졌다. 끝내 시모노세키는 가지 못했다. 시모노세키는 시모노세키조약(日淸講和條約·1895년)이 체결돼 청나라가 사실상 조선의 관할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비극의 도시다. 지금은 시모노세키가 야마구치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됐다. 간몬교를 넘어 서쪽 해변을 따라 걸으면 조선통신사 상륙지가 나온다. 총 12번의 통신사 방문 중 마지막을 제외하고 11번에 걸쳐 여기서 기착했다 한다. 인근에 신사이면서 조선통신사 숙소로 쓰였던 야마카진구(赤間神宮)가 있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다. 또 근처의 가라토이치바(唐戶市場)는 금·토·일요일에 열리는 ‘스시배틀’이 유명할 정도로 싱싱하고 저렴한 횟감을 자랑한다. 자리가 늘 없어 개장 2시간 이내에 찾아가야 한다.

시모노세키를 어영부영 놓치고 후쿠오카시로 돌아온 뒤 아쉬움에 후쿠오카타워를 보기로 했다. 하카타역에선 제법 거리가 멀고 버스요금도 적잖게 나간다. 도심에서 해변도로를 거쳐 40분은 가야 한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후쿠오카타워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234m의 높이, 8000장의 반투명 거울로 1989년 아시아·태평양박람회에 맞춰 건설됐다. 방송국 송신장비가 탑재돼 실제 전망실(3층) 높이는 123m이다. 요금은 성인 880엔으로 센 편인데 비가 와서 조망이 나빠 올라가진 않았다.
타워 앞바다 모모치 해변공원엔 럭셔리한 이탈리아 음식점 ‘마마미아’가 있다. 그 앞편에 요트 유람선이 정박하는 마리나존이 따로 있다. 나무테크로 연결된 모모치 해변길(白道浜)을 따라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 걸었다. 거의 끝에 힐튼후쿠오카시호크호텔이 나온다. 그 옆엔 일본 소프트뱅크 프로야구팀의 홈구장인 후쿠오카돔이 나온다. 일본 최초의 개폐식 돔 구장으로 1993년에 지어졌다. 1980년대 말 일본 거품경제의 절정기에 일본의 유통 대기업 다이에가 자비로만 당시 금액으로 무려 8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세웠다. 당초 호텔을 야구장 안에 짓고 객실 창문을 야구장 쪽으로 내는 건설계획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지금의 힐튼호텔이 세워지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위용이 당당하다.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돌아와 허기가 지자 맛은 둘째고 양이 일단 많아 보이는 대중적인 일본 라멘집에 갔다. 열심히 다닌 여행 일정이었지만 시모노세키를 건너가지 않은 게 석연치 않은 채 잠들었다.
정종호 기자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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