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와 죽림의 ‘담양’ … 천천히 느리게 ‘슬로시티’의 본향
2019-10-24 14:09:10
정극인·송순·정철을 잇는 가사문학의 발원지 … 관방제림·죽녹원·메타세콰이어길·삼지내마을서 깊은 휴식
요즘 집을 나서면 갈색 물결이 자욱하다. 가을이 절정으로 치닫는 10월 하순, 죽향(竹香)의 고장인 전남 담양으로 간다. 일찍이 가사문학을 꽃피운 문화의 향기와 선비의 지조가 후세에 전해진다. 담양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면앙정, 송강정, 명옥헌, 소쇄원, 환벽당, 취가정, 식영정 같은 정자들은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시문을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하나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품고 있다. 담양 여행은 빠른 걸음보다 천천히 느리게 둘러보는 게 좋다. 담양이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된 이유다.
여유, 멋, 운치에 반하다
담양 여행은 소쇄원(瀟灑園 명승 제40호)에서 시작한다. 담양군 가사문학면(옛 남면) 지곡리 지실마을 언덕배기에 아담하게 들어선, 마당이 딸린 집과 정자는 멋의 결정체이다. 입구부터 훤칠하게 솟은 대나무들이 길동무가 돼 주는데 이따금 바람이라도 불면 댓잎 스치는 소리가 청량하게 다가온다.
소쇄원을 창건한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스승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로 귀양을 가게 되자 충격을 받고 처가에서 가까운 이곳에 집이 딸린 정원을 짓고 55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의 ‘소쇄’는 원림(園林)을 가꾼 양산보의 호 소쇄옹(瀟灑翁)에서 따왔다.
입구의 대숲을 지나 흙돌담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면 ‘대봉대(待鳳臺)’라는 편액이 걸린 정자를 만나게 된다. 예부터 소쇄원을 찾은 귀한 손님이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소쇄원의 풍광을 감상하던 곳이다. 대봉대에 앉으면 들뜬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편안해진다. 문명에 찌든 몸과 마음이 새롭게 깨어나는 느낌이다.
각각의 건물들은 여유와 멋, 운치, 수수함이 진하게 묻어 있다. 방문객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던 광풍각(光風閣)을 비롯해 주인이 사랑채(서재)로 쓰던 제월당(霽月堂), 송시열이 이름을 붙였다는 애양단(愛陽壇), 담장 아래로 흐르는 계류가 넓적한 암반을 다섯 번 돌아 흐른다는 오곡문(五曲門) 등은 옛 선비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의미의 광풍각 누마루에 걸터앉으면 신선이 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소쇄원과 얼마 안 떨어진 곳엔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息影亭 담양군 가사문학면)이 있다. 푸른 광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식영정은 주변의 환벽당(環碧堂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송강정(松江亭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16세기 중반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을 위해 지은 정자로 사선정(四仙亭)이라고도 한다.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1584년(선조 17년) 대사헌이 되었으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해에 대사헌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고향인 창평현(昌平縣·담양의 옛 지명)으로 돌아와 4년 동안 은거생활을 했다. 원강리에 죽록정(竹綠亭)이란 초막을 짓고 살았다. 1770년에 후손들이 정철을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세운 게 송강정이다. 정철은 죽록정과 식영정을 오가며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등 많은 가사(歌辭)와 시가를 지었다.
송강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가운데에 방이 있고 앞과 양옆이 마루로 되어 있다. 정자 정면에 송강정이라고 새겨진 편액, 측면 처마 밑에는 죽록정이라는 편액이 있다. 이름 그대로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정자 앞으로 강이 흐른다. 그 강은 증암천(甑岩川)으로 송강 또는 죽록천으로도 불린다. 정자 앞으로 펼쳐진 평야는 아득하기 그지없고 저 멀리로 무등산이 아스라하다.
정자의 품격을 더해주는 푸른 숲
제월봉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봉산면 제월리의 면앙정(俛仰亭)은 가사문학의 선봉인 면앙정 송순(宋純 1493~1583)이 창건했다.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전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했는데, 면앙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담양 들판과 멀리 추월산과 무등산이 아스라하게 바라보이는 이 정자는 풍수가들이 꼽는 명당터이기도 하다.
담양에서 태어난 송순은 41세 때 이 정자를 짓고 여러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시 짓기를 즐겼는데 그가 남긴 ‘면앙정 삼언가(三言歌)’ ‘면앙정 제영(題詠)’ 등 수많은 한시와 국문시가인 면앙정가(俛仰亭歌)는 훗날 조선 시가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음률에 밝았던 송순은 가야금도 잘 탔다고 알려져 있는데, 풍류를 아는 선비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면앙정가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과 함께 호남 가사문학을 대표하며 그 내용과 형식, 가풍 등은 정철의 성산별곡에 닿아 있다. 한편 담양군에서는 송순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송순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식영정에서 조금 내려가면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친필 유묵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는 가사문학관이 있다. 가사문학관 바로 앞 하천 건너편에는 송강 정철이 관직으로 나가기 전 학문을 닦던 환벽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인 환벽당 앞으로는 무등산 원효계곡에서 흘러나온 창계천이, 뒤로는 우거진 솔숲이 그윽한 분위기를 풍긴다. 일찍이 송순은 환벽당, 식영정, 소쇄원을 가리켜 ‘한 동네에 3군데의 명승이 있다’라는 의미로 일동지삼승(一洞之三勝)이라고 했다.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에 있는 명옥헌(鳴玉軒 명승 제58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자 옆 계곡에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마치 옥구슬에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여졌다. 명옥헌은 담장이 없이 바깥과 소통하는 원림(苑林)이다.이다. 참고로 바깥 공간과 구분 짓는 담장이 있으면 원림(園林)으로 적는다. 소쇄원은 園林에 속한다.
명옥헌은 인조반정의 주역 오희도(吳希道 1583~1623)의 넷째 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이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다. 정자 앞에는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받아 네모난 연못을 꾸몄는데 보면 볼수록 단아하고 격조가 있다. 연못 안엔 원형의 섬을 만들어뒀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당시의 우주관이 담겨 있다.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고 가꿔 정자의 품격을 살려놓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꾸밈없이 소박하게 가꾼 정자와 주변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온다. 정자는 가운데에 방을 두었고 사방엔 마루를 깔았다. 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진 정원과 이리저리 굽어 올라간 배롱나무를 그윽하게 굽어볼 수 있다.
정자에 걸린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것이다. 현판 옆에 걸린 三顧(삼고)라는 편액은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 찾았다’는 ‘삼고초려’의 삼고다. 능양군(훗날 인조)은 광해군에 대한 반정(反正)을 일으키기 전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담양 소쇄원 근처의 오희도를 세 번이나 찾아왔고 번번히 거절당했다. 그러나 결국에 오희도는 인조의 편에서 한림학사가 됐고 인조 집권 후 예문관 검열에 올랐다가 그해 천연두로 사망했다.
생기를 더해주는 삼림욕과 죽림욕
담양읍 향교리에 있는 죽녹원(竹綠苑)은 사철 푸름을 선사하는 대나무 정원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대숲 사이로 꼬불꼬불 산책로가 나 있다. 바람도 잠시 휴식에 들어간 오후 무렵의 대숲길은 그윽하고 감미롭다. 하늘을 향해 키를 뻗은 대숲의 청신함으로 온몸에 생기가 돋는다.
죽녹원 앞은 또 다른 신선의 세계다. 담양천을 따라 느티나무, 엄나무, 개서어나무, 푸조나무, 음나무, 벗나무, 갈참나무, 이팝나무, 팽나무들이 죽 늘어선 관방제림(官防堤林, 천연기념물 제366호)이다. 죽녹원에선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숲의 정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수령 200여 년을 헤아리는 아름드리 나무들이다.
금성면 봉서리, 병풍산 줄기 고지산 아래에 펼쳐진 대나무숲(대나무골테마공원)은 담양 최대를 자랑한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3만여 평의 야산에는 맹종죽, 왕죽, 분죽, 조릿대(산죽) 등 각양각색의 대나무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어느 순간 바람이 솨아아~ 댓잎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대숲에서 번져오는 죽향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다. 머리가 맑아지며 힘이 솟는다. 이곳에서는 청량한 대숲 바람을 마시며 삼림욕과 죽림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대나무를 좀 더 가까이 만나보고 싶다면 한국대나무박물관(담양읍 죽향문화로 35)에 가면 된다. 조상들이 만들었던 죽제품과 만드는 모습, 대나무 관련 각종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때때로 죽물 장인들이 간단한 죽제품(팔랑개비, 붓통, 부채, 단소, 방석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읍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도 대숲길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이 원산지인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는 미국에서 개량된 수종이다.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변 좌우로는 공룡시대부터 살았다는 메타세콰이어 수 천 그루가 푸름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사진 한 장 남겨두고픈 멋진 풍경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문소리가 군 면회하러 갔다가 광주시민을 진압하러 출동한 설경구를 만나지 못하고 쓸쓸이 돌아갈 때 나오는 아련한 길이 바로 여기다.
담양 외곽의 금성산성(金城山城)은 장성의 입암산성(笠岩山城), 무주의 적상산성(赤裳山城)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꼽힌다. 시간을 내어 꼭 한번쯤 올라보길 권한다. 산성에 오르면 앞으로는 광주 무등산과 전라남도 5대 명산의 하나인 추월산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오고, 발 아래로는 담양 들녘과 물을 가득 담은 담양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여행팁 삼지내마을
담양에서도 창평면 삼지내마을은 국제인증을 받은 슬로시티로 연중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빠름의 한가운데서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 곳곳을 이어주는 3.6km의 흙돌담길은 문화재(265호)로 등록돼 보호받고 있다. 세 물줄기가 합쳐지는 마을이라고 해서 삼지내 또는 삼지천지천(三支川)이라고 부른다. 졸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이리저리 굽어 돌아간 돌담길을 걷다보면 고향의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하다.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고정주 가옥 등 옛 정취 물씬 자아내는 고택들과 주민들이 직접 만든 쌀엿, 한과, 막걸리도 맛볼 수 있다. 마당이 있고 꽃이 피고 정갈한 밥상이 차려지는 민박집에서 하룻밤 머물며 한과 만들기, 쌀엿 만들기, 떡메치기, 다례, 한지공예, 죽물공예 등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겠다.
김초록 여행작가 rimpyung74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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