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3 15:01:28
바닷물 빛깔이 가을하늘처럼 파란 샤코탄 블루
지난 8월말 홋카이도 여행 3일차는 삿포로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져 우리 동해에 가까운 오타루(小樽)-요이치(余市)-샤코탄(積丹) 코스였다.
삿포로에서 약 35㎞를 30분간 차로 달리면 오타루에 이른다. 운하, 유리공예 공방, 오르골당, 초밥거리, 어묵공장 등으로 유명한 인구 28만명 안팎의 소도시이다.
오타루 운하는 시가지를 관통해 근해로 1㎞ 가량 이어진다. 9년간의 공사로 1923년에 완성되었고 운하 옆에는 창고가 즐비하게 늘어섰으나 지금은 이를 개조한 레스토랑, 바, 상점 등이 늘어서 있다. 폭이 40m에 불과하지만 계절을 가리지 않는 운치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밤에는 60개의 가스가로등이 애잔한 그리움을 키운다. 가이드는 샤코탄을 향하는 이른 아침에 오타루 운하를 경유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밤 시간에도 야경을 보여준다며 운하를 들렀다. 저마다 마음 속으로 그리움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면 노스탤지어가 절로 우러나올 만한 풍경이다.
인근엔 오타루 항구다. 1872년에 건설돼 홋카이도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가 1970년대 들어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 쇠퇴기를 맞았다. 이 때문에 오타루는 산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했고, 연간 7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항구엔 오르내리는 화물은 보이지 않고 인파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갈매기만 끼룩끼룩대며 자유를 만끽한다.
오타루 시장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어묵판매점이다. 가마에이 어묵공장에서 맛뵈기로 먹은 오뎅은 우리나라의 최고급 어묵과 다른 부드러운 속살이 느껴진다. 어육의 깊은 풍미가 뇌에 전달된다. 혹여 상할까 겨우 두 팩을 사 갖고 온 게 지금도 아쉽다.
유리공방은 1891년께 세워져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상당수 공방이 유리공예품을 전시하면서 카페나 레스토랑을 겸업해 수지를 맞추고 있다.
오르골(orgel)은 인형이 회전하며 음계판을 울며 스스로 연주하게 하는 일종의 음악상자다. 오타루 오르골당 본관은 1800년대 중반 오르골의 본산인 네덜란드로부터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지금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오르골을 만들고 있다. 본관은 100년된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그 안에 들어서면 어두운 조명 아래 오르골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반짝이며 멜로디로 공간을 메운다.
이 곳의 초밥거리는 싱싱하고 푸짐하며 비교적 가성비가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세스시, 마사스시는 미슐랭 별점을 받았을 정도로 유명한 초밥집이다. 하지만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가성비 높은 스시집은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거의 공짜라 할 수 있는 호텔 조식의 초밥에 크게 만족하는 까닭에 점심은 어묵·과자·아이스크림 등으로 때웠다.
오타루 시장엔 르타오(Le TAO), 롯카테이(六花亭), 기타카로(北菓樓) 등 3대 과자 메이커가 대형 매장을 유지하고 있다. 과자 맛에 정통하지 않지만 롯카데이가 가장 일본적이고, 르타오는 서구적 입맛이고, 북과루는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북과루 과자가 가장 구미에 맞았다. 주는 샘플을 두루 받아 먹다보면 과자 감평의 달인이 될 듯도 하다.
오타루를 돌아 오후 2시에 도착한 곳이 요이치 위스키 공장이다. 오타루에서 20분 정도 서쪽으로 차를 달리면 홋카이도는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니카(Nikka, 日果에서 유래된 이름) 위스키’를 증류하는 생산시설 겸 박물관이 나온다. 1930년대 스코틀랜드로 유학 간 다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가 현지서 만난 아내 리타의 장인으로부터 양조기술을 배워 1934년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가장 비슷한 요이치에 위스키 증류공장을 지웠다. 요이치 증류소의 빨간 지붕을 한 킬른 건조기(Kiln drier) 등 건물 9채가 일본 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다케츠루와 리타의 러브스토리는 유명하며 2015년 일본에서 방영된 아침드라마 ‘맛상<マツサン>’은 다케츠루의 일대기를그려 니카 위스키의 브랜드파워를 급상승시켰다. 그래서 재작년까지만 해도 저가에 팔리던 니카 위스키가 지금은 가격도 많이 올랐고 그나마 구하기도 힘들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니카위스키는 산토리, 도쿄양조에 이어 일본에서 세번째로 세워진 양주 브랜드이며 현재 일본 내 2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산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의 특성을 가지지만 몰트 위스키의 풍미에 중점을 둔다. 정통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피트탄(Peat, 土炭) 증류에서 우러나오는 숯향기가 매우 억제돼 있으며, 온화한 성격을 가진다. 발효, 숙성에 따른 방향(芳香)이 우수해 총체적으로는 풍미가 섬세하고 입맛도 순하다. 대체적으로 일본산 위스키는 증류의 숯향을 강조하는 스카치 위스키와 발효의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아이리시 위스키의 중간에 위치한다. 필자가 마셔본 니카 위스키도 과일향이 풍부하고 감칠맛과 함께 양주의 깊은 맛이 나는 게 특이하고도 일품이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5개 남짓의 자국산 양주 브랜드가 살아 남아 양주를 직접 생산한다니 놀라울 일이다. 국내 양주회사는 전부 자체 생산을 포기하고 외국서 원액을 들여와 잡스럽게 섞어 그저 ‘브랜드’ 장사나 하고 있으니 비교조차가 안 된다. 양주가 비록 서구의 술이긴 하나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장인정신으로 그에 버금가면서도 독특한 향미를 추구하는 일본인의 고집이 놀랍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용량 대비 가격이 비싼 니카위스키를 사는 대신 출국길 공항면세점에서 할인행사로 판매하는 ‘듀어스(Dewar’s)’ 15년산 위스키 한 병을 구입했다. 회식할 때 한 잔씩 돌리니 순하고 향도 적당해 다들 어찌나 좋아하는지 … 결국 서양이 원산인 것은 서양인이 가장 잘 만들 수밖에 없다고 동의하면서도 일본인의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고집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 더 서쪽으로 차를 달려 샤코탄 해변으로 갔다. 먼저 들른 곳은 시마무이(島武意)해안이다. 수십 m 작은 동굴을 지나니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물빛이 어우러진 해안이 나왔다. 수평적 시야는 좁지만 안온함이 느껴지는 포인트다. 조금 더 서쪽으로 달리니 샤코탄 반도의 끝이자 샤코탄 여기의 최고 절경이라는 가무이미사키(神威岬)다. 홋카이도에 본래 살았던 아이누족의 언어로 가무이는 신(神), 미사키는 곶(岬)을 말한다. 가무이미사키의 망부석은 우리나라의 전설과 마찬가지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한을 안고 바다 위에 홀로 서 있다. 광대한 바다가 더 넓어보이도록 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걸어갔다.
시마무이해안과 가무이미사키를 아우르는 42㎞의 해안은 니세코샤코탄오타루해안국정공원(ニセコ積丹小樽海岸國定公園)으로 지정돼 있다. 홋카이도의 유일한 해중공원(海中公園)으로 해안을 따라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다. 해안과 가까운 도로를 달릴 때면 파도가 차를 덥치지 않을까 싶은 느낌도 든다. 샤코탄의 바다는 얼핏 하늘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파래 일본인들은 이 빛깔을 ‘샤코탄 블루’라고 부른다.
이어서 미사키노유(岬の溫)에 들렀다. 야외 해수온천에서 시코탄 곶의 바다 일몰을 보면서 하루 여행의 피로를 씻는 게 루틴이라고 가이드는 일러줬다. 매일 보는 저녁 노을이지만 우리 동해로 떨어지는 일몰이라 왠지 이국의 외로움이 더해지는 듯하다. 촌스럽게도 가이드는 목욕 후 유리병에 들어있는 현지의 생우유를 마셔보라고 했다. 목욕하고 나면 체내 수분은 빠지기 마련, 과연 초등학교 시절 먹던 우유처럼 고소하고 잠시나마 허기를 잊게 했다.
여러 여행서와 가이드의 말을 종합해 홋카이도의 팔미(八味)를 들라면 징기스칸(양고기), 카레(전골요리 같은 느낌), 아이스크림(라벤더, 멜론), 위스키(니카), 라멘(미소라멘, 시오라멘, 쇼우유라멘 등), 스시(여름 성게, 가을 연어, 겨울 대구), 과자(르타오, 육화정, 북과루 등), 오뎅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번 여행에서도 시간과 경비 문제로 식도락은 충분하지 못했다. 다만 홋카이도에선 어딜 선택해도 크게 아쉽지는 않을 만큼 먹을거리가 많았고 그림책의 전원처럼 낭만이 묻어나왔다. 풍성함과 아늑함으로 홋카이도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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