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3 13:43:17
내장산 하면 봄 백양사, 가을 내장사로 통한다. 지난 1월 겨울 내장산 산행은 이런 통념에 비춰 낯설 수 있다. 고향인 정읍인 필자에게도 그렇다. 그러나 등산 마니아라면 호남 최고의 적설량을 보이는 내장산이 겨울마다 아름다운 설국을 이룬다는 것을 잘 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1월에 더 많은 눈이 내려 고운 눈꽃과 상고대를 늦게까지 감상할 수 있다.
내장산은 노령산맥의 끝단으로 정읍, 순창, 장성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남원의 지리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에 속한다. 단풍이 고와서 내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600~700m 정도의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다. 크게 정읍 쪽의 내장사 지역과 장성 쪽의 백양사 지역으로 나뉜다. 세분하면 백양사 서북쪽의 입암산 지역까지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내장산은 내장사를 중심으로해서 장군봉(696) 연자봉(675) 신선봉(763) 까치봉(717) 연지봉(671) 망해봉 (679)불출봉(622) 서래봉(624) 월령봉(427)등으로 이어져 하나의 타원을 이루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말발굽을 닮았다 하기도 한다. 최고봉은 763m인 신선봉이다.
우리 일행은 지난 1월 24일 케이블카를 타고 연자봉 전망대에 도착해 신선봉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벽련암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타기로 했다. 예상 산행시간은 7시간이다.
2014년 12월 정읍에 많은 눈이 와 절경을 이뤘지만 올 1월에는 예년과 달리 눈이 적었다. 심한 겨울 가뭄으로 눈이 귀해졌다. 그럼에도 내장산 초입에 이르자 곳곳에 눈이 남아 있었다. 도착하니 바람도 없고 햇볕도 따듯해 산행 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연자봉까지 걸어 가도 되지만 겨울날 당일치기로 종주하려면 아무래도 시간과 체력을 절약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편도는 4000원, 왕복엔 7000원이 든다. 20분 단위로 이어지는 케이블카에 오르면 연자봉까지 단 5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 산행날이 겨울의 중심이라 우리 일행 외에는 한두 명에 불과했다. 단풍이 한창인 가을에는 케이블카를 타는 것도 고역이라고 한다. 케이블카에는 관리인의 손녀라는 일곱살배기 아이가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능숙하게 케이블카를 오르내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니 내장산 최고의 비경인 서래봉이 정면으로 보인다. 내장사와 벽련암도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케이블카가 이동하는 지역은 그늘이 져 여전히 눈으로 가득했다. 이동하는 내내, 높은 나무에 걸쳐 있는 겨우살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요즘 항암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겨우살이는 Y자 형태의 까치집 구조를 이루고 있다. 주로 참나무와 신갈나무에 기생한다. 일행은 사계절 푸르른 상록성 식물이기는 하지만, 봄 여름 가을에는 나무들이 우거진 관계로 쉽게 확인을 할 수 가 없다고 설명했다. 겨울이 돼야 앙상한 가지만 남기에 제대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원래는 한라산을 비롯해서 백두산까지 전지역에 기생을 했는데, 항암에 도움이 된다는 설이 퍼지면서 요즘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최근엔 채취꾼들이 겨우살이를 따러 나무에 오르다 떨어질 위험 때문에 아예 나무밑둥을 잘라내는 바람에 나무들이 죽어나간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한 터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연자봉에서 신선봉까지 1.1㎞를 등반했다. 길이 어렵지 않아 쉽게 올라 갈 수 있다. 신선봉 정상의 넓은 공간의 서래봉 쪽 방향에는 내장산 최고봉을 알리는 기념석이 있다. 내장산 최고의 비경인 서래봉이 정면에서 바라다 보인다. 신선봉에서 서래봉 왼쪽(서쪽)으로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을 볼 수 있다. 서래봉 오른쪽(북동쪽)으로는 불출봉이 놓여 있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서래봉은 비경이다. 하지만 불출봉을 시작으로 서래봉까지 빼곡한 기암괴석을 보자하니 감히 산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신선봉 정상은 멋진 비경을 배경으로 차와 간식을 먹기에 딱 좋은 곳이다. 날씨마저 좋아 눌러 앉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신선봉에서 서래봉까지는 여전히 먼 길이며 시간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간식을 든 후 급하게 까치봉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까치봉은 두 개의 봉우리 형상이 까치가 날개를 편 형상이라 붙혀진 이름이다. 까치봉 언저리에서 점심을 마치고 체력이 달리는 일부는 샛길로 하산했다. 까치봉을 지나서 망해봉까지는 쉬지 않고 걸었다. 고창지역의 바다가 보여 망해봉이라 명명한 듯 싶다. 망해봉에서 불출봉까지도 바위산으로 이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완만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코스다.
불출봉은 부처가 출현했다는 전설이 있는 봉우리다. ‘불출운하’라는 말처럼 구름과 함께 있을 때 비경인 봉우리다. 하늘은 높고 푸른 빛깔을 내지만, 사방은 기암괴석과 온통 눈이다. 게다가 따스하던 날씨는 오후가 되자 차갑고 어두워져 겁을 먹게 한다.
불출봉에서 서래봉까지 가는 길은 온통 바위와 사다리 뿐이다. 해가 들지 않아서 바위와 사다리엔 눈덩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쉬지않고 오다보니 체력이 고갈되고, 날씨마저 추우니 한숨과 화가 날 지경이다. 불출봉에서 서래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가을철 추락사고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데 어떤 청년들은 아이젠도 하지 않고 운동화만 신고 산행에 나서니 젊음이 부럽기도 하지만 객기란 생각이 단박에 든다. 산행에선 늘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는 겸손함을 잊어선 안된다. 겨울산행에서 낙상, 추락사고, 저체온증은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어떤 여성 산악인은 키만한 배낭을 메고 꿋꿋하게 산행을 한다. 가파른 절벽과 계단을 통해서 서래봉에 이르니 어느덧 해가 지려한다.
서래봉은 624m로 내장산의 9개 봉우리 중 최고의 절경이다. 1㎞ 폭의 기암괴석이 하나의 봉우리로 이어져 있다. 서래봉에서는 벽련암과 내장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편에 위치한 정읍시내와 내장저수지도 가까이에 있다. 서래봉은 서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달마대사가 수도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농기구의 일종인 써래를 닮았다 하여 써래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래봉에서 바라본 내장사와 벽련암은 왜 이곳이 명당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다른 지역은 해가 져서 어두운데, 그 곳에만 해가 남아 있다. 오래전에 보았던 강원도 정선의 정암사 수마노탑의 느낌과 비슷하다.
멀찍이 바라본 서래봉 자체는 비경인데 비해 서래봉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에 미치지 못한 느낌이다. 극치의 아름다움도 막상 그곳에 이르면 시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불출봉 쪽 풍경이 돋보인다.
해가 뉘엿뉘엿하니 서래봉에서 벽련암까지는 급하게 이동해야 했다. 도처에 겨우살이가 푸른잎과 빨간 빛깔로 신비감을 준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벽련암이다. 등산로에서 이곳으로 접어드는 계단에서 바라본 서래봉은 절경이다.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중요한 포토존이 된다. 한참 사진을 찍고 나니 벌써 5시가 넘었다. 겨울 벽련암은 사람도 없고 해도 진 상태다. 결국 마지막 목적지인 내장사에는 발도 두지 못하고 일주문만 둘러 본 후 하산해야 했다.
바라본 서래봉은 끝이 없는 절벽과 기암괴석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위안이라면, 전면에 병풍처럼 두른 신선봉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멀리에 위치하고 있는 내장사와 벽련암은 또다른 안도의 순간과 가야 할 목적지가 되었다. 춘 백양사, 가을 내장사 못지 않게 겨울 설국이 아름다운 내장산을 뒤로 하니 올 겨울도 어느덧 다 갔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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