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9 00:43:55
보물 396호인 여수 흥국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인조 2년(1624) 계특대사가 절을 고쳐 세울 때 다시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사진 변영숙
묘도의 남측, 여수 북동쪽으로 난 여수산단도를 따라 5km 정도 달리다 보면 ‘영취산 흥국사’(靈鷲山 興國寺 해발 439m)가 나온다. 화물트럭과 레미콘차량이 무시로 달리는 여천공업단지의 삭막한 분위기에 긴장하다보면 어느새 영취산 자락이다.
여수 영취산은 경남 창녕 화앙산, 거제 대금산(혹자는 창원 천주산 또는 무악산, 강화도 고려산을 꼽음)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진달래 군락지로 꼽힌다.
매년 4월 초가 되면 축구장 140개만 한 면적의 산이 진분홍빛 진달래로 뒤덮인다. 흥국사가 위치한 산은 정확하게는 ‘진례산’(進禮山·510m)이다. 국가지리정보원도 2003년 5월 17일 자로 영취산을 진례산으로 변경 고시한 바 있다. 옛 문헌에도 439m 봉우리는 영취산으로, 510m 봉우리는 진례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관례대로 영취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절 현판에도 ‘영취산 흥국사’로 표기돼 있다.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 구례 화엄사의 말사다. 우리나라 전역에는 ‘흥국사’라는 이름의 절이 많은데 여기에는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며 호국을 우선으로 하는 사찰이 되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 영취산 흥국사 사적기에 ‘국가의 부흥과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경관이 좋은 택지에 가람을 창설했다.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이 절이 흥할 것이다.’ 등의 글이 적혀 있다. 국가와 절을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했던 ‘호국불교’의 전통을 보여준다. 여수 지역에서 호국불교의 전통을 보여주는 절들은 흥국사 외에도 용문사, 석천사, 한신사, 은적암, 향일암 등을 꼽을 수 있다.
흥국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수군 의병의 중심지로 각종 상량문과 비문을 통해 당시 의승군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다. 승병들은 자운과 옥형 두 승장의 지도하에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주로 해전에서 활약했다. 의승군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직후 700여 명까지 늘어났다가 이듬해부터 300여 명 정도로 축소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1812년까지 해체되지 않고 있다가 구한말에 이르러 점차 소멸됐다.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흥국사는 1624년(인조 2년)에 계특대사가 중건했고 1690년(숙종 16년)에 통일 스님이 중창한 이래 현재에 이른다. 전라남도 호국불교의 성지인 흥국사는 10여 점에 달하는 보물급 문화재를 보유한 문화재 사찰이기도 하다.
다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리 한가운데 마룻돌이 튀어나와 있고 그 끝에 용머리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난간 끝부분에는 도깨비 얼굴 조각이 보인다. 이는 잡귀를 막는 동시에 부처님 나라로 가는 중생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천왕문과 봉황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나온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심검당과 적묵당이 마주 보고 있고 대웅전 뒤편 위쪽으로 팔상전, 응진전 등이 위치해 있다.
보물 396호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보물 제396호이다. 빗살문을 달아 전부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축대와 중앙계단 소맷돌에 거북과 용, 꽃게 등이 새겨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불교에서 대웅전을 ‘반야용선’에 비유하는 법화신앙적 표현이다. 대웅전은 중생들을 고통 없는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배에 해당하고 축대나 석등은 바다에 해당하므로 이를 용, 거북, 게 등을 새겨 표현한 것이다.
원통전에도 관음보살 탱화인 수월관음도가 있다. 푸른색 천의와 붉은색 치마를 입고 있으며, 귀걸이, 팔찌, 목걸이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어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십육나한도(보물 제1333호)’와 함께 의승수군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원통전 옆 계곡 건너편 숲에는 (주)대신기공이 조성한 ‘백팔돌탑공원’이 있다. 임진왜란 때 숨진 의승군들의 넋을 위로하고 여수산단 조성으로 숨진 산업역군들의 영혼을 기리고 산업안전 기원을 위해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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