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송 이어진 해안, 꽃지 낙조, 새우 먹방까지 서해안 힐링
2015-02-01 18:08:54
할미·할아비 바위 배경으로 로맨틱한 낙조 … 10월 제철 통통담백 ‘대하’까지 힐링 코스
지난 가을, 유난히 새우가 당겼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대하축제’에 다녀왔다는 포스팅을 보고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통통하게 오른 살에 담백하고 고소한 새우,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결국 참을 수 없어 남자친구와 함께 ‘새우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도 대하를 먹을 순 있지만, 아무래도 현지에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은 느낌에 꽂혔다.
행선지는 두말할 것 없이 대하축제가 열리는 태안 쪽으로 잡았다. ‘태평해 안락하다’는 뜻을 지닌 태안(泰安)은 이름만큼 대표 힐링 여행지로 꼽힌다. 태안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불리는 안면도는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이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저녁식사로 왕새우 먹기’였다. 점심께 만나 모스버거로 간단히 아점을 때우고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태안행 버스표를 끊었다. 평소엔 2시간 넘게 걸린다는데 웬걸, 1시간 반 만에 태안터미널에 도착했다. 평일에 휴가를 내고 떠난 여행이라 다행히 막히지 않았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해안길을 따라 꽃지 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해변길이 아름답다. 밧개, 꽃지, 샛별, 두에기 등 이름도 줄지은 해수욕장들의 이름도 예쁘다. 해수욕장끼리 이어져 이 길을 따라 걸으면 트레킹 코스가 된다.
40분 만에 시내버스의 종점, 꽃지해수욕장에 도착했다. 10월 중순이었지만 의외로 날이 더워 점퍼를 벗고 다녀도 될 정도였다. 마음이 탁 트이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의 가을풍경, 짭쪼름한 바닷내에 찌뿌둥했던 몸이 개운해진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대하 축제 끝물에 가서인지 의외로 적은 인파에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소개하는 팜플렛이 눈에 띈다. 이 곳의 낙조는 여행 사진작가들이 꼭 한 번 봐야 할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애틋한 부부 사랑을 연상케 하는 할미·할아비 바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낙조는 미국 CNN에서 선정한 ‘한국 방문시 꼭 가봐야 할 장소’ 중 2위를 차지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할미바위 전설은 애틋한 부부애를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신라42대 흥덕왕 4년(838년), 해상왕 장보고가 지금의 전남 완도인 청해진을 기점으로 북으로는 장산곶, 중앙부로는 견승포(지금의 안면도 방포)를 기지를 삼았다. 당시 견승포에 주둔했던 기지의 사령관인 승언 부부는 금슬이 아주 좋기로 유명했다. 출정 명령을 받고 떠난 승언이 끝내 돌아오지 못하자 그의 아내 ‘미도’는 일편단심으로 승언을 기다리다 죽어서 할미바위가 되었다 한다.
무엇보다도 산책길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하얀 모래를 밟아 바삭바삭한 느낌이 좋은 사람은 바닷길을,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위쪽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 바닷내음에 반짝반짝 파도치는 경관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밤에는 폭죽을 가져다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꽃지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면도 자연휴양림과 수목원이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특히 안면도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길고 곧은 소나무는 안면송이라 불리며, 예로부터 궁궐을 짓는 목재로 특별 관리될 정도로 품종이 우수하다. 자연휴양림 근처와 77번 국도를 따라 쭉 이어지는 소나무숲길에서의 드라이브를 마치고 꽃지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데이트 코스로도 적격이다.
먹거리도 아주 훌륭하다. 신진도항, 채석포, 백사장항, 모항 등 태안반도의 각 항과 포구에서는 대하뿐만 아니라 꽃게, 오징어, 전어 등 싱싱한 제철 해산물이 많이 잡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0월엔 특히 대하, 전어, 꽃게가 제일 싸고 맛있다. 가을이면 서해 곳곳에서 저마다 자기 동네가 제일 맛있으니 놀러 오라고 손짓인데, 우리는 백사장항을 선택했다. 그냥 숙소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태안해안공원에서 실컷 산책한 뒤 택시를 타고 백사장항으로 향했다. 여러 횟집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곳을 찾아갔다. 1970년대 다방 DJ를 연상케하는 주인 아저씨의 참신한 ‘호객 멘트’에 홀리듯 들어갔다. 앞에선 대하튀김의 노릇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오후 6시 남짓한 시각이라 맥주 생각이 절로 났다. 튀김부터 먹고 싶다는 나의 말에 남자친구는 ‘진짜는 구이부터’라며 자제시켰다.
아점 이후 거의 먹지 않은 탓에 허기진 우리는 식당 야외석에 자리잡고, 대하 1㎏을 4만원에 구입했다. 엄청 묵직해보여서 기대되기 시작했다. 식당 이모는 호일로 덮은 냄비에 굵은 소금을 잔잔하게 깔고, 새우들을 투척했다. 새우굽는 냄새가 폴폴 나자 우리는 참을 수 없어 결국 해물라면 2인분을 시켰다. 바지락, 새우, 오징어, 게, 미더덕 등 바다향기를 가득 담은 칼칼한 라면은 정말 끝내줬다. 퍼지지 않고 꼬들꼬들한 면발을 후루룩 먹는 소리 자체가 맛있게 느껴진다. 약간 쌀쌀하다 싶은 날씨에 밖에서 소주와 해물라면을 한입 먹는데 그 맛이란!
시간이 좀 지나고 대하가 빨갛게 익어 ‘이제 먹어도 좋다’는 이모의 허락에 폭풍 흡입을 시작했다. 에피타이저로 짭짤한 라면을 먹어서인지 본격 ‘먹방’에 나가도 될 성 싶다. 통통한 새우에 꽉 찬 육즙이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담백하면서도 단맛이 배어나오는 새우를 간장소스나 초장에 찍어 한입 먹으면 새우까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진다.
새우는 흔히 몸통만 먹고 대가리는 따로 바싹 구워 먹는 사람이 적잖다. 이모님의 노하우, 씹어 먹기엔 딱딱한 대가리 껍질을 까기 어렵다면 이마 부분에 삐죽하게 나온 부분을 잡고 벗기면 수월하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1㎏ 새우의 껍질이 점점 수북하게 쌓여 나중엔 너무 배가 불러 대하튀김은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배가 한가득 불러 다시 택시를 타고 꽃지 해수욕장의 숙소로 향했다. 7시 조금 넘은 시간, 서울에서는 아직도 일에 치여있을 시간인데 이곳은 너무나 고즈넉하고 운치있다. 밤길이 이렇게 깜깜하구나, 싶을 정도다. 조용한 가운데 파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몇몇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우리도 폭죽을 몇 개 사서 바닷가에서 낭만적인 시간을 보냈다. 여유가 없는 직장인들에게 ‘힐링 코스’로 딱이다. 특히 축제가 한창일 때보다 한풀 꺾인 후 여유있는 안면도를 즐길 것을 추천한다. 사람에 치이다보면 운치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풍광이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이 넘치고, 돌아오는 길이 아쉬운 여운을 남긴다면 힐링이다. 태안은 이들 3요소를 갖춘 곳으로 내년 가을에 다시 찾고 싶다.
정희원 기자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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