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03 11:45:42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평소처럼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택시를 타고 가던 중 문득 결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여유’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벽 1시가 넘었는데도 여의도 건물 대부분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렇게 바쁘게, 열심히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매일 야근하며 바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다만 앞만 보고 달려온 스스로에게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첫 여행지는 캐나다 밴쿠버로 결정했다. 이번 밴쿠버 방문이 처음은 아니다. 4년 전 어학연수를 핑계로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건너갔었다. 그때의 여유로운 생활이 그리워 또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약 10시간을 비행한 후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지칠 법도 한데, 밴쿠버의 모습이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듯이 반갑고 신기하다.
#. 잉글리시베이에서 밴쿠버의 일상을 만나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잉글리시베이로 향했다. 다운타운에서 데이비스트리트(Davie St)를 따라 잉글리시베이까지 걸었다. 옛 감상에 젖어 천천히 걸었는데도 금방 도착한 기분이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햇살이 비추는 잉글리시 베이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다.
오후 5시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잉글리시베이에서 시간을 보낸다. 해변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해안가를 따라 조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애완견들은 바다를 보고 신난 듯 이리저리 뛰어 논다. 아직은 차가운 바닷물이지만 거침없이 들어가는 젊은 친구들도 간혹 보인다.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커플을 보고 있으면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즐겁게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오랜만에 찾은 잉글리시 베이의 잔디밭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느껴보았다. 제법 강렬한 햇살이지만 밴쿠버 특유의 서늘한 바람 덕분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감돈다. 잔잔한 바다 냄새가 코를 스쳐가고, 바다와 갈매기가 연주하는 이중주에 스르륵 눈이 감긴다.
[TIP] 잉글리시베이의 랜드마크는 데이비스트리트와 덴만스트리트(Denman St)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모튼파크(Morton Park)의 동상들이다. 익살스런 표정과 동작은 따라하는 이들로 웃음을 자아낸다.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따라하며 기념촬영을 즐겨보자. 어느새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할 것이다. 또 매년 7월 말~8월 초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불꽃 축제가 열린다. 해안가나 잔디밭에 앉아 밤하늘에 수놓은 불꽃들을 보고 있으면, 벅차오르는 감동이 느껴진다. 여름에 밴쿠버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정확한 날짜를 알아보고 꼭 참여하자.
#. 도심 속에서 만나는 쉼터, ‘스탠리파크’
다운타운 팬더스트리트(Pender St)에서 19번 버스를 타고 스탠리파크로 향한다. 밴쿠버에서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면 모든 이가 운전기사를 향해 땡큐라고 크게 외친다. 다소 올드하게 보이는 버스에서 이유 모를 정겨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인 듯하다. 필자도 스탠리파크 정류장에 내리면서 한번 크게 외쳐보지만 왠지 모를 쑥스러움이 느껴진다.
스탠리파크는 다운타운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도심에 위치한 공원이라 정장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러닝복 차림으로 달리거나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관광객들은 마차나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공원을 둘러보기도 했다.
본래 스탠리파크는 인디언 원주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그 때문에 곳곳에 인디언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원주민 부족의 전설을 조각한 토템 폴(Totem Pole)은 잘 보전돼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원 안내소에서 지도를 챙겨 산책로를 걸었다. 사람 키의 2~3배나 되는 나무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산책로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서 있다. 공원이라기보다는 울창한 숲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의도치 않은 삼림욕에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조금 걷다보면 공원 외곽에 해안가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보인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다. 앞에 보이는 물이 강이 아니라 태평양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늘과 바다, 공원이 만드는 절경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잠깐 벤치에 앉아 감상하니 해가 기울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약 2시간은 걸었는데, 공원의 3분의 1 정도 밖에 둘러보지 못했다. 관광객들이 셔틀버스를 타는 이유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스탠리파크를 다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쉬워 다음에는 공원 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려 제대로 둘러보겠노라 다짐한다. 오후 8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밝은 하늘을 바라보며 스탠리파크를 나왔다.
[TIP] 스탠리파크에서 자전거 타기
스탠리파크 입구에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빌려주는 대여점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둘러보는 데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구간별로 다양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자전거 대여 가격은 시간당 약 10 캐나다 달러(한화 9000원 상당)이며, 신용카드나 신분증(여권) 등을 맡겨야 대여가 가능하다.
다시 방문한 밴쿠버는 기대한 그대로였다.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했다. 잠시 동안 머물면서 가진 여유와 휴식은 지친 몸과 마음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여행을 시작하며 ‘나’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시간과 일상에서 느끼는 소중함과 감사함을 만끽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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